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을 넣어야 물이 나오던 요술단지 펌프

2021.08.03 22:39:00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657]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한낮 땡볕 논배미 피 뽑다 오신 아버지 / 펌프 꼭지에 등대고 펌프질 하라신다 / 마중물 넣어 달려온 물 아직 미지근한데 / 성미 급한 아버지 펌프질 재촉하신다 / 저 땅밑 암반에 흐르는 물 / 달궈진 펌프 쇳덩이 식혀 시린물 토해낼 때 / 펌프질 소리에 놀란 매미 제풀에 꺾이고 / 늘어진 혀 빼물은 누렁이 배 깔고 누워있다"

 

 

위는 고영자 시인의 '펌프가 있는 마당풍경' 시인데 무더운 여름날 펌프가 있는 마당 풍경이 수채화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2,000년에 펴내 근세기 한국문학의 고전이라고 평가되는 조세희의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도 “동네 입구로 들어선 꼽추는 헐린 외딴집 마당가로 가 펌프의 손잡이를 눌렀다. 그는 두 손으로 물을 받아 입을 축였다.”라는 대목이 나오는 걸 우리는 기억합니다. 지금 지구상은 온통 불볕더위로 몸살을 앓고 있지요. 이렇게 몹시 더운 날, 예전엔 우물물을 길어 올리는 우물가가 있었지만, 지금처럼 수돗물을 쓰기 전에는 한동안 집집이 마당 가에 펌프가 있었습니다. 펌프는 압력작용을 이용하여 관을 통해 물을 퍼 올리는 기계입니다.

 

널찍한 마당 한쪽에 놓여 있던 펌프는 쇠로 되어 있어 벌겋게 녹이 슬어 있던 모습이었지요. 그러나 마시는 물은 물론이요, 여름철엔 펌프로 달려가서 물을 퍼내어 등목했으며 아이들은 커다란 고무 함지 속에 물을 받아 땡볕 수영을 즐겼지요. 집안의 유용한 물 푸는 기계인 펌프는 물을 퍼 쓰고 난 뒤에는 물이 빠져버려 다음번에 쓸 때는 반드시 마중물을 넣어야 합니다. 멀리서 귀한 분이 오시면 마중을 나가는 것처럼, 70년대 우리의 마당 한쪽에서 우리에게 유용한 물을 제공하던 펌프는 마중물로 퍼 올려지는 신기한 요술단지였습니다.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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