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모양의 부뚜막 유물들

2021.03.26 12:02:09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 추천 유물 91]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철로 만든 부뚜막은 평안북도 운산군 용호동에 있는 고분 3기 가운데 ‘궁녀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네모난 돌방무덤에서 금동 봉황 모양 장식, 금동 투조(透彫, 투각) 금구(金具, 쇠붙이로 만든 손잡이, 문고리, 돌쩌귀, 곽쇠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조각, 토기 등과 함께 출토된 것입니다. 크기는 길이 67.2cm, 높이 29.1cm, 너비 23cm입니다. 긴 네모꼴 한쪽에 아궁이와 솥 구멍을 마련하고, 반대쪽에 굴뚝을 붙인 모양입니다. 아궁이와 굴뚝을 옆으로 나란히 배치한 점이 특징입니다. 아궁이는 네모난 모양이며, 주위에 돋을새김하였고 이마에는 불꽃모양 무늬가 있습니다. 휴대가 가능해 실제로 썼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부뚜막과 아궁이

 

여기서 부뚜막과 아궁이라는 말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부뚜막은 아궁이 위 가마솥이 놓인 언저리에 흙과 돌을 쌓아 편평하게 만들어, 솥의 음식을 담아내는 그릇을 두거나 간단한 음식 재료를 준비하는 곳입니다. 아궁이는 불을 때기 위하여 만든 구멍입니다. 따라서 부뚜막은 아궁이를 포함한 개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부뚜막이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지만, 전남지역에서는 ‘부수막’, ‘부숭’, 제주도에서는 ‘솟덕’으로 부릅니다. 다른 말로는 ‘화덕(火德)’이라고 합니다. 화덕은 중국어를 빌려 온 용어로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선사시대 집자리에서는 난방이나 조리를 위한 시설이 확인됩니다. 이것을 ‘화덕’이나 ‘불 땐 자리’라고 합니다. 이전에 사용했던 ‘노지(爐址)’라는 용어는 일본어에서 빌린 말입니다. 이러한 시설은 바닥을 약간 파기도 하고, 바닥과 주변에 돌을 깔거나 돌리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아궁이와 불 땐 자리의 용도는 서로 같지만, 화구와 솥을 걸 수 있는 시설을 갖춘 것을 아궁이, 특별한 시설이 없는 것을 불 땐 자리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부뚜막과 아궁이

 

부뚜막이나 아궁이는 대개 유구나 유물로 확인됩니다. 고구려 유적에서는 안악3호 무덤과 약수리무덤 등의 벽화에 그림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만, 대부분 부뚜막은 집자리에서 확인됩니다. 일부 무덤에서는 껴묻거리로 발견되기도 하지만 수량은 적습니다. 아래 회청색 경질 토제품은 3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황해도 봉산면 양동리 5호 벽돌무덤에서 출토된 것입니다.

 

 

머리가 없는 네발 달린 동물의 모양을 띠고 있습니다. 다리는 따로 만들고 한쪽을 길게 해서 수평을 맞추었습니다. 한쪽 면에 아궁이를 모방한 네모난 구멍을 내고, 그 반대쪽에 원통 모양 굴뚝을 표현하였으며, 위에 구멍을 뚫어 작은 토기 세 개를 얹었습니다. 그 옆에는 단을 만들어 사다리꼴 모양으로 부뚜막을 표현하였습니다. 전체적인 길이는 45.6cm이고 높이는 22.8cm입니다.

 

앞서 소개한 평안북도 용호동 출토 철제 부뚜막과는 달리 아궁이와 굴뚝 방향이 다른 점이 특징적인데, 아마도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중국에서 출토된 부뚜막은 아궁이에서 굴뚝을 보았을 때 세로 방향으로 배치되는 반면, 고구려의 것은 가로 방향입니다. 고구려 벽화에 표현된 것 역시 가로 방향입니다.

 

그다음 3세기대 호서지역과 호남지역의 집자리에서 확인되는 부뚜막입니다. 집자리 한쪽 벽면에 흙과 돌로 부뚜막을 설치하고 굴뚝을 세운 형태입니다. 아궁이 내부에는 솥을 받치기 위해 돌을 사용하였습니다. 부뚜막의 아궁이에 장식했던 아궁이테가 출토되었는데, 돋을새김으로 장식한 토제품입니다. 아궁이 윗면에는 물결무늬 또는 톱니날무늬로 장식하였습니다. 이런 장식은 용호동 무덤 출토 철제 부뚜막의 아궁이 장식과 비슷합니다.

