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의 꿈에 용으로 비친 임진왜란의 장수 “정기룡”

  • 등록 2014.08.08 08:2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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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2816]

[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유성룡이 아뢰기를, “상주 목사 정기룡(鄭起龍)은 인심을 얻었고 또 싸움도 잘하니 이제 당상(堂上)에 올리어 토포사(討捕使)로 삼아 적이 만약 다시 움직이면 상주 낙동강을 막아 지키거나 혹은 물러나 토기(兎機)를 지키게 해야 할 것이며, 왜적이 움직이기 전에 도내에 있는 토적을 잡는 것이 유익할 것 같습니다.” 이에 선조임금은 “그렇게 하라”는 명을 내립니다. 이는 선조실록 54권, 27년(1594) 8월 21일 기록입니다.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국난을 이겨내는데 큰 공을 세운 매헌 정기룡(1562∼1622) 장군은 1580년(선조 13) 경남 고성에서 향시에 합격하고, 1586년 무과에 급제합니다.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수록되어 있는 정기룡 장군의 설화에는 그가 이름을 “기룡”으로 바꾼 이야기가 나옵니다. “정기룡이 과거 보러 갔을 때, 임금이 낮잠을 자고 있었다. 임금의 꿈에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 임금이 신하를 불러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으니, 정가(鄭哥)라는 사람이 막 과거에 급제했다고 한다. 이러한 일로 인해 이름을 정기룡으로 고쳤다.”는 것입니다.


   
▲ 정기룡 장군이 상주목사를 제수받을 때 교지

   
▲ 정기룡 장금의 유품, 장검(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86호)

정기룡 장군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이순신 장군에 버금갈 만큼 큰 무공을 세운 장군입니다. 그는 1590년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신립의 휘하에 들어가 훈련원 봉사(奉事)가 된 이래 1592년 임진왜란 때 별장(別將)으로 승진하여 거창에서 왜군을 격파하고 금산싸움에서 포로가 된 조경을 구출한 뒤 곤양의 수성장(守城將)이 되지요. 그 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토왜대장(討倭大將)이 되어 고령, 성주, 합천 등에서 눈부신 활약을 합니다. 1617년 3도통제사 겸 경상우도수군절도사에 올라 통영(統營) 진중에서 병사하였는데 그의 유품이 지금껏 전해오고 있습니다. 이 유품은 문중이 보관해 오다가 1989년부터 경상남도 하동의 경충사 기념관에서 보관 전시하고 있으며 유품 가운데는 교서, 장검, 임금이 벼슬을 내릴 때 발급하는 명령서인 유서 등이 전해옵니다.
 

김영조 기자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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