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 L. A 각급학교에서 한국음악 강의

2020.12.07 22:23:46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501]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매주 화요일, 독자들을 만나 온 <서한범의 한국음악이야기>가 지난주로 500회를 맞게 되었다. 두서없는 이야기였음에도 독자들로부터 격려와 응원에 힘입어 여기까지 왔다는 점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앞에서는 “한국정부의 지원 약속, 지켜지지 않아 실망”이라는 제목의 <한국민속보존단체>의 탄생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미국 연방 정부로부터의 운영자급을 받아 10여 명, 다음 해에는 20여 명의 생활비가 지급되었다는 이야기, 동 단체는 각급 학교를 방문, 한국과 미국의 동맹 관계, 한국의 역사, 한국의 전통음악과 춤의 실연, 때로는 지역의 불우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도 해 왔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어서 미 공화당의 새로운 정책으로 인해 이 직업훈련 프로그램은 끝나게 되어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중, 1980년 3월, 한국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단원들은 대대적으로 환영 연주를 하였다는 이야기, 대통령을 수행하던 당시 국방부 장관은 대통령과 상의해서 매년 30만 달러의 기금을 보내 주겠다는 약속을 했으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김동석 교수가 <한국음악무용예술단-Korean Classical Music and Dance Company>을 창단하여 L. A 지역 내의 초-중-고교에서 한국음악을 강의해 온 이야기를 진행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은 이민자들이 구축한 나라다. 1980년 초, 당시 L.A 지역의 어느 학교는 150종의 각기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학생들이 있었다는 보고가 있을 만큼, 많은 민족이 모여 살았다. L. A 교육국에서는 그 다양성을 살리고 존중해 주기 위해 학생들에게‘다문화 이해의 교육 프로그램’ ICAP (Inter Culture Awareness Program-)을 하였다.

 

다시 말해, 민족 특유의 예술을 통해서 서로를 이해하고, 같은 공간에서 살면서 동질감을 얻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 많은 민족을 모두를 수용할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예술성이 뛰어나고 교육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정해서, 그 취지에 걸맞은 예술인이나 단체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의 분위기를 김동석 교수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한국음악무용예술단( Korean Classical Music and Dance Company)이란 이름으로 무조건 오디션에 응모했지요. 그동안 한국의 전통음악이나 춤이 교포사회를 비롯해 L. A 지역에 널리 알려진 덕분인지. 쉽게 통과되었어요. 곧바로 4~5명의 단원과 함께 L.A 지역에 있는 학교를 방문, 공연 수업을 시작하였지요. 비록 적은 단원으로 구성되었지만, 학생 수가 적은 학교는 1일 1~2회, 학생 수가 많은 학교에서는 하루 3~4회, 공연도 마다하지 않았어요. 아마도 연 200회 정도의 학교 공연이 이루어졌으니, 한국의 역사와 문화, 언어, 전통예술을 통해 한국이 문화의 강국임을 소개한 셈이지요.

 

학교장이나 교직원, 학생들의 반응도 대단히 좋았습니다. 이렇게 1980년 이후, 남가주에 있는 모든 학교에서 예술교육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자, 점차 이웃 지역에서도 요청이 쇄도했지요. <Performing Tree>라고 하는 L.A 이외의 지역을 담당하는 에이젠트까지 생겨날 정도였습니다. 그리하여 오렌지 카운티를 비롯하여, 산버나디노, 리버 싸이드, 벤추라 카운티 등의 학교에서도 방문 수업을 하게 되었어요. 아마 이들 지역을 모두 합치면 거의 남한 전체와도 맞먹는 크기의 광범위한 지역이 될 것입니다.”

 

 

 

각급 학교에서의 수업시간은 초등학교, 중 고교가 각기 다르지만 대략 40~45분 동안 강의하게 되어 있다. 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시간도 이에 준한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특징적인 예술, 특히 전통음악과 춤을 감상하는 수업이기 때문에 먼저 한국을 소개하는 것으로 강사는 입을 열게 마련이다.

 

“‘한국이란 나라는 어디에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요. 88 서울올림픽이 세계인의 축제로 치러지고 싸이의 노래, K-팝, 한류(韓流), 방탄소년단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세계 구석구석에 한국이 알려진 지금과 견주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얘기라고 하겠지만, 미국인들에게 있어 88년 서울올림픽 이전의 한국은 매우 생소한 나라였지요.

 

한국전쟁을 아는 나이 많은 사람들은 아시아 어디에 있는 가난한 나라, 공산주의와 싸운 나라, 정도로 알고 있어요. 그리고 대부분 젊은이나 어린 학생들 가운데는 한국이 아시아에 있다고 대답하는 학생은 고학년 일부이지요. 극히 일부는 아프리카에 있다고 대답하는 학생들조차 있었습니다.”

 

 

한국이 세계 속에 중심을 이루고 있는 일들이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은 절대 아니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우리들처럼, 각계 각 분야에서 우수한 한국의 전통을 미국 땅에 심어온 한국인들, 특히 젊은이들이 있어서 가능했고, 그 작은 노력들이 모이고 쌓여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다음 주에 계속)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suhilkwan@hanmail.net
Copyright @2013 우리문화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 32. 그린오피스텔 306호 | 대표전화 : 02-733-5027 | 팩스 : 02-733-5028 발행·편집인 : 김영조 | 언론사 등록번호 : 서울 아03923 등록일자 : 2015년 | 사업자등록번호 : 163-10-00275 Copyright © 2013 우리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ine9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