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창무대의 성공적 요소

2020.04.07 11:05:42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66]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고향임 명창이 대전시 무형문화재, 판소리 종목의 예능 보유자로 인정받았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녀가 부르는 동초제란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하였다. <동초(東超)>는 김연수(金演洙)의 아호이며, 동초제란 김연수 명창이 스승들로부터 배운 소리를 기초로 하여 서편제의 애잔한 소리와 동편제의 우람한 소리를 융합하여 새로 만든 소리라는 이야기, 동초가 판소리 5바탕을 정리 출판한 일은 후학들 교육에 큰 역할을 하였다는 점을 얘기했다.

 

또 김연수의 큰 제자, 오정숙(1935~2008)은 5바탕의 완창, 제1회 전주대사습 장원, 국립창극단 활동, 1991년 국가무형문화재 5호 판소리 예능보유자에 올랐으며 소리, 발림, 연기 등이 혼연일체가 되어 완숙한 기량으로 한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 명창이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궁중음악이나 정악계통은 대부분의 악곡이 율자(律字)악보나 정간(井間)보로 전해지고 있어서 연주자들의 즉흥성은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나 민속음악의 경우는 다르다. 특히 성악의 판소리나, 무가(巫歌), 기악의 산조 음악은 즉흥성이 생명이어서 이들 음악은 악보화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렇다면 스승의 소리를 어떻게 전해 받았을까? 스승과 마주 앉아 직접 소리를 주고받으면서 스승의 가락이나, 창법, 표현법 그 자체를 익혀 온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입으로 전하고 마음으로 준다, 또는 입으로 전하고 마음으로 받는다 하여 ‘구전심수 (口傳心授, 口傳心受)’ 방법이다.

 

1960년대 이후, 학교 교육에서 국악, 특히 민속음악이 지도되기 시작하면서 그 지도 방법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한 것이다. 곧 여러 학생을 지도하기 위해 약속의 체계가 필요해 지면서 자연스럽게 악보화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악보에 의하여 교수하다 보면, 음악의 생명인 즉흥성은 배제되기 마련이란 점을 말이다. 그래서 악보로 산조를 배우고,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명인, 명창이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오는 상황이다. 민속음악의 전승에 있어서 ‘악보’의 존재 이유에 관한 논의는 또 다른 기회로 미루고, 여기서는 다시 고향임 명창의 완창이 성공하게 된 배경 이야기로 이어가도록 한다.

 

 

충분히 공감되는 이야기이지만, 판소리 완창무대란 의욕만 있다고 해서 성사되는 일이 결코 아니다. 성공을 위해서는 소리실력을 포함하여 목소리, 체력, 가사 암기, 연기, 장단과의 호흡 등등, 다양한 조건을 갖추어야 성공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장시간을 소리하기 위해 체력적인 조건과 목(성대)관리가 절대적이 아닐 수 없다. 목청이 쉰 상태로는 소리를 할 수도 없고, 그러한 소리를 듣고 앉아 있을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다음 조건은 사설의 암기가 확실해야 한다는 점이다. 10분, 아니 5분 미만의 노래가사도 막히는 경우를 왕왕 보는데, 한 시간이나 두 시간도 아닌 8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사설이고 보면, 그 암기가 얼마나 힘든 과정인가는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는다. 혹, 사설의 암기가 완벽하다고 해도, 이를 소리로 옮겨 가는 과정이 또한 어렵다. 사설의 전개에 따라, 또는 어휘에 따라 고저(高低)의 가락선이라든가, 장단(長短)틀에 얹어 불러야 하는 과정, 그리고 다양한 표출을 위한 시김새의 처리 등이 쉽지 않은 과정이 된다.

 

긴 사설을 정확하게 암기하고, 또한 그 사설들을 고저 가락에 맞추고 장단에 얹는다고 해서 완창이 되는 것인가? 아니다. 사설에 따라 연기력을 입혀야 하는 조건이 소리꾼의 수준을 가늠하게 된다.

 

우리가 판소리 완창 무대를 어렵다고 평하는 이유가 단지 소리를 만들어 내고, 다양하게 다루는 능력이 요구되기 때문은 아니다. 소리로 극(劇) 중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음악적 능력은 기본이고, 중간 중간에 대사, 곧 말로 풀어가는 <아니리>의 능력도 자연스럽게 갖추어야 하며, 특히 몸동작으로 표현되는 연기 일체의 <발림>은 판소리 완창의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특히, 이 연극적인 표현 능력은 사설에 맞도록 표현되어야 자연스러운 것으로 전문가들은 이를 이면(裏面)에 맞아야 한다고 표현한다.

 

다시 말해, <발림>은 바로 사설이 지닌 속뜻을 창과 연기로 멋스럽고 자연스럽게 표출해서 가사의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되도록 표현해야 하는 요소이다. 가령, 높게 솟아 있는 달이나 만학천봉(萬壑千峰)과 같은 높은 대상은 고음(高音)으로 질러내야 하고, 평평하거나 낮은 대상은 저음으로 불러야 한다. 또한 원근(遠近)의 표현법도 분명하게 구분해서 먼 것은 길게, 가까운 대상은 짧게 붙여 사설 내용에 맞아야 한다.

 

사설의 이면을 살려내는 능력은 오랜 기간, 훈련 없이는 불가능한 영역으로 사설에 따른 적절한 연기가 중요하다. 만일 이를 생략한다면, 소리와 극이 각각 분리되어 청중이 공감하기 어렵다. <아니리>나 <발림>이 <소리> 못지않은 판소리의 주요 구성요소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판소리는 줄거리가 있는 긴 이야기여서 문학이며, 동시에 소리꾼이 장단에 맞추어 노래하기 때문에 음악이다. 그러면서 노래를 부르며 춤도 추고, 연기도 곁들이기에 연극이기 때문에 어려운 장르라 할 것이다.

<다음 주에 계속>

 

서한범 명예교수 suhilkw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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