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좌천동 만세운동 이끈 '이명시' 애국지사

  • 등록 2013.09.21 20:4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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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일곱 처녀의 부산 좌천동 아리랑 “이명시

                                                  이윤옥

 

어여쁜 곤지 찍고

고운 칠보단장 꿈꿀 열일곱 처녀

나라 빼앗기니 꿈도 사라져

일신학교 언니 동생 한데 불러 모아

독립의 길 앞장섰네

  

스승을 위협하고

형제자매를 찌른 칼

피 할 수 없는 길이어 든

당당히 받으리라

  

험난한 구국의 길

가로막는 총구 앞에

두려움 떨치고 일어난 이여

 

 죽음도 불사한 독립의 함성

그 이름 아로새긴

일신의 횃불이여!

   
▲ 뒷줄 왼쪽부터 이명시 애국지사의 남편, 이명시 애국지사, 호주선교사 앞줄 왼쪽에 앉은 아이가 이명시 애국지사의 따님 한영애 여사의 5살 때 모습 (현, 미국거주 87살)

이명시(李明施,1902.2.2~1974.7.7) 애국지사

부산 일신여학교(현, 동래여자고등학교)와 좌천동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3일 무렵 기독교계통의 인사들을 통하여 독립선언서가 부산․마산에 비밀리에 배부되었다. 이때 서울로부터 학생대표가 내려와 경성학생단 이름으로 부산상업학교와 동래고등보통학교 학생 대표들에게 독립선언서를 전달하고 만세운동을 권유하였다. 이에 따라 일신여학교를 비롯한 각 급 학교에서는 거사를 준비하였다. 

 일신여학교에서는 이명시 애국지사가 연락을 담당하였다. 3월 11일 새벽 일신여학교 기숙사 주변을 비롯한 각처에는 격문이 뿌려졌으며 3월 11일 오후 9시 이명시 애국지사를 비롯한 고등과 학생 11명은 교사 주경애, 박시연과 더불어 태극기를 손에 들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일본 군경이 대거 출동하여 여학생 전원과 여교사 2명을 붙잡아 부산진 주재소로 넘겼다. 이명시 애국지사는 1919년 4월 28일 부산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월을 받고 부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명시 애국지사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항일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 <서간도에 들꽃 피다> 3권 참조

 

 

 


     
 

이한꽃 기자 59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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