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애국지사 집 헐릴 위기, 1년째 외쳐도 묵묵부답

2021.12.21 11:43:10

SK하이닉스와 용인시, 생존 애국지사의 보금자리 철거에 무관심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유일한 생존 여성독립운동가인 오희옥(95세) 애국지사의 ‘독립유공자의 집’이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설립 예정으로 헐릴 위기에 있다는 소식이 여러 매체를 통해 줄기차게 보도되고 있지만, SK하이닉스측에서 이에 관한 협상을 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는 것은 독립운동가에 대한 모독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시민의 성금으로 조성된 ‘독립유공자의 집’을 관리하고 보존해야 할 용인시(백군기 시장)에서도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방치하고 있는 일은 좌시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는 (사)한국광복군기념사업회(구, 한국광복군동지회) 이형진 회장의 이야기다. 어제(20일) 낮 1시, 기자는 전쟁기념관에 있는 한국광복군기념사업회 사무실을 찾았다. 이 자리에는 오희옥 애국지사의 아드님인 김흥태 선생도 함께했다. 제17대 회장에 취임(10월 18일)한 지 두 달 남짓이라 그런지 아담한 크기의 사무실에는 책상과 소파 등 몇 가지 기본 집기들만 있을 뿐 썰렁했다.

 

“소파 등도 모두 중고 물품입니다. 제가 회장으로 취임하기 전까지 근 10년간 광복군동지회는 개점휴업 상태였습니다. 1965년 9월 15일 ‘대한민국의 뿌리 한국광복군동지회’를 창립할 때만 해도 생존 동지들이 많이 계셨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둘 타계하시다 보니 동지회를 이끌 분들이 안 계셨던 것이지요”라면서 차 한 잔을 권한다.

 

 

“독립투사는 지분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망국(亡國)의 군인으로 책임과 의무를 다할 뿐이다.”라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이형진 회장은 국군의 뿌리인 광복군 창설부터 한국광복군동지회의 후신인 한국광복군기념사업회(2021.5.25. 국가보훈처에 명칭 변경 승인)의 탄생 경위를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설명했다. 그런 용감한 광복군들은 그러나 지금, 다섯 분만이 생존해 계신다. 생존자 다섯 분 모두가 건강이 안 좋은 상태에서 유일한 여성 광복군 출신이 오희옥(95세) 애국지사다.

 

그런데 지난 15일, 오희옥 애국지사의 아드님인 김흥태 선생으로부터 깜짝 놀랄 소식을 들었다. “이 해가 다 가고 있는데도 SK하이닉스측과 용인시에서 어머니가 거처하실 ‘독립유공자의 집 ’ 철거 건에 대한 아무런 답이 없어 최후의 기대를 걸며 청와대에 청원을 올렸다”라는 것이었다. 곧바로 청와대 청원 누리집에 들어가 보니 30명이 서명을 한 상태였다.(21일 0시 35분 현재 887명, 1월 14일 마감)

 

        ▶ 오희옥 애국지사 청와대 국민청원

 

 

둔탁한 망치로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사실 기자는 이 문제를 지난 2월부터 지속해서 보도한 바 있다. 오희옥 애국지사의 집은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죽능리에 있는 ‘독립유공자의 집’으로 용인 출신인 오희옥 애국지사를 위해 해주 오씨 문중이 땅을 제공하고 용인시와 재능기부 기관과 시민 단체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 아담한 집을 지어드렸다. 이 집은 그동안 수원시 조원동의 복지보훈 아파트에 사시던 오희옥 지사께서 여생을 고향에서 보내고 싶다는 오랜 바람이 이뤄져 지난 2018년 3월 1일 입주한 집이다.

 

그러나 준공 테이프를 끊기가 무섭게 뇌경색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3년 9개월째 병원 치료를 받는 사이에 원삼면 일대에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SK하이닉스, SK건설, 용인일반산업단지(주) 등 6개 기관)이 들어설 계획이 발표되고 말았다. 오희옥 애국지사의 집도 원삼면 일대 416만㎡(126만평) 규모 속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오희옥 지사 집이 이전하게 될 경우에는 병원용 침대가 들어갈 정도의 여유 있는 방과 거실을 작은 전시관으로 활용할 수 있는 규모로써 찾아오는 지인과도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실정이다.

 

오희옥 애국지사의 후손인 김흥태 선생은 “문재인 대통령께서도 취임 이후 순국선열과 독립운동가분들에 대한 진정한 예우와 섬김을 강조하셨지만 지금 어머니가 거처하실 집의 철거가 코앞인데도 건설 주최자인 SK하이닉스와 용인시가 전혀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습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어머니는 보훈병원에 입원 중이신데 치료비는 국가에서 해결해주고 있지만, 월 300만 원 이상 되는 간병인 고용비 등을 자비 부담하고 있어 무척 힘듭니다. 간병인을 쓰지 않을 때는 자녀들이 간병을 해야 하는 데 생업을 포기할 수도 없는 일이라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는 어머니뿐만이 아니라 연로하신 모든 애국지사에 해당하는 일입니다. 올해 처음으로 국가보훈처에서 생존 애국지사에 대한 간호간병서비스에 대해 좋은 방안을 모색하여 예산을 편성하려고 했으나 기획재정부가 깊은 고려 없이 예산을 삭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좌절감에 빠져있습니다.” 라고 했다. 연로한 애국지사들에게 있어 간호간병서비스는 현실적으로 가장 크게 피부에 와 닿는 ‘해결되어야 할 정책 1호’라고 김흥태 선생은 강조했다.

 

대선 정국에 들어선 대한민국은 지금 대통령 후보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라를 위해 헌신했던 몇 안 남은 생존 애국지사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후보를 찾아볼 수 없다. 지난 12월 13일, 안동에서 학생 항일독립운동을 한 장병하 애국지사(93세)가 별세했다. 장병하 애국지사의 별세로 생존 애국지사는 모두 열다섯 분(국내 12분, 국외 3분)이 남아 계신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청춘을, 삶을 불살랐던 애국지사들!

 

 

 

“생존 애국지사들께서 노후를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후손들이 청와대 청원까지 내야하는 이 사회가 과연 올바른 사회인지 묻고 싶습니다. 남은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생존 애국지사들이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에서 가족들과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이들의 주거 환경을 파악하여 문제점을 개선해주는 노력이 우선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한국광복군기념사업회 이형진 회장은 기업의 도덕적 가치를 강조했다. 한 기업이 아무리 경영 성과가 좋더라도 기업의 윤리의식이 희박하거나 사회적 의무를 다하지 못할 경우 시장과 사회로부터 신뢰를 상실하게 되어 결국 기업의 생존 자체가 위태롭게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위기에 처한 국가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헌신한 생존 애국지사들의 삶이야말로 대한민국의 과거요, 현재이며 미래 그 자체다. 이러한 역사의식을 토대로 SK하이닉스는 오희옥 애국지사 집의 철거에 대한 신속한 대책을 세워주길 촉구한다. 아울러 용인시 역시 이 일에 팔짱만 끼고 바라보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서길 바란다. 한발 더 나아가 대선 후보들은 생존 애국지사들의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그 어떤 공약에 앞서 챙기는 현자(賢者)가 되길 제안한다.

 

 

 

 

 

 

이윤옥 기자 59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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