신인가수로 돌아간 70년대 스타 김미성

2013.08.13 11:05:59

추억의 음악여행 9

[그린경제=김호심 기자]  70년대 후반 코미디언 출신 가수로 큰 인기를 얻었던 가수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김미성. '아쉬움''먼훗날'이란 노래로 당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그녀의 본명은 이청자였다. 70년대 후반 코미디언 고() 서영춘과 활동하기도 했던 그녀는 그의 소개와 추천으로 가수로 데뷔하는 행운을 얻었다. 김미성이라는 예명도 사실은 서영춘이 직접 지어준 이름이다. 

어린 시절부터 가수의 꿈을 꾸었던 김미성은 처음에 무용, 사회자, 구봉서배삼룡 등과 코미디언으로 활동하며 순회 공연단의 멤버로 연예계에 입문했다. 악극단의 멤버들을 소개하는 전단지에 자신의 이름을 가장 처음으로 올리고 싶었던 그녀를 가수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준 이는 그녀의 남편 타미란 유명 제작자겸 매니저였다. 남편 타미가 키워낸 가수로는 태진아 정종숙, 진미령, 문주란, 김씨네, 장옥조 등이 있으며 당시 연예계의 마이다스 손으로 꼽혔다 

   
▲ 김미성 독집음반(먼훗날, 우리는 서로가)

김미성은 가수 장욱조로부터 '아쉬움'이란 곡을 받아 가요계에 첫 발을 디딘다. 그녀가 불렀던 아쉬움37살에 히트가 되었다. 마음 저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와 온몸으로 부르는 서정적인 허스키는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떠나보낸 주인공의 채워지지 않는 사랑의 아쉬움을 담고 있다. 그리고 떠나간 연인을 떠올리며, 기댈 곳 없는 마음 기대고 싶은 그리움의 간절함이 파문처럼 번지고 있다. 

이 노래로 그녀는 오랜 무명의 늪을 헤치고 최고 인기가수로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러나 김미성이 마흔 살 되던 해 남편 타미는 세상을 떠났다. 게다가 매니저 겸 운전기사의 인명사고로 인해 활동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했고 이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가요계를 떠나야 했다. 

특히 어느 날 갑자기 대중들에게서 사라져버린 까닭은 한국에서의 고통스러움을 피해 일본행을 결정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생활도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았다. 불법체류자 생활로 마음과 몸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고 타국에서의 고생은 이루다 말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일본의 밤무대 등에서 활동하긴 했지만 비자가 없어 한때는 공원 노숙자로 전락하는 등 비참한 생활을 감내해야 했다. 

   
▲ 김미성 음반(아쉬움, 아니야)

그러나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녀에겐 목숨과 같은 노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노래를 부르기 위해 참아야만했다.  

김미성은 개롭게 신곡을 발표하면서 많은 다짐을 했다. 스타시절의 가수 김미성이 아닌 신인시절의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봉사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으며, 본인은 힘이 들고 어려워도 남들을 행복하게 하고 미소 짓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는 행복이며 방송인으로써의 책임과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를 보면 많은 단어들이 생각난다. 성공, 사랑, 행복, 좌절, 실패, 도전이 그것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단어들조차 모든 것을 표현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 가운데 가장 어울리는 단어는 도전일 것이다. 그렇기에 현재도 김미성의 삶은 도전을 준비하는 진행형 도전중이다.


   
 
** 김호심 : 대성음반 문예부에서 근무했으며 가요114 PD로 활동하며 추억과 함께하는 가요와 팝송을 많이 소개하였다. 현재는 인간문화재 이생강 선생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으며 국악음반을 기획하고 있다.


김호심 기자 hosim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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