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어머니 삼년상, 눈물과 정성의 기록

2021.08.09 11:09:05

삼년상은 28개월, 시묘살이 아닌 집에서 제사
조선시대 삼년상의 실제, 《19세기 경주김씨 집안의 삼년상 일지, ‘거상잡의’》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국립민속박물관(관장 김종대)은 관내 소장품 《거상잡의(居喪雜儀)》를 뒤쳐(번역) 상세한 주석을 붙인 전통생활문화자료집 제8호 《19세기 경주김씨 집안의 삼년상 일지-거상잡의(居喪雜儀)》(최순권 역주)를 펴낸다. 이 책은 관내 소장자료 연구의 결과를 담은 성과물로 국립민속박물관은 이 같은 우리관 소장자료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서 실시할 계획이다.

 

조선시대 예법은 엄격하게 지켜졌을까? 원칙과 현실 사이의 고민, 《거상잡의》

 

《거상잡의》는 상중에 행하는 여러 가지 의례를 빠짐없이 기록한 일지로, 조선 후기에 실제 상을 당한 사람이 어떠한 의례를 행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다만, 불행하게도 저자와 작성 연대 등이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1년 동안 조사, 연구를 통해 저자가 경주김씨 계림군파 김준영(金準永, 1817~?)이고, 아울러 김준영이 한양 집과 화성의 묘소를 오가며 그의 아버지 김규응(金奎應, 1779~1846)이 죽은 1846년(헌종 12) 9월 12일부터 1848년 11월 5일까지, 그의 어머니 한산이씨가 죽은 1859년(철종 10) 1월 21일부터 1861년 4월 5일까지 삼년상에서 실제로 행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주자가례(朱子家禮)》와 같은 예서(禮書)가 일찍이 조선에 전래하였고,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게 《상례비요(喪禮備要)》, 《사례편람(四禮便覽)》 등이 편찬되었다. 다만 예서들에 규정되어 있는 의례들이 실제로 시대마다 어떻게 행해졌는지는 그 실체를 확인하기 어려웠는데, 《거상잡의》에는 당시 양반들이 예서에 나오는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어떻게 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삼년상은 36개월이 아닌 28개월 동안, 시묘살이가 아닌 집에서 지내

 

일반적으로 삼년상이라 하면 3년(36개월) 동안 부모의 상을 지내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실제로는 27개월 또는 28개월 동안 지내는 것이 보통이다. 김준영도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상을 28개월에 맞춰서 한양 집과 화성 집에서 삼년상을 지냈다. 또한 삼년상이라 하면 상복을 입고 부모의 무덤을 지키는 시묘(侍墓)살이를 연상하기 쉽다. 하지만 이것은 예법에 나오지 않는 것으로 당시의 일반적인 모습이라기 보기 어렵다는 견해가 우세하며, 일부 사람들이 삼년상을 잘 지키지 않고 예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한 행태였다는 시각도 있다.


삼년상 기간에도 조상제사는 계속된다.

 

《거상잡의》에서 주목되는 것은 김준영이 삼년상 중에 돌아오는 조상의 제사일, 부모의 생신과 회혼일, 자신의 생일에 행했던 내용 등이다. 옛날의 예법에서는 상중에 조상 제사를 생략하는 것으로 되어있으나, 조선 시대 유학자들은 관행적으로 축문 없이 한 번만 술을 올리거나, 친척에게 대행시키기도 하였다. 이처럼 김준영은 삼년상 중에도 조선 시대 양반의 중요한 책무인 제사를 모시는 일은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집안에 아이들의 병이 있을 때는 간혹 제사를 생략하기도 하였다.

 

삼년상 중에 또 다른 상을 당한다면?

 

조선 시대에 삼년상을 하는 경우 친지나 지인의 상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김준영도 두 번의 삼년상 동안 둘째 딸과 당숙모 상을 당하였다. 둘째 딸의 경우는 아버지의 상이 중하기 때문에 별다른 의례 없이 당일에 장례를 치렀고, 당숙모의 경우는 당숙 집에 가서 초종(初終)에서 성복제(成服祭)까지 참여하고, 집이 와서는 아버지를 위한 상복을 입었다. 하지만 당숙모의 장례는 당시 천연두의 유행으로 미루어져, 결국 12달 만에 이루어졌다.

 

또 옛날의 예법에는 부모의 상중에는 성(姓)이 다른 이웃집에서 비록 상을 당하더라도 조문하지 않는데, 김준영은 상중에 은혜를 입은 이웃집의 상에 한밤중에 몰래 가서 곡을 하였고, 이것이 나중에 큰 실례였음을 깨닫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양반들의 삼년상이 입체적으로 나타나

 

 

《거상잡의》가 날자 별로 삼년상 절차에 따라 상중에 실제로 발생하는 상황이나 임시방편으로 행한 의절 등이 기록되어 반면에, 부록으로 수록한 《거우일기(居憂日記)》는 1775년(영조 51) 7월 22일부터 1776년 2월까지 안주목사(安州牧使) 이창임(李昌任, 1730∼1775)의 상장례(喪葬禮)를 아들 이선정(李宣鼎, 1759∼1814)이 기록한 일지다.

 

이 책은 초종(初終, 초상이 난 때로부터 졸곡까지의 장례 절차)에서 우제(虞祭, 장사를 지낸 뒤 처음 지내는 제사인 초우, 두 번째 지내는 제사인 재우, 세 번째 지내는 제사인 삼우를 모두 통틀어 이르는 말)까지만 기록되어 있는데, 상례 절차에 쓰인 상례용품 목록, 참여자 명단, 그리고 부의(賻儀)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조선 후기 상장례의 경제적인 면을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자료를 통해서나마 대략 조선 후기 양반 사대부가 실제로 행한 삼년상의 관행과 예서에는 나오지 않는 행례 내용을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앞으로도 전통생활문화 자료집을 통해 알려지지 않은 우리 민속문화의 다양한 면을 소개하고, 더 많은 고문헌 자료를 발굴하여 국민들이 더욱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이에 대한 해제와 번역 작업이 지속해서 추진할 예정이다.

 

 

이한영 기자 sol119@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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