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석문 톺아 보기 82] 최치운묘비(崔致雲墓碑)

  • 등록 2014.04.06 09:20:00
크게보기

[그린경제/얼레빗 =  정석현 기자] 강원도 강릉시 대전동(江原道 江陵市 大田洞)에 자리한 최치운묘소에 있는 최치운묘비(崔致雲墓碑)이다.

1442년(세종 24년)에 세워진 이 비의 비문(碑文)은 남수문(南秀文)과 유의손(柳義孫)이 각각 서문(序文)과 명문(銘文)을 지은 것이며, 비의 글씨도 최흥효(崔興孝)와 정척(鄭陟)이 각각 글씨와 전액(篆額)을 쓴 것이다. 최치운(1390~1440년)은 1417년(태종 17년)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에 임명되면서 벼슬길에 들어섰다.

이후 봉상시주부(奉常寺注簿), 판승문원사(判承文院事), 공조참의(工曹參議)와 좌승지(左承旨) 등을 지냈다. 1439년(세종 21년)에는 공조참판(工曹參判)으로 계품사(啓稟使)가 되어 명나라에 가서 범찰(凡察)·동창(童倉) 등의 야인들이 양민으로 경성(鏡城)지역에 영주할 수 있도록 요청하여, 이를 관철시켰고,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사신이 되어 명나라를 왕래하며 외교적인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한편, 『무원록(無寃錄)』을 주석(註釋)하고 율문(律文)을 강해(講解)하는 등 학문정비에도 기여하였는데, 평소 술을 지나치게 즐겼으므로 세종이 「계주서(戒酒書)」를 내려 절제할 것을 명하니, 그 글을 벽에 걸어두고 출입할 때에는 꼭 이것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1645년(인조 23년)에 강릉의 향현사(鄕賢祠)에 배향(配享)되었다. 비문에는 그의 가계(家系)와 관력(官歷), 그리고 가족사항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 최치운묘비(崔致雲墓碑)

*연대: 1442년 (세종 24년)
*소재지:강원도 강릉시 대전동

<출처:한국금석문종합영상정보시스템>

정석현 기자 asadal1212@hanmail.net
Copyright @2013 우리문화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 32. 그린오피스텔 306호 | 대표전화 : 02-733-5027 | 팩스 : 02-733-5028 발행·편집인 : 김영조 | 언론사 등록번호 : 서울 아03923 등록일자 : 2015년 | 발행일자 : 2015년 10월 6일 | 사업자등록번호 : 163-10-00275 Copyright © 2013 우리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ine9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