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은 왜 세종대왕 생일잔치를 무덤에서 하나?

2018.05.11 12:21:00

[편집국에서] 귀를 꽉 막은 문화재청에 보내는 고함

[우리문화신문=김영조 발행인]  문화재청 세종대왕유적관리소는 오는 15일 아침 11시에 경기도 여주 세종대왕 영릉(英陵)에서 세종대왕 탄신 621돌을 기리는 숭모제전(崇慕祭典)을 봉행한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숭모제전은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으로 추앙받고 있는 세종대왕의 탄신일(양력 5.15./음력 4.10.)을 맞아 뛰어난 통솔력을 바탕으로 한글 창제를 비롯하여 국방, 과학, 예술 등 여러 방면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세종대왕을 기리는 행사다. 특히, 올해는 세종대왕께서 즉위하신지 6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여 행사의 의미가 더욱 특별하다.”라고 말한다.

 

이날 행사는 ▲ 초헌관(初獻官, 영릉봉양회장)의 분향(焚香, 향을 피움)과 헌작(獻爵, 술잔을 올림), ▲ 축관(祝官)의 축문 낭독, ▲ 대통령을 대신한 문화재청장의 헌화(獻花)와 분향의 순서로 진행된다.

 

 

숭모제전 행사 외에도 세종대왕역사문화관 기획전시실에서는 ‘세종대왕이 사랑한 학자들’(5.1.~7.1.) 특별전이 개최되고 있어 보물 제1405호 비해당소상팔경시첩(匪懈堂瀟湘八景詩帖)을 비롯하여, 성삼문, 신숙주, 정인지 등 세종이 아꼈던 집현전 학자들의 글씨와 초상화 등을 관람할 수 있다.

* 보물 제1405호 비해당소상팔경시첩(匪懈堂瀟湘八景詩帖):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安平大君, 1418∼1453, 호는 비해당(匪懈堂))의 소상팔경에 대한 서예작품으로 원래 두루마리였으나 현재는 절첩장 형태로 남아있으며, 집현전 학자 등 저명한 문인학사 19명이 직접 쓴 시문이 담겨있음

 

생일잔치는 가능하면 태어난 곳이어야 한다

 

《세종실록》 총서에 보면 “태조 6년 정축 4월 임진에 한양 준수방(俊秀坊) 잠저(潛邸)에서 탄생하였다.”라고 세종이 태어난 때와 곳을 애기하고 있다. 세종대왕의 이름은 "도(祹)이고, 시호는 장헌(莊憲)으로 서기로는 1397년 5월 15일 태종과 원경왕후(元敬王后) 민씨(閔氏)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럼 태어난 곳 준수방은 지금의 어디일까? 준수방은 현재 종로구 통인동, 옥인동 일대로 경복궁 서쪽문인 영추문길 맞은편 의통방 뒤를 흐르는 개천 건너편인데, 청운동을 흘러내리는 한줄기 맑은 물과 옥인동으로 내려오는 인왕산 골짜기의 깨끗한 물줄기가 합쳐지는 곳이다.

 

현재는 경복궁 전철역에서 북쪽으로 200여 m쯤 가면 길가에 초라하게 “준수방터”라는 표지석 하나만이 달랑 있다. 별로 행적이 없는 사람들도 생가 하나쯤 복원해두는 세상인데 우리 겨레의 위대한 스승이신 세종대왕의 생가 복원이 안 되고 있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세종대왕 탄신 숭모제전은 봉행된다고 하는데 그 봉행 장소가 태어난 곳이 아니라 경기도 여주 세종대왕릉(英陵)이다. 세종대왕릉이란 죽은 세종대왕이 잠들어 계신 무덤이 아니던가? 그런데 생일잔치를 무덤에서 하다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태어난 곳을 전혀 모른다면 어쩔 수 없을지 모르지만 세종이 서울 경복궁 옆 준수방에서 태어났음은 만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생일잔치를 무덤에서 하는 이 어이없는 일은 언제나 멈출 것인가?

 

10여 년 전 세종생가터 복원을 위해 뛰어다니던 시절 우리는 서울시 문화과 담당공무원들과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때 세종생가터 복원을 강력히 주장하던 우리에게 그들은 세종이 태어나신 사가 곧 잠저가 정확하게 어딘지 찍을 수 없다는 것과 세종 잠저 모양을 정확히 알 수가 없어서 생가터 복원은 어렵다고 하여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당시 이방원의 사가 곧 세종의 잠저는 99간 큰집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더구나 집 안에 큰 연못이 있었다는 기록을 보면 현재 준수방 표지석이 세워진 그 뒤쪽 곧 체부동 시장부터 청운효자동주민센터 건너편 쪽 어디를 찍어도 잠저라고 볼 수 있다는 게 많은 사람들의 한결 같은 이야기다. 그런데도 세종이 태어나신 곳의 위치 타령이나 하고 있을 것인가?

 

건축물대장이나 사진ㆍ설계도ㆍ조감도 따위가 없어 생가터 복원이 안 된다?

