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스러운 ‘예서체’가 발달했던 까닭은?

2020.09.06 11:26:44

경제적으로 부유했던 사람들의 기록이 남아 있는 것
[정운복의 아침시평 60]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한자 서예는 ‘전예해행초(篆隷楷行草)’

곧 전서(篆書)ㆍ예서(隷書)ㆍ해서(楷書)ㆍ행서行書)ㆍ초서(草書)로 분류합니다.

글자의 발전과 흘려 쓰는 정도에 따른 분류법이지요.

개인적인 차이는 있지만 저는 ‘예서(隸書)’를 가장 좋아합니다.

 

제가 예서를 좋아하는 이유는 고풍스런 맛과 획의 수려함,

가로획이 주는 웅혼함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예서체는 노예들이 발전시킨 서체입니다.

‘隷’자가 노예 ‘예자’거든요.

 

 

사회 초년병 시절에 아이들에게 한자 빽빽이를 시킨 적이 있습니다.

물론 효과가 적지는 않았지만,

억지 반복 속에서 학습효과를 기대할 수 없어 중간에서 그만둔 것이 생각납니다.

 

인쇄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기에 책을 소장하기 위해서는

필사가 가장 일반적이었을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같은 내용을 베껴 적어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그 귀찮은 일을 노예에게 시켜서 하게 합니다.

그것이 예서체가 발달하게 된 배경입니다.

 

고문은 수많은 판본이 존재합니다.

그 까닭은 필사하면서 잘못 베낀 이유도 있고

진시황의 분서갱유 사건 이후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책을

단지 머릿속에 기억돼있는 지식을 중심으로 다시 기록했기 때문에

그 정확성을 담보하지 못한 결과도 큽니다.

 

어찌 됐거나, 우린 출판물이 넘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옛날 위대한 문장가들을 봅니다.

오래 전부터 전해진 책들은 당대에 책을 펴낸 경우는 드물고

자식들이 부모의 책을 펴낸 것이 일반적이었지요.

문제는 목판본으로 만들던, 금속활자로 만들던

어마어마한 자금이 들어가는 것이 사실이고

경제적으로 부유했던 사람들의 기록이

후대에 남아 있다는 것도 생각해 볼 일입니다.

 

김홍도, 신윤복이 유명한 화원인 까닭은

그들의 그림이 서민들의 풍속을 주된 소재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사는 왕조 중심의 역사는 있어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백성들의 삶을 다룬 역사는

별로 없었으니 말이지요.

 

 

아침에 책을 정리하다 지난 시절 모셨던 대학 은사님의 서화집을 보고

예서의 멋스러움에 취하여 짧은 단상을 털어놓아 봅니다.

 

정운복 칼럼니스트 jwb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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