 

 

영남지역에서도 부뚜막이 달린 집자리가 여럿 확인됩니다. 특이한 것은 휴대가 가능한 아궁이 모양 토기가 출토되는 점입니다. 김해 봉황대유적, 부산 낙민동패총 등 주로 생활유적에서 확인됩니다. 아래의 아궁이 모양 토기는 전(傳) 금관가야(金官加耶) 궁터 조사에서 출토된 것입니다.

 

 

높이는 45.8cm이고, 아가리의 지름은 24.5cm입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원통 모양이고, 여기에 화구(火口)와 그 위에 챙을 붙인 형태입니다. 화구 쪽 바닥에 닿는 부분에는 점토를 덧대어 약간 들리도록 하였습니다. 아마도 통풍이 잘되도록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짧은 쇠뿔 모양 손잡이가 양쪽에 대칭으로 붙어있지만, 너무 작아 실질적인 기능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 토기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챙 부분입니다. 화구(火口) 위에 챙을 반원 모양으로 붙이고, 그 위에 다시 점토를 둘러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였습니다. 아마도 조리를 할 때 그릇에서 넘쳐흐르는 액체를 옆으로 흘려보내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배수구 기능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일본열도에서도 고훈시대(古墳時代)의 아궁이 모양 토기가 발견됩니다. 일본 오사카(大阪) 시조나와테(四條畷) 시토미야키타(蔀屋北) 유적에서 출토된 아궁이 모양 토기는 금관가야 궁터로 알려진 김해에서 출토된 것과 매우 비슷합니다. 화구 위의 챙 부분을 살펴보면, 일본 오사카의 것은 직선으로 붙어있고 약간 들려있으며, 김해의 것은 챙 위에 다시 점토를 돌린 점이 특징입니다.

 

비록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가야지역에서 일본열도로 조리와 관련된 문물이 들어갔음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입니다. 한편 호서나 호남지역에서 자주 보이는 아궁이테가 같은 유적에서도 확인되고 있어서 다양한 경로를 거쳐 한반도 남부에서 일본열도로 조리 관련 문물이 들어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리와 관련된 자료로 솥과 시루를 들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솥은 주로 긴 달걀모양 토기를 썼습니다. 영남지역에서는 김해 예안리고분 출토품처럼 긴 달걀모양 토기의 아가리 부근에 전을 달아 아궁이에 걸 수 있도록 한 토기[有顎土器]가 생활유적과 무덤에서 발견됩니다.

 

 

다음에 보시는 것은 비교적 늦은 시기인 남북국시대(통일신라)의 아궁이 모양 토기입니다. 다른 것과는 달리 아궁이와 솥, 시루, 뚜껑이 한 벌을 이룬 모습입니다. 아마도 무덤의 껴묻거리로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경주 월지에서는 당시 사람들이 차를 끓이던 아궁이 모양 토기 두 점이 출토되었습니다. 이 가운데 한 점은 화구와 연통을 갖추고 있고, 윗면에는 크고 작은 두 개의 원형구멍이 있습니다. 전체 길이는 30cm이며, 높이는 18cm입니다. 동그란 구멍의 지름은 11.6cm입니다. 화구 주위에는 아궁이테를 붙였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연통은 뒤쪽에 붙어있으며, 직경 5.4cm, 길이 4.5cm입니다.

 

 

이처럼 부뚜막이나 아궁이 모양 토기 가운데는 무덤의 껴묻거리로 묻기 위해 만든 것도 있지만, 실제로 쓰기 위해 만든 것도 있습니다. 이러한 토기가 생활유적에서 많이 출토되는 점이 이를 증명합니다. 특히 휴대가 가능한 것은 바깥에서 조리할 때 썼던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일부는 항해할 때 배에서 조리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을 것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윤태영) 제공

 

 

 

한성훈 기자 sol119@empas.com
Copyright @2013 우리문화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 32. 그린오피스텔 306호 | 대표전화 : 02-733-5027 | 팩스 : 02-733-5028 발행·편집인 : 김영조 | 언론사 등록번호 : 서울 아03923 등록일자 : 2015년 | 발행일자 : 2015년 10월 6일 | 사업자등록번호 : 163-10-00275 Copyright © 2013 우리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ine9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