 

게다가 건축물대장이나 사진ㆍ설계도ㆍ조감도 따위가 없어 생가터 복원할 수 없다면 세종기념관이라도 지어야만 할 텐데 이렇게 외면하는 공무원들은 “세종의 탄생지 따위는 모르겠다.”는 발상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본 교토에는 교토를 건설했다는 50대 간무천황(桓武天皇)을 모신다는 엄청난 규모의 헤이안신궁이 있다. 1895년에, 헤이안쿄 천도 1,100주년을 기념해 교토에서는 내국권업박람회가 열렸는데, 이때 주요 행사장의 하나로 쓰기 위해서 천도할 당시의 다이다이리(大內裏) 곧 궁성의 일부를 복원하는 것으로 천도 당시의 5/8 규모로 지었고 박람회가 끝난 뒤 간무천황을 모시는 신사로 바뀐 것이다.

 

 

하지만 전체 면적이 2만평이라고 하는 이 선명한 붉은 빛이 특징인 신궁은 1,100년 전 처음 세워졌을 당시의 정확한 규모나 모양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자기들의 옛 역사서인 《일본서기》의 기록을 바탕으로 했다지만 설계도나 사진 또는 그림이 정하지 않는 것은 뻔한 일이기에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지었다. 또근거없이 지었다고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다.

 

그렇게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조상을 기리는데 우리는 위대한 성군이라 하면서도 세종이 태어난 곳에 당시의 위치나 크기 그리고 모양을 잘 모른다는 변명거리로 기념관 하나 짓지 않는다는 이 어이없음을 어찌할 것인가?

 

경복궁 서쪽 영추문을 꽁꽁 닫아 놓은 까닭은?

 

지난 4월 21일부터 5월 6일까지 문화재청이 주최하고, 한국문화재단과 대한황실문화원이 공동 주관한 제4회 궁중문화축전 가운데 경복궁 행사의 하나로 세종 즉위 600돌을 기념하는 [한글타이포전]이 경회루 앞 수정전 일원에서 있었는데 이때 <붉은 한글>전을 한 서울여대 한재준 교수는 준수방의 복원에 더해 경복궁 서쪽 영추문이 굳게 닫힌 것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영추문은 경복궁 서측 문이다. 지금은 굳게 닫혀있다. 저 문이 열려야 한글길이 열린다. 이유? 짧게 설명하겠다. 경복궁은 훈민정음 창제의 중심 공간이며, 《훈민정음》 해례본을 집필한 곳이다. 또한 이를 주도한 세종 이도는 지금의 경복궁 서쪽 옛 준수방 터에서 태어났다. 경복궁에는 경회루 앞 수정전(옛 집현전 터)을 비롯하여 흠경각, 사정전, 강녕전 등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된 역사적인 공간이 곳곳에 있다. 이런 사실과 각 장소에 얽힌 사연을 잘 풀어내면 경복궁의 상징성은 더 높아진다. 따라서 한글의 가치도 더 실감나게 전할 수 있다.

 

이 문은 세종 이도와 한글과 경복궁과 통인동 일대의 역사 문화적인 가치를 자연스럽게 이어줄 중요한 통로이다. 한글길의 핵심 통로다. 닫혀 있는 이 문을 열기만 해도 긍정적인 변화가 이어질 것이다. 사람이 드나들면, 역사문화의 숨길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 지역에 얽힌 역사 문화의 실타래가 하나둘 풀릴 것이다. 경복궁이나 조선의 임금 세종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인왕산과 어진 사람의 이야기, 인왕산 기슭에서 뛰어 놀던 소년 이도의 이야기까지 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이다.

 

준수방 복원은 정말 저들 말대로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추문 여는 게 뭐 어려운 일인가? 그들은 청와대 앞길까지 개방한 지금 느닷없이 경호 문제를 들먹이고, 영추문을 관리하는 직원이 더 필요하다며 예산 운운한다. 한글가온길 답사길을 개발하여 답사를 이어가고 있는 김슬옹 세종나신곳성역화국민위원회 사무총장은 “한글을 반포한 경복궁에서 세종 나신 곳인 세종마을(서촌) 통인동까지 가려면 이 문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만일 이 문이 아니라면 30분을 더 돌아서 가야 할 수밖에 없다.”며 하루 속히 영추문 문을 열 것을 호소하고 있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정권이 바뀌어도 실무를 장악하고 있는 공무원들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 것도 못할 일인가? 제발 공무원들이여 나라를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뭐가 올바른 일인가 고민해주길 바란다. 문화관광부 장관은 세종 생가터 복원을 이제라도 시작해야 하고 문화재청장은 속히 영추문을 열어주길 바란다.

 

김영조 발행인 pine9969@hanmail.net
Copyright @2013 우리문화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 32. 그린오피스텔 306호 | 대표전화 : 02-733-5027 | 팩스 : 02-733-5028 발행·편집인 : 김영조 | 언론사 등록번호 : 서울 아03923 등록일자 : 2015년 | 발행일자 : 2015년 10월 6일 | 사업자등록번호 : 163-10-00275 Copyright © 2013 우리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ine9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