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공을 나는 자유로운 영혼, 김진묵!

2022.10.06 11:45:55

‘김진묵 다큐멘터리 에세이’ 《새》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201]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세상의 모든 음악을 주유한 김진묵 선생님이 《새》라는 수필집을 내셨습니다. 그런데 표지의 제목 옆에는 ‘김진묵 다큐멘터리 에세이’라고 되어 있네요. 지난 30여 년 동안 선생의 삶을 다큐멘터리처럼 펼쳤기에 다큐멘터리 에세이라고 하는군요. 수필집을 펼치니 1982년 5월의 출근길을 잠깐 언급하고는 1988년 5월 아카시아 향기 자욱한 아침부터 다큐멘터리는 펼쳐집니다. 그런데 왜 1988년 5월부터일까요? 이날 선생의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돋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선생은 38살의 나이로 음악잡지 《월간 객석》의 기자가 되어 한창 정력적으로 활동할 때였습니다. 선생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아침 9시’ 이는 지상명령이다. 오랜 세월, 아침 9시를 위해 단잠을 포기하고 허겁지겁 과속을 했다. 충혈된 눈의 눈곱을 찬물로 닦아내고 9시를 향한 질주가 계속되었다. 매일 아침 9시까지 굴러 내린 돌을 정상에 올려놓아야 했다. 파도가 지속적으로 몰려오듯 9시를 향한 질주가 반복되었다.”

 

저는 김 선생님을 뵐 때마다 ‘자유로운 영혼’을 봅니다. 그런 자유로운 영혼이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생활을 계속하였으니, 마음 저 깊은 곳에서는 저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새의 마음이 점점 끓어오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1988년 5월 어느 날 그 끓어오름이 가슴 바깥으로 분출하였을 것입니다. 당시 상황을 선생은 이렇게 쓰고 있네요.

 

출근을 하려고 문을 나서다가 쏟아지는 햇살과 나무들의 싱그러움에 정신을 잃었다. 하늘은 높고 대지에는 생명력이 가득 차 있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자그마한 새 한 쌍! 암놈이 앞장을 서고 수놈이 뒤를 따른다. 그들은 건넛산으로 날아간다. 순간, 정신없이 새를 따라 산으로 올랐다.

 

그렇게 마침내 한 마리 새가 된 선생은 직장에 사표를 던집니다. 그리고 인도로 떠납니다. 자유의 새가 된 선생이 처음 날아가는 곳으로 인도를 선택한 것에 대해, 선생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이유를 찾아야 한다면, 인도의 음악이 ‘아직도 서구화되지 않았다’라는 정보를 들었기 때문이랍니다. 어려서부터 클래식에 심취하여 선생의 표현대로 서구음악을 신앙하고 그 성(城)을 지키는 가미카제 지원병‘이 되었던 선생은 인도 음악이 아직 서구화되지 않았다는 말에 자유롭게 날아올라 처음 내려앉는 곳으로 인도를 선택한 것이지요. 인도의 땅을 처음 밟았을 때를 선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처음 새장을 벗어난 새처럼 몸서리쳤다. 나는 어느 곳으로도 갈 수 있다. 충만한 자유... 내 인생에서 처음 마셔보는 자유의 잔이 넘치고 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번 여행은 내게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 확실하다. 어떤 축을 중심으로 움직이던 삶에서 축이 없는 삶으로의 변형... 중심축 없이 비틀거릴 것인가? 아니면 날아오를 것인가? 새는 날아가는 곳이 길이라 했다.”

 

그동안 어떤 축을 중심으로 움직이던 삶에서 갑자기 축이 없어지면 불안할 것입니다. 책에 보니 선생이 집에서 키우던 새의 새장을 활짝 열어주었더니, 새는 새장 밖으로 나가기를 머뭇거리더랍니다. 그리고 새장 밖을 두리번, 두리번거리다가 잠시 날아오르더니, 이내 뭐에 놀란 듯 다시 새장으로 들어가더랍니다. 그리고 조금씩 새장 밖의 영역을 확장하면서 마침내 자유의 세계로 나아 가더라는 것이지요.

 

선생도 처음에는 비틀거릴 것인지 날아오를 것인지 앞날이 잠시 두려웠지만, 선생은 금방 날아올랐습니다. 이렇게 인도로의 첫 번째 자유비행을 마치고 돌아온 선생은 비바람이 몰아치는 어느 밤 새벽 3시에 깨어 정원을 바라보며 이렇게 독백합니다.

 

“강한 비바람이 몰아친다. 다시 심호흡을 한다. 오랜 직장생활의 때는 벗은 느낌이다. 앞으로 나의 삶은 어떠한 모습으로 전개될 것인가. 삶의 날개만 믿고 날아오른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더욱 깊어지는 고요 -. 내게 주어진 시간... 인생의 강물은 흘러간다.”

 

선생은 그 뒤로 인도는 열 번 이상 드나들었으며 아프리카로, 유럽으로 자유롭게 지구 위를 날아다녔습니다. 그렇게 날아다닌 곳 가운데 스칸디나비아반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스칸디나비아반도로 처음 날아와 들른 집이 특이합니다. 바로 이혼한 전 아내의 집입니다. 선생과 이혼한 전 아내가 그 뒤 스웨덴 남자와 결혼하여 살고있는 집이거든요. 당연히 그 집에는 전 아내의 현 남편인 벵(Bengkt)도 같이 살고 있습니다.

