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을 스스로 허무는가

2021.06.16 11:08:04

현충원 장병들의 피를 헛되이 해서는 안 된다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01]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중국의 5세기 초, 이른바 남북조 시대에 대륙 남쪽에는 송(宋)나라가 있었다. 당(唐) 이후 들어선 송(宋)나라와 구분하기 위해 흔히 유송(劉宋)이라고 부르는 이 나라에 단도제(檀道濟, ?~436년)라는 뛰어난 장군이 있었다. 흔히 “도망가는 것이 제일 좋은 책략이다”라는 36계의 저자로도 알려진 이 장군은 군을 잘 통솔하며 국정도 잘 이끌어 북쪽에 있는 위(魏)나라도 어쩌지 못했는데, 혼자 너무 잘나간다고 시기한 송나라의 권신과 왕족들이 왕명이라고 속여 궁으로 부르자, 그 부인이 이상한 일이라며 들어가지 말라고 했지만, 단도제는 왕명을 듣지 않을 수 없다고 들어갔다가 살해되었다.

 

장졸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 그는 머리에 쓰고 있던 건을 내동댕이치며 “어찌 너희들이 만리장성을 스스로 허문단 말이냐(壞汝萬里長城)!”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북쪽의 위나라 사람들은 “이제 두려운 사람은 하나도 없다.”라고 하며 수시로 강을 건너 남쪽을 침범하였다.​

 

1623년 3월 12일(음력) 김류, 김자점 등 서인 일파가 광해군 및 대북을 몰아내고 능양군을 옹립해 집권한 것이 인조반정인데, 서울에서 왕을 바꾸는 데 성공한 서인들은 가장 먼저 황해도 황주에 있는 원수부를 동원해 평양으로 가서 평안감사 박엽을 잡아 죽였다. 서울에서 갑자기 일어난 정변을 모르고 있던 박엽은 왕명을 상징하는 원수부의 전령을 보고서는 저항하지 못하고 결국 죽게 되었는데 이를 보고 후세 사람들이 “스스로 만리장성을 허물었다”라고 통탄을 했다고 한다. 박엽은 뛰어난 무장으로서 그가 평안감사로 있는 동안에 여진족들이 감히 압록강을 넘어오지 못했는데, 그가 죽었다는 말을 듣자 자주 국경을 넘어왔고, 마침내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연달아 일어나 임금 인조는 청나라의 용골대(龍骨大) 앞에 무릎을 꿇는 치욕을 당해야만 했다.

 

수많은 백성이 죽거나 끌려갔고 특히 양반 집 부녀자들도 많이 끌려갔다가 나중에 돈을 내고 돌아와서도 절개를 잃었다고 비난을 받아 자살하는 이들이 속출하는, 그야말로 최악의 민족적 비극이 일어났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때 인조로부터 항복을 받던 청나라 장수 용골대가 “이제 박엽을 죽인 것이 후회되겠지?” 하고 호통을 쳤다는 전설이 야담으로 전해 온다. 그가 죽자마자 여진족 청나라가 마음 놓고 북방을 유린하고 두 번의 큰 전쟁으로 모든 백성이 큰 고통을 당하게 되자, 박엽 장군의 위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한테서 나온 이야기일 것이다.​

 

해마다 6월에는 우리 모두 현충원으로 가서 거기 누워있는 영령들에게 마음으로 참배를 하고 그들의 위국헌신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을 가진다. 새로 정부나 정계의 고위직을 맡는 사람들도 어김없이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찾아 헌화 분향한다. 6.25라는 민족끼리의 전쟁에서 나라를 지키려다 희생된 장병들을 기리기 위함인데, 당시 전혀 준비도 없이 북쪽의 침입으로 맥없이 밀려가면서도 맨몸으로 맞서다 산화한 젊은이들이 흘린 피로 우리가 오늘날 이런 삶을 누리고 있음을 우리는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최근 나라를 지키는 문제로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우리 군대의 기율이 무너지고 군을 이끄는 장교들의 근무 자세도 해이해졌다는 것이다. 연일 터져 나오는 성추행과 이로 인한 자살까지 일어나는 상황. 상대편은 위협적인 신형 핵무기를 속속 개발하는데도 실전훈련을 안 하고 탁상 훈련만 하는 우리 국군, 병사들을 위해 부식비를 상당히 지급하는 데도 양이나 질이 엉망이어서 병사들이 울분을 쏟아내고 있고, 휴전선 철책선 사이로 북에서부터 몰래 넘어오는 사람들을 번번이 놓치고 있다. 이러다가 실전이 일어나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다들 걱정을 많이 하는 상황이다.

 

 

남북이 휴전하고 여전히 대치하고 있는 지도 70년이 되어 가니까 이러한 긴장을 해소하고 전쟁의 위험을 낮추어야 한다는 것을 반대하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대통령이 나서서 긴장 완화를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음을 우리는 보고 있다. 그래도 상대가 누구든 간에 민족끼리의 전쟁 참화를 겪은 우리로서는 전쟁에 대비하는 정신자세만은 굳건하게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더구나 우리 쪽의 큰 노력에도 긴장 해소는커녕 더욱 팽팽한 대치가 이어지고 있기에, 무기나 전력 등을 넘어서서 정신적인 면에서 우리가 스스로 무너져 자칫 안보를 잃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 다시 말해서 옛날처럼 혹시 “우리 스스로가 만리장성을 허물고 있지 않은가?” 하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실력도 없으면서 말로는 모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허세를 부리다가 막상 전쟁이 나면 지도자들은 도망가기에 바쁘고 피해는 온통 백성과 국민이었다는 아픈 역사를 우리는 알고 있다. 임진왜란 때도 그랬고 일본에 나라 전체를 빼앗길 때도 그랬고, 평화로운 시기라고 지도자들이 전쟁에 대한 대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예외 없이 당하는 것이기에,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보내면서 민족을 위해 숨져간 현충원 장병들의 피를 헛되이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다짐을 새롭게 해야 하는 시점이다.

 

 

이동식 인문탐험가 ld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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