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광장에 서서

2022.06.01 11:03:43

서울광장, 사색하고 성숙하는 공간으로 전환되다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49]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지난 주말 광화문에서 명동 쪽으로 사람을 만나러 가기 위해 서울시청 앞을 가로질러 광장 쪽으로 가는데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보통 때 이정도 사람이면 뭔가 확성기에 소리가 크게 들릴 텐데 무척 조용하다. 광장에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뭔가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고, 등 뒤쪽으로는 대부분 양산을 쓰고 있다. 비스듬히 누워있는 이들, 가까이 가 보니 아빠 엄마와 같이 있는 자녀들이 책을 들고 보고 있고 혹은 혼자서 책을 보는 젊은이들도 꽤 있다.

 

바닥에 깔고 있는 것은 쿠션 겸 의자로 쓸 수 있는 간이의자라고나 할까, 잔디가 말끔하게 입혀진 광장 바닥 위로 이렇게 붉은색, 주황색, 노란색, 자주색 우산과 쿠션이 멋진 그림을 이루고 있었다. 둘러보니 저쪽에 안내판이 있다. 이것이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책 읽는 서울광장'이란 행사의 하나로 주말, 곧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만 열리는 '열린 도서관' 행사임을 알겠다,

 

서울도서관과 함께 광장을 야외 도서관으로 꾸며 시민들이 광장에서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한 것이란다. 편안하게 책을 볼 수 있도록 쿠션 겸 좌석을 빌려주고 양산도 빌려준다. 광장 아무 데나 자리를 깔고 기대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편하게 책을 볼 수 있는, 그야말로 자연에 열린 도서관이다.

 

 

 

알림판에 보니 4월 23일에 시작했단다. 그날이 세계 책의 날인데, 그럼 그것을 기념해서 마련한 것이구나. 그런 생각으로 뉴스를 검색해 보니 ‘책 읽는 서울광장’의 방문객 수가 개방 한 달 만에 2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개장 첫 금요일인 4월 29일 1,127명이었는데 5월 14일 토요일에는 3,200명으로 약 2.8배 늘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누적 이용객이 2만 명을 넘었다고 서울시가 밝혔다. 한 달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8일이다. 광장 잔디밭에 이렇게 가족 단위 혹은 개인이 편하게 와서 '자유'를 만끽하는 것을 보면서 필자는 새삼 감회에 젖는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 장소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광장이고, 4·19혁명과 6월 항쟁 등의 쟁쟁한 역사를 맞이한 근현대사에서 가장 의미 있는 장소 가운데 한 곳이다. 70년대를 서울에서 보낸 필자로서는 털털거리는 시내버스를 타고 근처를 지나거나 혹 걸어서 어디를 갈 때, 여러 방면으로 이어진 길을 소화하기 위해 X자(字)로 달리는 길과 거기 중간중간에 설치된 신호등, 그 신호대기 하는 차량행렬로 해서 이곳이 광장이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차가 많이 교차해서 지나가는 큰길 정도의 개념이었다. 매연으로 코를 틀어막는 경우도 많았고.

 

 

그리고 80년대 이후 각종 민주화 시위가 이곳에서 자주 열렸고 민주화 이후에도 월드컵 거리 응원의 대표적인 장소가 되었으며 춧불집회 등 크고 작은 집회와 시위가 펼쳐진 곳으로 우리는 기억 한다. 한마디로 이 시청 앞 광장은 시대에 따라 민의와 민의가 서로 만나고 마주쳐서 정리되는 공간이었다. 외국에서 보던 시청 앞 광장의 평화로운 모습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런 역사가 이어져 온 곳이었다.

 

 

이 광장이 그전까지 '시청앞 광장'이라고 불리다가 새로 '서울광장'이란 이름을 얻은 것이 이명박 시장 때인 2004년 5월 1일이었다. 광장 중간의 버스길을 다 없애고 둥근 잔디밭을 만들어 새 모습으로 태어난 것을 기념해서 이름도 새로 얻은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전까지 이곳은 말이 광장이지, 광장이 아니라 그냥 길이었다. 어디 분수 근처에 들어가 보기를 하나, 광장이라고 마음대로 걸어보기를 하나, 모조리 고속으로 질주하는 차에 밀려서 지하차도 아니면 변두리로 빙빙 돌아야 하지 않았던가? 그 잃어버렸던 도심 4천여 평이 새로운 시민공원으로 변모해 우리 곁으로 다가온 것이다.

