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살아난 수원의 잔 다르크 “이선경”

2013.10.07 00:12:43

[그린경제 = 이한꽃 기자]

다시 살아난 수원의 잔 다르크 “이선경”

                                          이윤옥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홀로 죽어 간다는 것은

외롭고 쓸쓸한 일입니다

 

광복의 기쁜 소식을 듣지 못하고

홀로 눈을 감는다는 것은

외롭고 슬픈 일입니다

  

열아홉 값진 목숨

모진 고문으로 숨 거두어

쓸쓸히 떠났건만

오래도록 찾지 않은 그의 무덤

자취도 없이 사라진 지 91년 째

 

 그의 의로움

그의 조국에 대한 열정

마침내 만천하에 드러나던

2012년 삼월 하늘가

그곳에서

수원의 잔 다르크 살며시

미소 짓습니다.

 

   
▲ 이선경 애국지사 판결문


이선경(李善卿,1902. 5. 25~1921. 4. 21)
애국지사가 그간 알려지지 않은 까닭은?

 유관순 열사가 1920년 10월 독립운동의 제단 위에 거룩하게 바쳐지고 난 지 6개월만인 1921년 4월 21일 이선경 열사가 꽃다운 나이에 또 다시 순국을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유관순 열사의 이름을 알고 있지만, 수원이 낳은 이선경 열사에 대하여는 잘 모르고 살아왔다. 유관순 열사가 일제의 감옥에서 순국하였고 이화학당 교사 미쓰 월터 선생이 시신을 받았다는 점에서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질 수 있었던 상황이었던 것에 견주어, 이선경 애국지사는 경기여고를 퇴학한 상태였고, 구류 8개월 만에 석방되어 집에서 순국하였기 때문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것 같다.

 더욱이 함께 독립운동을 펼쳤던 인물들이 이에 대하여 구체적인 증언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대응하지 못한 점도 한 원인으로 보인다. 더욱이 일본유학을 했던 언니 이현경이 사회주의 운동을 펼쳤고, 일제의 검거를 피해 안광천과 중국으로 망명한 이후 귀국하지 않아 순국한 이선경을 조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이선경 애국지사의 남동생이 있었으나 누나 이현경의 영향을 받아 일찍부터 사회주의적 성격으로 수원청년동맹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긴 했지만 해방이후 특별한 활동을 보이지 않아 누나 이선경의 활동 상황을 전할 여건이 되지 못했다. 게다가 3․1운동 때 일제에 의해 감옥에서 순국한 사람들에 비해 집에서 죽음을 맞이한 소녀에 대한 무관심도 이선경 애국지사가 조명되지 못한 한 원인이다.

 한편 수원에서 3․1동지회 등이 조직되어 활동했지만 이선경의 의로운 죽음에 대하여 역시 폭넓은 조명은 하지 못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어렵사리 2012년 3월 1일 건국포장 애국장에 추서되어 그의 나라사랑 정신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뚜렷한 역사적 궤적을 보여주는 순국열사 이선경 애국지사에 대하여 수원시는 이를 영원히 기억하고 그와 그 가족의 뜨거운 조국애를 널리 세상에 알려야 할 것이다.

 

 

이한꽃 기자 59yoon@hanmail.net
Copyright @2013 우리문화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 32. 그린오피스텔 306호 | 대표전화 : 02-733-5027 | 팩스 : 02-733-5028 발행·편집인 : 김영조 | 언론사 등록번호 : 서울 아03923 등록일자 : 2015년 | 발행일자 : 2015년 10월 6일 | 사업자등록번호 : 163-10-00275 Copyright © 2013 우리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ine9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