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에 가면 통일신라시대인 764년(경덕왕 23)에 창건했다고 전하는 사적 제382호로 지정 면적이 5만 8,995㎡에 달하는 '고달사터'가 있습니다. 이곳에 남아 있는 유적·유물을 통하여 신라시대에 창건되고, 고려시대에 이르러 큰 절로 번창하였음을 알 수 있지요. 현재 고달사터에는 중심 법당자리에 네모나고 큼직한 보물 제8호 고달사터석불좌가 있어 이 불좌대를 중심으로 남향에 넓게 자리잡은 절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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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적 제382호 여주 "고달사터" 전경(문화재청 제공) |
뒤편으로는 낮은 언덕에 국보 제4호 고달사터부도가 있고, 그 아래쪽으로 보물 제7호 고달사원종대사혜진탑이 있으며 그 남쪽의 법당터 뒤편에는 고달사원종대사혜진탑비와 보물 제6호 이수(비석의 머릿돌)가 있는데, 이들 석조물은 모두 고려 초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전설에 따르면 고달사터에는 석조 문화재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모두 고달이라는 석공이 만들었다고 전하지요. 고달은 가족들이 굶어 죽는 줄도 모르고 절을 이루는 데에 온 정성을 쏟았다고 하는데, 절을 다 이루고 나서는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으며, 훗날 도를 이루어 큰스님이 되었기에 고달사라 불렀다고 합니다. 고려 때까지 번성했던 절들이 성리학의 나라 조선으로 오면서 없어진 절들이 많은데 특히 경기도 양주의 회암사와 이곳 고달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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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달사터 출토 유물(문화재청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