 

오래간만에 기쁘게 해후한 딸 경원이도 있구요. 그런데 두 남자는 전혀 어색하지 않게 잘 어울립니다. 하하! 우리네 관습으로는 잘 이해가 안 되기도 하겠지만 여기는 개방된 서구이고, 또 선생은 자유로운 영혼이지 않습니까? 선생은 벵의 집을 전진기지로 삼아, 벵의 이름으로 자동차도 사서 스칸디나비아반도를 주유하지요.

 

하늘을 나는 새도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오지요? 자유로운 영혼, 김 선생의 집은 어떨까요? 윌든 호숫가 숲속의 소로(Thoreau) 선생처럼 선생도 춘천시 북산면 오항리의 산속에 홀로 살고 있습니다. <새>에는 이 집에서의 삶도 기록하고 있는데, 현재 사는 집은 책에 나오는 집보다 20분 더 산속으로 들어간 집입니다. 그런데 책 속에 나오는 집도 숲속에 홀로 떨어져 있는 집이라 선생은 숲속에서 자유인의 삶을 만끽합니다.

 

어느 날에는 선생이 해를 응시하고 있는데, 새 한 마리가 자기 머리 위에 사뿐히 앉더랍니다. 새도 선생을 자연의 일부로 알았던 것이지요. 머리 위에 작은 무게가 감지되는 순간, 선생은 짜릿한 흥분이 온몸을 감싸더랍니다. 그러면서 그때 무게에도 기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답니다.

 

그리고 어느 날에는 밤하늘에서 줄을 타고 내려온 커다란 거미가 노련한 솜씨로 좌판을 벌이는 것을 봅니다. 수많은 날벌레가 걸려들고 거미는 꽁무니에서 줄을 내어 걸려든 먹이를 둘둘 마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그런데 날벌레가 너무 모여들어 거미줄 한쪽이 망가집니다. 거미는 걸려서 몸부림치는 놈들 잡도리하랴, 가게 수리하랴 더 바빠집니다.

 

그러다가 커다란 나방 한 마리가 마지막 한 방을 날립니다. 걸려든 나방의 무게에 거미줄이 끊어져 허공에 날리는 것이지요. 선생은 이를 손님이 너무 몰려 좌판이 뒤엎어졌다고 표현하네요. 그런데 거미가 어렵게 잡도리한 날벌레들을 어둠 속에 나타난 개구리가 맛있게 포식합니다. 이를 보고 선생이 하는 말, ‘자연계에도 씨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일치하지는 않는다.’

 

선생의 숲속의 집에서 일어나는 풍경을 읽다 보니 저도 다시금 선생의 오두막으로 달려가고 싶군요. 저도 선생이 숲속으로 20분 더 들어간 집에는 몇 번 가보았고, 거기서 하룻밤을 자며 날벌레들이 밤하늘을 날고 더 높은 하늘에선 별들이 쏟아지는 것을 보았거든요. 처음 갔을 때는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을 찾으니, 선생이 숲속을 가리키더군요. 숲속 천지가 다 화장실인데 어디서 화장실을 찾느냐는 것이지요. 그래서 삽을 들고 숲속으로 들어가 볼일을 보고 삽을 들어 볼 일 본 것을 덮었는데, 다음에 갔을 때는 선생이 정성들여 설치한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선생은 인도에서 한 젊은이를 만났는데, 그 젊은이는 일기예보에서 남해 서부 먼바다라고 나오는 곳의 아주 작은 섬에서 왔다고 합니다. 두 가구만 사는 작은 섬인데, 그 옆에는 무인도도 있다고 합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아! 바로 그 섬이 아닐까?‘ 하면서 김진묵 선생에게 즉시 물어봤지요. 김 선생의 대답은 역시 내 예상을 맞게 해주고요. 자유로운 영혼이라면 외딴 숲속뿐만 아니라 외딴 무인도에서도 살고 싶지 않겠습니까? 선생은 이때 만난 젊은이와의 인연으로 그 뒤 진도 옆의 조도군도 내에 있는 어느 무인도에서 1년 동안 살았습니다. 아쉽게도 선생은 무인도에서의 삶은 이 책에는 싣지 않았네요.

 

선생이 무인도에 들어갔을 때도 태양열 발전을 이용하여 바깥과 소통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저도 무인도의 삶은 어떨까 하여 선생에게 나도 한번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간다 간다고 하면서도 못가다가 선생이 계획한 1년이 다 되어갈 무렵 더 미룰 수 없어 드디어 뜻이 맞는 5인의 동지들과 함께 가기로 했지요.

 

아! 그런데 우리가 가기로 한 그 며칠 전에 세월호가 그 무인도에서 20km 떨어진 맹골수역에서 침몰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그 무인도에 가려면 진도 팽목항에서 배를 타고 가야 했었는데, 당시 팽목항은 세월호 실종자들을 찾는 전진기지로 북적일 때라, 저희가 한가롭게 팽목항에서 무인도 간다며 배를 탈 수는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렇게 제 무인도의 짧은 체험은 좌절되었지만, 그 뒤 섬에서 나온 선생으로부터 얘기를 듣는 것으로 그나마 대리만족할 수밖에 없었지요.

 

이렇게 자유로운 영혼, 김진묵 선생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수필집 제목을 《새》라고 한 것도 이해되시겠지요? 한 마리의 새가 되어 창공을 나는 자유로운 영혼, 김진묵! 이번 책을 통해 선생의 자유로운 영혼을 더욱 친근하게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새야 날아라! 더욱 훨훨 날아라!

 

 

양승국 변호사 yangaram@lawlog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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