 

서울광장이 된 이후에도 이곳에서는 거리 응원, 시위, 집회가 연이어 열리며 시민의 광장 역할을 계속하고 있었다. 2012년 10월, 싸이가 강남스타일 성공 기념 무료 콘서트를 이곳에서 진행해 다시금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2016년 민중 총궐기 대회가 이곳에서 치러졌으며 반대로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린 본진이기도 하다.

 

이런저런 행사들이 이 광장에서 계속 열린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성숙한 사회로 가는 과정에서 갈등이 많았다는 뜻일 거다. 어쨌거나 서울 시청 앞 광장은 그동안 자동차들의 경연장이었다가, 다시 시민들의 발걸음이 가능한 형태로 시민에게 되돌아왔다. 그런 긴 역사 속에서 진정으로 시민들의 품, 가족의 곁으로 돌아온 본격적인 상징이 바로 이번에 성황리에 열리고 있는 '책 읽는 서울광장'이 아닌가 싶다.

 

2,500여 년 전 그리스의 '아고라(agora)'에서 유래가 된 광장, 그때 광장은 정치와 재판과 상업과 축제의 종합 활동이 펼쳐지는 공간이었다. 로마시대 이후 포럼(forum)이란 용어로 바뀌면서 광장이 각국의 권위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변모했지만 영국에서 보면 다시 사람들이 모이고 쉬고 대화하는, 가끔은 정치적인 의사도 표시하는, 그런 시민의 공간으로 돌아왔다.

 

이번에 시청앞 '서울광장'은 진정으로 서울 시민들을 위한 시대가 적어도 도시공간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생생한 증거다. 더구나 그것이 책을 읽는 열린 도서관이라는 게 더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책이라는 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참된 벗, 친절한 충고자, 유쾌한 반려, 충실한 위안자의 결핍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연구하고 독서하고 사색함으로 해서 더위와 추위의 구별 없이, 또 운과 불운의 차이 없이, 어린애같이 자기를 즐겁고 유쾌하게 지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M.T.바로​

 

책 읽는 서울광장은 10월 말까지 매주 금~토요일 오전 11에서 오후 4시까지 운영된다. 7~8월은 무더위와 장마를 피해 잠시 쉬었다가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9월에 다시 광장에서 시민들을 만난다. 6월 한 달 동안 주말마다 기회가 있다는 뜻이다. 책 읽는 서울광장에는 서가존, 리딩존, 이벤트존이 있어서 서가존에서는 다채로운 빛깔을 표현한 8개의 이동형 서가를 통해 3,000여 권의 도서를 만나볼 수 있다.

 

리딩존은 시민들이 누구나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다. 서울광장 잔디 위에 야외용 빈백 70개, 매트 330개(대형 50개, 소형 80개, 개별 종이 매트 200개), 햇빛을 피할 수 있는 파라솔 세트 20대(4인용) 등을 설치해 운영한다. 그동안 시민들이 빌려 간 시설들이 훼손이 없어 거의 다 돌아왔다고 서울시는 자랑한다. 저자와의 대화 등 각종 문화행사와 공연도 많이 열린다.​

 

 

주용태 서울시 문화본부장은 “‘책 읽는 서울광장’이 그동안 코로나19로 답답했던 시민들이 탁 트인 광장에서 책과 쉼을 만끽할 수 있는 행복하고 즐거운 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라며 “책과 공연, 문화가 함께 하는 책 읽는 서울광장에서 시민 모두가 독서의 기쁨과 일상의 여유를 누리시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필자는 일찍이 2000년대 초 영국 런던특파원으로 있으면서 유럽의 광장문화, 광장 이곳저곳에 이동 책 판매대, 서점을 보았고 많은 시민이 광장 아무 데나 앉아서 책을 보고 담소하는 광경을 부러운 마음으로 보아왔다. 그러기에 서울광장이 갈등과 아우성의 공간을 넘어서서 사색하고 성숙하는 공간으로 전환하기를 고대했던 필자로서는 그 작은 꿈이 이루어진 것을 확인한 셈이어서 기쁜 마음을 이렇게 풀어내 본다.

 

이동식 인문탐험가 ld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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