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틴제국의 황녀가 된 창녀 테오도라

2021.05.29 11:14:13

《비잔티움 연대기(존 줄리어스 노리치)》 속의 흥미로운 이야기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65]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친한 선배의 딸이 얼마 전에 서점극장 ‘라블레’를 열었다길래 한번 가보았습니다. 서점을 방문했으니 당연히 책을 사야겠지요? 세계문학서점을 지향하는 서점이라 눈에 보이는 것은 거의 다 문학에 관한 책입니다. 그런데 저는 역사와 지리를 좋아하는지라 혹시 그런 책은 없을까 하여 둘러보니, 《비잔티움 연대기》라는 650쪽이 넘는 두꺼운 책(존 줄리어스 노리치 지음, 남경태 옮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것도 1권이 아니라 3권짜리 책이고, 3권은 850쪽이 넘습니다. 비잔틴제국이 330년부터 1453년까지 인류 역사상 제일 오래 지속된 나라이니, 이야깃거리가 많아 이렇게 두꺼운 책이 3권이나 되겠지요. 저는 이번 기회에 비잔틴제국의 역사를 공부해보고자, 이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두꺼운 책이 3권이나 되니 좀 부담되기는 했지만, 꼬마 때부터 잘 알고 있는 선배 딸이 서점을 열었다니, 이왕이면 책값 좀 많이 쓰려고 3권짜리 《비잔티움 연대기》에 지갑을 열었습니다.

 

 

《비잔티움 연대기》를 나의 독서 시간인 오가는 차 안에서만 주로 읽고 있으니, 며칠 전에야 겨우 다 읽었습니다. 2권 뒤표지에는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비잔티움의 역사는 성직자, 환관, 여인들의 음모와 독살, 반역, 배신과 친족 살해 등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예! 이 말마따나 책 속에는 이런 비잔틴제국의 역사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그중에도 더 제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어 여기에 올려보겠습니다.

 

나이가 너무 어려 여자로서 남자와 동침하거나 교접할 수 없었을 때 테오도라는 마치 남창처럼 행동하면서 그 인간쓰레기들을 만족시켜 주었다…. 테오도라는 그들에게 신체의 부자연스러운 통로(항문)를 내주면서 오랫동안 매음굴에서 지냈다..... 그녀는 옷을 벗어 던지고 남들이 눈에 보여서는 안 될 곳을 손님들에게 앞뒤로 몸을 돌리며 모두 보여주었다.

 

그렇듯 철저하게 쾌락에 자기 몸을 내맡긴 여인도 없을 것이다. 그녀는 성적 욕망에 가득 차 있고 혈기도 왕성한 십수 명의 젊은 남자들과 함께 여러 차례 연회에 참석해서 밤새도록 뒹굴며 즐겼다. 그들이 모두 지쳐 나가떨어졌을 때는 그들의 시종들- 어떨 때는 30명이나 되기도 했었다. -을 불러 차례로 교접을 했으며, 심지어 그것으로도 자신의 욕구를 채우지 못할 정도였다.

 

그녀는 자신의 몸에 나 있는 세 개의 구멍을 다 이용하면서도, 젖꼭지에 커다란 구멍이 두 개 더 있었다면 그곳으로도 교접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불평을 늘어놓았다. 어쩔 수 없이 임신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그녀는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여 언제나 곧바로 유산을 할 수 있었다.​

 

때로는 많은 사람이 쳐다보는 극장 같은 곳에서도…. 그녀는 바닥에 벌렁 드러눕곤 했다. 그러면 그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노예들이 그녀의 은밀한 곳에 보리알들을 뿌렸고, 특수한 훈련을 받은 거위들이 부리로 그 보리알들을 하나씩 쪼아먹었다. 일을 마치고 일어났을 때 그녀는 얼굴을 붉히기는커녕 그런 행위에 한껏 자부심을 느끼는 표정이었다.

 

당시 황실 사관이던 프로코피우스가 쓴 《비잔틴제국 비사(秘史)》에 나오는 테오도라라는 창녀 이야기를 노리치가 인용한 것입니다. 내용을 보니 테오도라는 창녀 중에도 저질 창녀로 보입니다. 그런데 포로코피우스가 비잔틴제국 역사에 어떻게 이런 창녀 이야기를 썼을까요? 아무리 비사(秘史)라고는 하지만 말입니다.

