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왕릉을 파헤쳐라' 외친 이등박문

2014.03.25 07:15:05

[그린경제/얼레빗 = 이한꽃 기자] 무덤의 부장품을 꺼내 팔아먹기 위해 선조의 무덤에 손을 대는 일을 하는 ‘후레자식’은 한국 정서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그런 “후레자식”이 있었다. 1905년 초대 조선 통감 자격으로 조선에 부임한 이등박문이란 자가 바로 그자다.

 1905년 이등박문은 통감자리에 앉자 이미 조선에 와있던 일본인 도굴꾼들과 손을 잡고 맨 먼저 손을 댄 것이 고려청자다. 이등박문은 고려의 수도인 개성과 강화도 일대에 몰려 있는 왕후, 귀족들의 분묘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이러한 무덤 털이에 일부 마을사람들이 저항하면 총으로 위협을 가했다.

   
   
▲ '청자거북이형연적'은 동경국립박물관에 있었던 고려청자로 이것은 이등박문이 일본 황실에 보낸 103점 가운데 하나다. 한일조약 때 되돌아왔다 (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등박문은 도굴꾼들을 매수하여 무덤을 마구 파헤쳐 고려청자를 파낸 뒤 명치왕과 황족들에게 조선통감의 위세를 자랑하고자 선물했다. 심지어는 골동품상을 통째로 매수하여 고려청자를 입수한 뒤 30점에서 50점을 한 번에 선물하기도 했는데 그 수가 수천 점에 이르고 있다고 《잃어버린 조선문화유산'失われた朝鮮文化遺産'》을 쓴 일본 고려박물관 측은 18쪽에서 밝히고 있다.

   
▲ 칼찬 순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양 고분을 파헤치는 도굴꾼들, 옆에는 아녀자들이 물동이에 물을 길어 나르고 있다. (1909년 평양)

 이등박문의 조선무덤 파헤치기로 도굴한 청자는 일본에서 매우 큰 인기를 끌고 매니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1909년 가을 동경에서 <고려청자전시회경매회 ‘高麗靑磁展示競買會’>가 열릴 정도였다.

 

     
   
▲ 청자상감진사채포도동자조롱박형 주전자 (한국 국립중앙박물관)
 
이등박문은 친일파 이완용에게 명령하여 자신이 창덕궁에 거하면서 고종을 위로한다는 구실을 핑계로 궁궐파괴에 앞장서서 동물원, 식물원, 박물관 같은 얼토당토않은 건물을 세워 나갔다.

 또한 골동품상과 도굴꾼들을 조종하여 개성일대의 왕릉과 고관대작 무덤이란 무덤은 모두 파헤치게 했다. 당시에 무덤에서 나온 고려청자의 99%는 개성 무덤에서 도굴한 것이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구 이왕가박물관 소장)이 소장하고 있는 고려청자 6,562점 외에 수천 점은 이등박문이 일본으로 빼돌렸다.

일본으로 빼돌린 게 어디 고려청자 뿐이랴만  조선인들이 하늘처럼 모시는 조상의 무덤을 파헤친 죄는 몇 백, 몇 천, 몇 억겁이 지나도 그 죄를 다 씻지는 못할 것이라고 뜻있는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이한꽃 기자 59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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