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진다-남자현 지사②

2021.12.07 11:36:09

경북인의 만주망명 110주년 기획 보도–경북 여성 항일투쟁기<4>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과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관장 정진영), 안동대학교 인문대학은 만주망명 110돌을 맞이하여 경북지역 여성들의 항일투쟁기를 주제로 모두 6회에 걸친 기획 보도를 진행하고 있다. 제4편은 영화 ‘암살’에서 직접 독립운동에 뛰어든 여걸 ‘안옥윤’ 역할의 모델이 되었던 남자현 지사의 무장독립투쟁에 대해 집중 조명한다.

 

 

남자현 지사는 1919년 만주로 망명한 이후 8년의 기간은 주로 후방에서 교육과 생활 안정에 이바지하였다. 그러나 사이토 마코토 총독의 암살 계획을 수립한 1927년부터 본격적인 무장투쟁에 나서게 되었다.

 

1930년대는 일본이 만주국을 수립하면서 만주전역에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던 시기였다. 더욱이 여준, 지청천과 같이 독립을 이끌었던 인사들의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때였고 이상룡이 사망도 겹쳤기 때문에 동포사회가 매우 불안정하였다. 이러한 어수선한 시국에서 국제연맹이 만주로 조사단을 파견하여 일본의 만주침략을 조사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남자현 지사는 독립 의지를 알릴 기회라 여겨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쓰기로 하였다.

 

남자현 지사는 하얼빈의 한 음식점에서 왼쪽 무명지 두 마디를 잘라서 조선(한국)의 독립을 원한다는 다섯 글자를 붉은 피로 썼다. 남자현 지사는 국제연맹 조사단에 잘린 손가락과 혈서를 전달하고자 했지만 엄중한 경계 속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다만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썼던 남자현 지사의 조국독립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1933년 남자현 지사는 일본 전권대사인 무토 노부요시를 처단할 계획을 세웠다. 이는 만주국 수립 1주년 행사가 열리는 상황을 노린 것이다. 남자현은 무기조달방법을 논의하여 2월 27일 권총과 탄환, 폭탄을 전달받기로 약속받았다. 그러나 밀정의 밀고로 거사 직전에 하얼빈에서 체포되었다. 당시 남자현 지사의 거사는 조선중앙일보에 수록될 정도로 큰 이슈였다.

 

 

 

남자현 지사는 체포된 이후 하얼빈의 일본총영사관 감옥에서 6개월간 가혹한 고문에 시달렸다. 일본총영사관 감옥은 100여 명을 수감하는 공간으로 독립운동지사들이 고초를 겪었던 곳이다. 여기에는 고문실도 별도로 갖추고 있어서 악명이 높았다. 남자현 지사는 온갖 고문에도 굴복하지 않고 차라리 죽음으로 항거하자는 결단을 내리고 단식 투쟁을 결행하였다.

 

당시 61세의 고령이었던 남자현 지사가 오랜 기간 단식을 이어가자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보석으로 풀려난 것은 이미 건강이 많이 악화되었기 때문이었다. 남자현 지사는 그해 하얼빈의 조선여관에서 순국하게 되었다. 마지막 순간, 남긴 유언에는 조선이 독립되는 날 자신의 돈을 독립 축하금으로 바치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죽는 순간까지 조국의 독립을 염원했던 것이다.

 

남자현 지사는 한국독립운동사를 대표하는 여성의 한명으로 손꼽힌다.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서 성장하였지만 만주로 망명한 이후 당시 시대적으로 여성에게 주어진 역할에만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항일투쟁의 현장에서 활동했다. 이러한 남자현 지사의 활동은 독립운동사를 넘어 한국근대사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윤옥 기자 59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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