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임새가 넘치는 세상을 만들어나가자!

2020.11.30 21:31:44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500]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매주 화요일, 독자들을 만나 온 국악속풀이가 이번 주로 500회를 맞게 되었다. 당시 <신한국문화신문>이란 이름의 인터넷 신문을 발간하고 있던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이윤옥 시인, 이무성 화백 등, 3인은 나를 만난 자리에서 “국악 듣기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는 점”, “국악감상이나 이해에 가까이 접근하려 해도 쉽지 않다는 점”, “그들을 위해 쉽게 안내하는 글을 신문에 써 주었으면 한다는 점” 등을 청해 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요청이 매우 현실적이며 진지했기에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당시 나는 몸담고 있던 대학에서 정년퇴임을 하여 다소 시간 여유는 있게 되었던 차였고, 이러한 기회에 인터넷 신문을 통해서 독자들과 만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판단해서 긍정적으로 대답한 것이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주 1회, A4 2장에 국악 관련 이야기들을 생각나는 대로 써보는 작업은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때그때, 생각나는 이야기, 또는 발표 공연이나 연주회, 학술모임, 등등, 국악 행사와 관련하여 보고 느낀 점 등을 중심으로 적어보기로 한 것이다.

 

지난 10여 년, 이 글을 쓰면서 기억나는 내용들이 떠 오른다.

 

‘치세지음 (治世之音)’, ‘난세(亂世)지음’, ‘망국(亡國)지음’ 등이 있으니 위정자들은 일반 국민들의 마음을 제대로 살펴야 한다는 이야기, 정악과 민속악은 자전거의 앞뒤 바퀴와 같다는 이야기, 전통가곡과 시조창 이야기, 우리 음악의 다양한 기보법 이야기, 무형문화재 정책과 관련된 이야기들, 벽파 이창배의 생애와 예술세계, 경기좌창과 민요창 이야기, 한-중 전통음악교류회의 시작 배경과 활동내용, 심상건 명인과 가야금 산조 이야기, 쌍절금기와 거문고 이야기, 판소리 5대가 가운데 김수연의 춘향가 이야기, 정순임의 흥보가 이야기, 고향임의 동초제 춘향가 이야기, 최윤희의 도살풀이 이야기, 기타 각 지방의 경연대회 풍경, 그리고 최근에는 L.A 김동석 교수의 국악 활동 이야기 등을 두서없이 써 오고 있다.

 

무엇보다도 제1회의 이야기를 무슨 내용으로 시작할까? 고민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다가 <추임새>를 소개하기로 하였다. 이유는 공연장을 찾았을 때, 무대 위에서 열연하고 있는 연주자나, 또는 연창자에게 격려의 손뼉을 치는 자세부터 가져 보자는 뜻이었다. 그 글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얼마 전, 국회의원을 지낸 ㄱ 씨, 그리고 모 은행장을 지낸 ㅂ 씨와 함께 식사자리를 함께 한 적이 있었다. 이들은‘00회’라는 바둑동호인 모임을 함께 하는 분들이어서 자주 만나는 사이였다. 그 자리에서 ㄱ 씨가 실토하듯이“나는 추임새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 서 교수의 《추임새에 인색한 세상》이란 책을 보고, 그 말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라고 말하자, 이번에는 옆에 앉아 있던 ㅂ 씨가 “추임새라니요? 추임새가 무슨 말입니까? 어떤 새 이름입니까? 라고 묻는 것이었다.”

 

당시 추임새를 새의 이름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기회에 다시 한번 소개한다면 <추임새>란 북을 치는 고수(鼓手)가 소리의 반주를 하면서 구절이나 대목 끝에서 얼씨구, 으이, 좋지, 좋다, 잘한다. 등의 흥을 돋워 주는 조흥사(助興詞)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추임새는 창자(唱者)가 흥이나 기운을 북돋아 주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북을 정확하게 치고, 또는 강약을 구별해서 친다고 모두가 유명 고수의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니다. 추임새를 적절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고수는 절대 명고수(名鼓手)가 될 수 없다. 고수의 추임새는 물론이고, 객석에서 터져 나오는 추임새가 소리꾼에게 그 긴 시간을 버텨 나갈 수 있는 에너지의 보충원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축구나 야구경기에서 관중의 응원이 추임새이고, 가정이나 직장, 우리 사회의 구성원 간에도 추임새를 통해 에너지를 보충할 필요는 충분히 있는 것이다.

 

오늘은 내가 소리를 하고 있고, 상대가 북을 치고 있지만, 내일은 내가 북을 잡고 상대가 창을 할 수도 있다. 일방적으로 받을 수만도 없고, 또한 줄 수만도 없는 것이 곧 추임새인 것이다.

 

우리 사회가 더욱 밝고, 명랑한 사회로 바뀌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추임새의 원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상대를 깎아내리거나 비웃지 말고 격려하며 칭찬하자. 상대를 위하고 나를 위해서도 추임새를 아끼거나 그것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우리 스스로 추임새에 인색한 세상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

 

 

상대를 추켜세우는 추임새야말로 우리 사회를 따듯하고 선하게 만들어 가는 요소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사회 지도층 인사들부터 추임새의 원리를 이해하고 모범적인 태도를 보여 주어야 한다. 간혹 보면, 모범을 보여야 할 지도층 인사들이 더 추임새에 인색하고, 심지어 험한 말들을 주고받는 경우를 쉽게 본다. 쏘아 버린 화살, 땅에 쏟아버린 물, 입 밖으로 튀어 나간 말 한자리들은 다시 원상회복이 안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오늘부터라도 상대를 위해 추임새를 아끼지 말자.! 우리 스스로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상을 추임새가 넘치는 세상으로 만들어나가도록 노력하자!!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suhilkw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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