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피던 매화는 피었던가?

2021.02.06 11:41:12

[‘우리문화신문’과 함께 하는 시마을 45]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고  향

 

                             - 장 만 영

 

       그대

       고향에 다녀왔다니

       묻노네만

       내 살던 창가에

       옛 피던 매화는

       피었던가

       아직은 이르던가.

 

 

“서양 시인들은 녀자와 장미 (薔薇)를 노코는 시를 못 지으리만큼 녀자와 장미를 노래하엿다 하면 동양의 시인들은 술과 매화가 업고는 시를 지을 수가 업스리만큼 술과 매화를 을펏슴니다. 그는 지나(중국) 시인이 그랫고 일본 시인이 그랫고, 우리 조선의 시인들이 또한 그랫슴니다. 그리고 정다운 고향을 떠나 천리 객장에 몸을 붓친 외로운 손도 고향의 친구를 만나 고향 소식을 무를 때에는 가정의 안부보다도 뜰 압헤 심어잇는 매화의 피고 안 핀 것을 먼저 뭇고 과년한 처녀가 그리운 님을 기다릴 때에도 매화 열매의 일곱 남고 셋 남고 필경은 다 떠러지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생각이 더욱 간절 하얏답니다.”

 

이는 일제강점기 잡지 《별건곤》 제5호(1927년 03월 01일)에 실린 “매화(梅花)와 수선(水仙) 이약이”에 나오는 구절이다. 왜 그렇게 우리 겨레는 매화를 좋아했을까? 조선 중기 문인 신흠의 상촌집에는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이라는 구절이 있다. 매화는 한평생 추운 한파에 꽃을 피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말이다. 따라서 옛 선비들은 매화를 절개가 굳은 꽃으로 보았고, 그래서 사군자의 하나로 꼽았다. 눈 속에서 꽃망울을 터뜨리는 '봄의 전령사' 매화. 저 멀리 남도의 땅끝마을에, 순천 선암사에, 양산 통도사에 붉은 홍매화가 피었는지 묻노라.

 

장만영 시인은 ‘고향’을 노래하면서 고향에 다녀왔다는 지인에게 “내 살던 창가에 / 옛 피던 매화는 / 피었던가 / 아직은 이르던가.” 묻고 있다. 봄이 오니 고향 그 어떤 소식보다도 창가에 매화가 피었는지 궁금한 것이다. 그러면서 아마도 자신의 가슴 속에도 매화가 피었는지 더듬어보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 장만영 시인은 이 시대의 선비임이 분명하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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