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장 속에서 태극기 만들며 독립의지 불태운 통영의 “김응수”

2014.02.08 09:49:16

[그린경제/얼레빗 = 이한꽃 기자]

벽장 속에서 태극기 만들며 독립의지 불태운 통영의 “김응수”

                                                        이윤옥

 

벽장 문 걸어 닫고

호롱불 밝혀 만든 태극기

이로써 빼앗긴 조국을 찾을 수만 있다면

밤샌들 못 새우며 목숨인들 아까우랴

 

열여덟 꽃다운 처녀

숨죽여 만든 국기 들고 거리로 뛰쳐나와

목청껏 부른 대한독립만세 함성

 

죄목은 보안법 위반이요

죄질은 악질이라

 

차디찬 감옥소 시멘트 날바닥에

옷 벗기고 콩밥으로 주린 배 쥐게 해도

단한 번 꺾이지 않던 그 당당함

 

그대는 정녕

일신의 딸, 조선 독립의 화신이었소.

 

   
▲ 일신여학교 8회 출신 김응수 애국지사(왼쪽)와 1919년 무렵 여학생들이 태극기를 수놓은 밥상보 (동래학원 100년사에서)

 

김응수 애국지사 (金應守, 1901. 1.21 ~ 1979. 8.18)

 

통영에서 태어나 부산 일신여학교(현, 동래여자고등학교) 고등과에 재학 중이던 김응수 애국지사는 1919년 3월 11일 일어난 만세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그의 나이 열여덟 살 때의 일이다.

당시 이들의 만세운동을 기록한 일본 쪽 자료의 따르면 “부산진 소재 기독교 경영 일신여학교 한국인 여교사 임말이 외 학생 1명을 취조한바 이 학교 교장인 캐나다인 여 선교사 데이비드 및 한국인 여교사 주경애가 주동이 되어 교원들에게 ‘각지에 독립운동이 시작되고 있으니 우리 학교도 거사하자’고 협의를 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학생들에게 전달하여 3월 10일 고등과 학생 11명이 기숙사 안에서 태극기 50개를 제작하여 이를 기숙사 사감 메제스에게 넘겼으며 깃대 31개를 발견하였을 뿐 아니라 태극기를 제작할 때 사용한 붓 따위도 압수하였다.”는 기록을 통해 당시 일신여학교의 만세운동 준비 상황을 엿볼 수 있다.

김응수 애국지사는 왜경으로부터 뺨을 맞고 구두 발로 차이는 등 모진 수모를 당하면서도 "세살 먹은 아이도 제 밥을 빼앗으면 달라고 운다. 우리들이 우리나라를 돌려 달라고 운동하는데 무엇이 나쁘냐?"면서 당당하게 독립에 대한 의지를 천명하는 민족적 기개를 잃지 않았다. 이 일로 1919년 3월 12일 잡혀가 4월 26일 부산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더 자세한 것은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  <서간도에 들꽃 피다> 3권 참조

 

 

     
 

이한꽃 기자 59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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