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문명에 지친 현대인들의 선망

2020.03.09 10:59:59

조영남 <도시여 안녕>
[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129]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내겐 자신을 “DNA 반역자"라 부르는 벗이 한 명 있다. 지천명에 가깝도록 인류의 보편적 삶에 세뇌되어 살다가 반백(半白)이 되어서 반역의 길에 발을 들여놨다. 사업의 실패가 잠자던 그의 반골기질을 깨운 것이다. 그는 이참에 종전의 자신의 삶을 확 뒤집기로 작정한다.

 

그 첫 번째 작업으로 도시의 표상인 서울을 버리기로 하고 그길로 아내의 손을 이끌고 무작정 떠났다. 달랑 칠십 만원이 남은 재산의 전부였다. 부부의 발길이 닿은 곳은 가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생면부지의 강원도 산골이었다. 부부는 그곳에서 남의 집 날품팔이로 연명하며 뒷날을 도모한다.

 

몇 해 뒤 성실과 근면으로 노력한 끝에 인적 없는 골짜기에다 반역의 본거지를 마련하기에 이른다. 전력 혜택은 거부했지만, 산채만큼은 흙벽돌로 제법 그럴 싸 하게 지었다.

 

그때를 시점으로 그는 본색을 드러낸다. 철저하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설계되어 있는 현생인류의 뇌 구조에 반기를 들고 혁명의 나팔을 분 것이다. 우선 무슨 무슨 날이니 하는 “날”부터 없애기로 했다. 명절, 생일, 결혼기념일, 제삿날…. 강요당하기 싫다는 게 이유였다.

 

다음으로 한 일이 어머니를 갑갑한 부도탑에서 해방시키는 일이었다. 혹시라도 술주정뱅이에다 무책임한 가장이었던 아버지의 피가 자신에게도 흐르고 있을까 하여 후손도 안 본 그였지만, 눈물밥을 지어 먹인 어머니가 고맙기도 하고 안쓰러워 앞마당에 부도탑을 쌓았었는데 마음에만 두기로 하고 바람 타고 가시게 했다.

 

그다음이 성(姓)을 없애는 것이었다. 그의 시조가 의롭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바람 부는 날이면 풍(風)씨요, 비 오는 날이면 우(雨)씨, 아무것도 안 오면 무(無)씨라 하더니 이젠 아무것도 붙이지 않는다. 그리고는 아예 이름마저 없앴다. 이름처럼 그렇게 어질게 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 부를 일이 있으면 그냥 그가 하는 일을 따라 “목부”라 부른다. 그는 마른 나무에 새 삶을 다듬어주는 일을 하고 있다.

 

진인사 대동지(盡人事 待同志)!

이제 버릴 것은 버리고 갖출 것은 갖췄으니 그에게 남은 일은 혁명동지들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그와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그를 찾는 이들은 한결같이 산채 입구에서 무장해제를 당해야 한다. 권위와 지위와 허세와 가식, 물욕을 당목 가지에 걸어두고 나서야 혁명본부에 안내된다. 그리고 자연과 생명과 이웃을 사랑하며 따스한 마음으로 살겠노라는 행동강령에 맹세를 하고 나면 그의 혈족이 된다.

 

얼마 전 그가 고로쇠 물을 한 짐 지고 다녀갔다. “코로나 19” 때문에 개점휴업 상태에 있는 내가 걱정돼서 일 것이다. 그는 떠나며 한 마디 던졌다. “이젠 그놈의 음반으로부터 좀 자유로워지라고. 그것마저 내려놨을 때 참 자유와 진정한 행복이 찾아온다.”라고.

 

벗이여! 머잖아 나도 그대처럼 자연의 품에 안길 것이오. 세상에 져서 피해 가는 게 아니라 세상이 더러워서 버리는 것*도 아니라 자연과 같은 숨을 쉬기 위함이라오. 하지만 음반만은 끝내 놓지 못하겠으니 그대처럼 전기가 없는 곳은 아니겠지. 참 자유와 진정한 행복을 조금 희생하더라도 말이오.

 

 

바이 바이 바이 정든 도시여 굿바이

너를 두고 나 돌아간다

바이 바이 바이 정든 도시여 굿바이

나 돌아갈 집이 있단다

라디오 티비도 없고

신문 잡지도 없고

전화 한 통 걸려오지 않는

아주 한적한 곳에

논 갈고 밭 가는 나의

진짜 집으로 나 돌아간다

도시여 안녕 

 

바이 바이 바이 정든 도시여 굿바이

정든 도시여 굿바이

너를 두고 나 떠나간다

바이 바이 바이 정든 도시여 굿바이

나 두고 온 집이 있단다

빌딩도 인파도 없고

공해도 소음도 없고

열쇠 하나 사용하지 않는

아주 단출한 곳에

촛불 하나 밝히는 나의

진짜 집으로 나 돌아간다

도시여 안녕

 

라디오 티비도 없고

신문 잡지도 없고

전화 한 통 걸려오지 않는

아주 한적한 곳에

 

논 갈고  밭 가는 나의

진짜 집으로 나 돌아간다

도시여 안녕

 

                                   - 조영남 ‘도시여 안녕 가사’ -

 

성악도 출신 가수 조영남은 1945년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나 1.4후퇴 때 월남하여 충남 예산에서 자랐다. 서울 용문고등학교를 거쳐 61년에 한양음대 성악과에 들어갔다가 자퇴한 뒤 64년에 서울음대 성악과에 들어갔다. 45년생이 61년에 대학에 입학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의 호적 나이가 정확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학생 때부터 만능연예인 기질을 발휘한 그는 학업보다 연예활동에 열심이었고 결국 자퇴라는 형식으로 학업을 포기하게 된다. 그 뒤 미8군 무대와 “쎄시봉”등에서 맹활약한 그는 한국의 대표적 가수로 성장한다. 성악 바탕에다 대중음악의 기교를 입힌 그의 창법은 대중들을 매료시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불혹을 넘긴 성숙기에 자신이 직접 만들어 부른 <도시여 안녕>은 그의 호방한 가창력과 호흡이 가사와 잘 어우러지는 작품이다. 흡사 무개차(無蓋車)를 타고 시골길을 달려가는 듯한 청량감을 준다.

 

노래뿐 아니라 산문작가와 화가로도 명성을 쌓은 그는 연예인 가운데 손꼽히는 자산가이기도 하다. 겉모습만 보면 성공한 삶처럼 보이지만 끊임없이 불미스런 사건과 추문을 만들어내는 점은 그의 인생 여정에 가장 큰 흠결로 남는다.

 

 

*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시구에서 인용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ccrksa@hanmail.net
Copyright @2013 우리문화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 32. 그린오피스텔 306호 | 대표전화 : 02-733-5027 | 팩스 : 02-733-5028 발행·편집인 : 김영조 | 언론사 등록번호 : 서울 아03923 등록일자 : 2015년 | 사업자등록번호 : 163-10-00275 Copyright © 2013 우리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ine9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