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 = 이윤옥 기자] 기록상으로 보면 권기옥은 1925년 2월 28일 운남항공학교를 졸업하고 1926년 4월 20일 중화민국 본부에서 ‘항공처 부비행사 임명장’을 받았고, 박경원은 일본비행학교를 졸업하고 ‘3등 비행사 자격증’을 1927년 1월 28일에 딴 것으로 나온다. 이 두 기록만 봐도 권기옥이 박경원 보다 앞선다. 그런데 왜 박경원을 두고 최초 여류 비행사라고 하는가 살펴보니 비행사자격에 문제를 두었기 때문이다.
권기옥은 공군에서 비행사자격증을 땄을 뿐 민간 자격증은 없다. 그러나 박경원은 민간인으로 일본 정부가 공인한 자격증을 받았던 것이다. 어쨌든 최초로 비행사 자격증을 딴 것은 권기옥이다. 나라를 일제에 강탈당한 상태에서 자신의 국가에서 비행사 자격을 딸 수 없어 해외로 나가 딴 비행사 자격증을 두고 중화민국 본부 항공처에서 발행한 비행사 자격증은 자격증이 아니고 일본에서 딴 비행사 자격증만 비행사 자격증으로 인정하여 박경원이 최초 비행사라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다.
당시 신문 자료를 살펴보면, 권기옥과 박경원을 똑같이 ‘여류 비행사’라고 불렀다. 1926년 5월 21일자 《동아일보》는 ‘中國 蒼空에 朝鮮의 鵬翼- 中에도 女流飛行家’라는 제목으로 권기옥을 소개하는 기사가 보인다. 또 박경원을 소개한 《동아일보》 1926년 9월 4일자 기사 역시 ‘朝鮮의 女流飛行士 박경원 양’이라고 썼을 뿐 민간인 비행사냐 전투기 조종사냐를 구분하지 않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공식 기록인 대한민국 공군사관학교 공군박물관(충북 청원 소재)의 자료실이나 국가보훈처 자료집에서도 권기옥을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로 밝히고 있다.
▲ 시화 그림과 글 (한국화가 이무성)
요즘도 여자 비행사가 되기 어려운 시대에 조선을 송두리째 삼킨 일제를 응징하고자 비행사를 꿈꾸었던 야부지고 당찬 한국 최초의 여비행사 권기옥! 그는 1988년 88살을 일기로 서울 장충동 2가 낡은 목조 건물 2층 마루방에서 숨을 거두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다음은 하늘을 나르던 푸른 창공의 여전사 권기옥 애국지사를 위해 글쓴이가 직접 지은 헌시이다.
황거를 폭격하리라, 한국 최초의 여자 비행사 권기옥
이윤옥
은단공장 키 작은 어린 소녀
훨훨 하늘을 날고 싶은 꿈
스미스 아저씨 여의도 상공에서 곡예비행 하던 날
조그만 주먹 불끈 쥐고 꿈꾸었지
하늘을 날아야겠다
하늘을 날아야겠다
숭의여학교 시절
기숙사 사감 호시코 따돌리고
만세운동 부르다 쫓기던 몸
중국 땅 비행학교 들어가
대륙의 하늘을 날면서
암흑의 조선 땅 바라보며 가슴 태웠지
높은 창공 조종간 돌려
아시아 침략에 눈 벌겋던
일왕의 도쿄 황거 폭격코자
몇 번이나 다짐한 마음
장개석 휘하 혁명군 되어
일본군 상대로 싸우던 11년 세월
꿈에도 놓지 않던 조국 광복의 꿈
군복 벗고 비행기 내려와
백발 할머니 되었어도
카랑카랑하던 목소리
독수리같이 불타던 두 눈동자
큰 날개 접은 적 없는 한국 최초의 여자비행사.
<권기옥 애국지사 이야기는 '3' 으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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