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에 세웠던 '안동신사'

2013.10.17 06:24:53

황국화 상징 조선의 신사(神社) 돌아보기 (6)

[그린경제 = 이한꽃 기자]  1941년 조선 경성에서 출간된 일본어판 《대륙신사대관》에 보면 당시 경상북도에는 비교적 규모가 큰 대구신사, 김천신사, 포항신사, 울(릉)도신사, 안동신사, 경주신사가 있었다. 한편 작은 규모로는 청도군 화양면에 있는 신명신사(神明神祠)를 비롯하여 영양군, 영주군, 영덕군, 의성군, 문경군 등 광범위한 지역에 무려 46개의 신사가 있었다.

   
▲ 옛 안동신사 터에는 원불교 교당이 들어서 있다
   
▲ 안동신사가 얼마나 높은 곳에 세워졌는지 알려주는 가파른 계단(현, 원불교 교당)

 그 가운데 안동신사(安東神社)는 지금의 안동시 옥정동에 있는 원불교 자리에 1939년 12월 1일(소화 14년)에 일제가 세웠다. 일본땅에 있는 신사는 높은 산꼭대기에 짓기 보다는 평지에 지은 곳이 많은데 견주어 조선땅에 세운 신사는 부산의 용두산공원, 전주 다가동산, 나주 남산공원 팔각정 자리처럼 대부분 지대가 높은 곳에 세워졌다.

 

 현재 원불교 안동교당은 지상으로부터 매우 경사가 심하고 높은 산꼭대기에 세워졌는데 1964년 11월에 세운 것이다. 한국정신문화의 수도이자 항일독립운동가의 산실인 안동지역에서 안동신사 터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만은 않았다. 다만 가파른 계단을 올라 원불교 교당 안팎을 뒤졌으나 그곳이 일제강점기에 안동신사가 자리한 곳이라는 표시는 눈 씻고 찾아 봐도 없다.

   
▲ 안동신사(위)와 경상북도 관내의 소규모 신사 기록, 출처《대륙신사대관》

 하긴 무엇이 그리 좋은 일이라고 안동신사 터를 크게 떠벌리겠느냐마는 그래도 전주신사 터에 세운 ‘이곳은 잊지 못할 민족의’같은 안내판 하나 없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역사란 좋은 일만 기록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궂은일일지언정 역사의 교훈이 되려면 기록해야 함에도 언제나 그 부분이 구멍 난 양말처럼 휑하니 뚫려있다.

 안동신사도 그랬다.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도시 안동. 그 도시가 발아래 내려다보이는 옥정동 산 425번지에 안동신사가 버젓이 세워져 조선인에게 강요된 신사참배를 시켰던 역사를 원불교 교당에서는 작은 안내판이라도 만들어 세워두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안동신사 터에도 이렇게 전주신사 터에 세운 안내판이 있으면 좋겠다

 원불교 교당으로 이르는 급경사 계단을 내려오면서 나는 몇 번이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조선인을 괴롭히던 신사건물의 작은 흔적이라도 남아 있을까하고 조심, 조심 살피며 내려왔다. 만일 이 곳에 안동신사가 있던 곳이라는 안내 팻말 하나만 서 있었더라면 구태여 돌 쪼가리 하나라도 찾으려는 욕심(?)은 부리지 않았어도 되었을 것이다. 전주신사 터처럼 그렇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편 10월 17일 오늘 안동신사에서는 해마다 성대한 제례행위가 있었다. 일본 조상신을 받드는 제례행위 말이다. 이 자리에 얼마나 많은 조선인이 강제 동원 되었는지 당시 안동의 기록에는 남아있을 법 한데 글쓴이로서는 찾기가 힘들다. 이 다음에 찾는다면 소개할 작정이다.

 

<안동신사(安東神社)>

*소재지:경상북도 안동시 옥정동 (현, 원불교 교당)

*제신(祭神):천조대신(天照大神)

*창립일:1939년 (소화14)12월 1일

*신사주지(社掌) : 堀 鼎

*제사일:10월 17일

 

 

 

 

 

 

 

이한꽃 기자 59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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