 

그건 테오도라가 단순한 창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테오도라는 나중에 비잔틴제국의 황후가 되었습니다. “뭣이라! 창녀가 황후가 되었다고?” 이러면서 놀라시는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예! 맞습니다. 황후가 되었습니다. 그것도 비잔틴제국의 판도를 최대로 넓힌 유스티니아누스 황제(483~565)의 황후가 되었지요. 유스티니아누스는 로마법 대전을 편찬하고 유명한 성소피아 성당도 짓는 등 그냥 황제도 아니고 대제로 불리는 황제 아닙니까? 그런 황제가 어떻게 창녀를 황후로 맞이하였을까요?​

 

테오도라의 아버지는 원형 경기장에서 곰을 다루는 일을 하였고, 어머니는 곡예사였다는군요. 그렇기에 테오도라는 어렸을 때부터 무대에 올라 공연을 했는데, 테오도라는 무대에서 매력적이고 쾌활했으며 익살도 잘 부렸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그녀는 많은 팬을 거느렸고, 오래지 않아 콘스탄티노플에서 가장 유명한 매춘부가 되었다는군요.

 

유스티니아누스가 처음 18살 연하의 테오도라를 보았을 때 테오도라는 30대 중반의 나이였는데도, 유스티니아누는 테오도라를 보자마자 첫눈에 사로잡혔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뿅’ 갔다는 거네요. 한번 눈꺼풀에 뭐가 씌우니, 창녀라는 것도 아무 장애가 안 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결혼에는 걸림돌이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법에 따르면 원로원 의원 등의 고위직 인사는 여배우와 결혼하지 못한답니다. 무슨 법이 그렇지?

 

그러나 유스티니아누스는 은퇴한 배우와는 결혼할 수 있는 것으로 법을 바꾸고, 525년 테오도라와 드디어 결혼합니다. 당시 황제는 유스티니아누스의 삼촌인 유스티누스였는데, 이때도 유스티누스는 꼭두각시였고 유스티니아누스가 실질적인 황제 역할을 했기에, 자기가 결혼할 수 있도록 법을 바꾼 것입니다. 그리고 2년 후에 유스티니아누스가 정식 황제로 등극하면서, 드디어 창녀가 대 비잔틴제국의 황후가 되었습니다.​

 

창녀가 황후가 되었으면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텐데, 테오도라는 단지 허울 좋은 왕비로만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통치에 관여하여 결정은 유스티니아누스 이름으로 나가지만 테오도라가 실질적인 결정을 한 것이 많았다고 합니다. 남자가 세계를 지배하지만, 그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여성이라더니, 테오도라는 황제를 자신의 치마폭에 감쌌군요.

 

그래도 테오도라는 권력만 누리지 않고 여성의 권리를 신장하고 창녀들을 보호하는 법을 제정하는 등 약자를 위한 통치도 했습니다. 그래서 테오도라는 황제에 준하는 ‘아우구스타’라는 칭호까지 받았지요. 그리고 한번은 전차 경주에서 흥분한 관중들이 폭도로 변하여 새 황제까지 추대하며 사태가 심각해진 적이 있습니다. 역사에서 니카의 반란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사태가 이렇게 걷잡을 수 없게 커지니 유스티니아누스는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려고 했답니다.

 

그러자 테오도라가 나서서 어찌 황제가 두려움에 몸을 피하냐며 용기를 주어 다행히 사태를 수습할 수 있었습니다. 테오도라가 49살 나이로 죽은 후, 유스티니아누스는 마누라 치마폭에서 벗어나 단독 통치를 했으나 신통치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대제라고 부를 정도로 뛰어난 황제였던 유스티니아누스도 뒤에 테오도라가 있었기에 대제가 되었던 것 같네요.​

 

테오도라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녀보다 1세기 뒤이긴 하지만 당나라의 측천무후(624~705)가 생각나는군요. 측천무후도 남편 고종을 좌지우지하며 정권을 휘둘렀고, 아들 중종과 예종을 마음대로 갈아치우고 끝내는 자신이 직접 황제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측천무후는 공신 무사 확의 딸로 태어났지만, 테오도라는 밑바닥에서 태어나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네요.

 

그래서인가, 아무래도 프로코피우스는 이런 창녀가 황후가 되어 권력을 휘두른 것이 못마땅하여 사실을 너무 과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테오도라가 창녀였던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겠지요. 하여튼 뜻하지 않게 《비잔티움 연대기》를 읽으면서 창녀 황후도 알게 되었네요.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한눈에 반할 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황홀한 미인이었을까? 테오도라의 초상화까지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양승국 변호사 yangaram@lawlog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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