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뱅이굿> 발표회를 준비해 온 유상호 명창

2022.06.28 12:15:35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581]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까지는 이민영의 25현 가야금 발표회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하였다. 12현 법금(法琴)과 이를 고쳐 만든 산조가야금, 25현금과의 차이점에 관한 이야기, 이민영은 초등학교 때부터 산조를 배웠고, 고교생이 되어서는 백인영 명인에게 유대봉류 산조를 본격적으로 배웠다는 이야기, 대학생이 되어서는 중국에서 초빙된 김계옥 교수에게 25현금을 배우면서 넓은 음역, 음량, 양손활용, 화음처리, 다양한 연주법, 등을 익혔다고 했다.

 

또 2004년, <남북한 교류음악회>, 2005년 미국 UCLA에서 열린 <제5회 Korean Music Symposium> 연주, 2006년 연변예술대학에서의 <학술 및 실연교류 연주>, <베트남 하노이 대학> 연주회 등이 기억되고 있다는 이야기, 남원은 국립이나 시립 규모의 연주단체가 상존해 있고, 그 활약상으로 전통음악을 즐기는 수준이 매우 높은 지역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기에 이민영의 25현 가야금 창작곡 공연이 활성화된다면, 더욱 풍성한 문화와 예술의 도시로 급부상 될 것이라는 이야기 등도 덧붙였다.

 

이번 주에는 유상호의 <배뱅이굿> 공연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이은관이 목메어 부르던 이 구절을 기억한다면, 당신은 분명 전통음악에 관심이 깊은 애호가임에 틀림없다.

 

   “왔구나, 왔소이다. 왔소이다. 불쌍히 죽어 황천 갔던 배뱅이 혼신이

    평양 사는 박수무당의 몸을 빌어, 입을 빌어, 오날에야 왔소이다.

    우리 오마니, 오마니, 어디 갔나요. 오마니, 오마니.”

 

어머니를 애타게 부르며 구슬피 우는 이 소리는 이은관이 부르던 그 유명한 <배뱅이굿>의 한 대목이다. <이은관>이란 이름은 <배뱅이굿>을 연상하게 만들고, <배뱅이굿>이라고 하면 이은관 명창이 떠오를 정도로 <배뱅이굿>은 이은관의 다양한 소리공연이나 방송을 통해 활발하게 전승해 왔다. 그러나, 이은관이 떠나간 다음에는 이 소리 듣기가 쉽지 않게 되어 아쉬움이 남는다.

 

명창 이은관의 전유물처럼 인식되어 온 <배뱅이굿>은 서도(西道)지방의 대표적인 재담(才談)소리극이다. 우리가 판소리를 남도 지방의 창극조(唱劇調)라고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서도(西道)지방이란 평안남북도와 황해도를 일컫는 말이고, 재담이란 재미있게 이야기를 꾸며 나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재담 소리극이란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를 평안도나 황해도식의 창법으로 부르는 노래요, 대사며, 춤 동작 등을 곁들여 가며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는 형태의 소리극 공연이다.

 

 

배뱅이굿의 지존, 이은관 명창은 97살를 일기로 몇 년 전, 세상을 떠났다. 살아생전, 그는 배뱅이굿 공연이나 방송, 음반제작 등으로 매일을 바쁘게 지낸 분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혹 명창의 뒤를 이어갈 제자들을 양성했는지, 걱정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이은관이 키운 김경배, 박준영과 같은 제자들이 선생의 뒤를 이어 국가 무형문화재인 <배뱅이굿>을 지켜가고 있고, 또 다른 제자, 박정욱은 이북5도청 평안남도의 무형문화재 배뱅이굿의 예능보유자로서 당 종목을 열심히 전승하고 있어 전승의 문제는 걱정을 덜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영향이 컸고, 그래서 전보다 서도의 재담소리극이 자꾸만 위축되어 가는 침체기를 겪고 있는 현상은 지켜보는 뜻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이번에 인천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은관 명창의 애제자, 유상호(1962) 소리꾼이 배뱅이굿 발표회를 열면서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는 지난 4월 25(월)부터 30(토)까지 1주일 동안, 날마다 인천 부평구에 있는 ‘잔치마당’에서 <배뱅이굿>을 공연, 화제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잔치마당’은 인천 부평구에 있는 유일한 국악 전용극장의 이름이다. 이 극장을 30년 전에 어렵게 개관했던 서광일 단장은 “지역의 국악인들은 물론, 인근 지역의 국악인들에게 무대를 제공하여 국악의 생활화에 이바지하고자 한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한 개인이 순수하게 그가 살고있는 지역의 문화를 위하고 예술을 위해 내린 결단이나 판단은 그저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잔치마당 관련 이야기도 기회를 보아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다.

 

소리꾼 유상호와 대화를 나눠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가 매우 인간적이라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인간적이란 감성이 풍부하다는 의미로 아름다움, 곧 미적인 요소를 풍부하게 지닌 사람이어서 전통을 존중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가짐과 주변 상황에 자연스럽게 적응해 나가며 슬기롭게 즐길 수 있는 사람이다. 유상호의 문화적 감수성은 어린 시절부터 감지되기 시작하였는데, 어린 시절, 그는 동네 어른들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접하면서 제법 흉내를 잘 내어 <꼬마 소리꾼>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다음 주에 계속)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suhilkw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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