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쇠 밑에 ‘가열’, 그 밑으로 ‘삐리’

2022.11.22 11:39:40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602]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남사당놀이는 1964년, <인형극>이란 이름으로 국가무형문화재에 지정되었고, 1988년에는 6종목이 포함되어 <남사당놀이>로 재지정되었다. 2009년에는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에 올랐으나, 현재는 그 전승이 활발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이야기하였다. 다행스럽게 인천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던 지운하, 남기문 등이 <인천 남사당놀이보존회>를 설립하였고, 특히 제26회 부평풍물축제에서 6종목 전 과정을 선보였는데 일반 시민들의 반응이 대단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첫 번째 종목인 <풍물놀이>는 판굿, 그리고 다양한 개인놀음이 일품이다. 특히 남사당패 풍물놀이의 개인놀음은 각 악기의 연주력이 돋보이는 대목으로 지역적 특색이 잘 나타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풍물을 구성하고 있는 면모를 보면 소리가 크고 강렬한 꽹과리(小金)를 비롯하여 징(大金), 장고(杖鼓), 북(鼓), 소고(小鼓), 무동(舞童), 호적(胡笛), 기수(旗手), 잡색(雜色) 등이 편성되는데, 그 바탕은 경기지방과 충청지방의 풍물놀이를 중심으로 한다는 점이다.

 

참고로 남사당패의 조직은 어떠한가? 하는 점을 먼저 소개해 보기로 한다. 남사당패는 조직의 맨 위에 대표되는 사람을 ‘꼭두쇠’라 부르는데, 이 사람은 대외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이다. 대표의 능력에 따라 식구들, 곧 단원들이 오래도록 함께 활동하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 기준이다. 무엇보다도 남사당이란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거의 획일적이라는 평을 들을 만큼 엄격한 편이었다고 한다.

 

남사당의 총원은 대략 50명 안팎의 인원을 필요로 하는데, 충원 방법으로는 빈한(貧寒)한 농가의 어린 아이들을 부모의 응낙을 받아 보충하였다고 전한다. 꼭두쇠 밑에 그를 보좌하는 2인자를 ‘곰뱅이쇠’라 부른다. 이 말은 ‘허가’>라는 뜻을 지닌 은어로 예를 들면, 어느 마을에 갔을 때, 놀이마당을 열어도 좋다는 사전 승낙을 받아오는 그 일을 맡아 보는 사람이다.

 

인원이 많은 집단에서는 곰뱅이쇠가 2인일 경우도 있다. 또 한 사람은 단원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해야 할 임무를 지닌 사람이었다고 한다. 다음으로 꼭두쇠-곰뱅이쇠 밑으로 ‘뜬쇠’가 있다. 뜬쇠란 남사당패의 각 기예자 가운데 연희분야의 선임자를 부르는 이름이다.

 

그러므로 꽹과리주자, 또는 잽이라고 부르는데, 그 우두머리 ‘상쇠’를 일러‘ ’상공운 님‘으로 부른다. 그런가 하면 징의 우두머리는 ’징수 님‘, 장고는 ’고장수 님‘, 북은 ’북수 님‘, 호적은 ’회적수 님‘, 벅구는 ’벅구 님‘, 무동은 ’상무등 님‘, 선소리꾼의 우두머리는 ’회덕 님‘이라 칭한다.

 

 

그리고 각 기예도 대표적인 우두머리의 호칭은 따로 정해져 있다. 예를 들어 대접 돌리기의 우두머리는 ’버나쇠‘, 요술쟁이는 ’얼른쇠‘, 땅 재주꾼은 ’살판쇠‘, ’얼름산이‘는 줄꾼 중의 우두머리, 탈꾼 중의 우두머리는 ’덧뵈기쇠‘, ’덜미쇠‘는 꼭두각시놀음 조종자 가운데 대잡이를 일컫는 용어들이다. 기타 기능을 잃은 노인들은 ’저승패‘, 등짐을 지는 사람들은 ’나귀쇠‘ 등으로 통했다고 한다.

 

다소 생소한 용어들이기는 하지만, 풍물을 담당하는 각 잽이의 우두머리들은 ’00님‘으로 부르고, 기능이나 연희의 우두머리들은 ’00쇠‘로 부르고 있다. 이러한 호칭들은 남사당패 안에서 단원들끼리 서로 통하는 용어로 그만큼 엄격한 지위와 실력을 인정받는 용어들임이 틀림없다.

 

각 연희분야의 선임자들, 곧 뜬쇠 밑에는 ’가열‘이라고 부르는 기능자들이 있고, 그 밑으로 ’삐리‘라고 부르는 초보자들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삐리로 입문하여 가열이 되고, 뜬쇠를 거쳐 그 이상의 책임자가 된다는 것은 요행이 아니라, 실력과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오르기 어려운 자리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어느 조직이든 간에 연륜이나 능력에 따라 지위나 계급이 존재하겠지만, 남사당패라는 연희단체 안에서도 꼭두쇠 – 곰뱅이쇠 – 뜬쇠 – 가열 – 삐리 등으로 이어지는 엄격한 계급이 존재하기에 공연 단체로서의 질서가 유지되었던 것은 물론이다.

 

누구보다도, 꼭두쇠의 권한은 절대적이어서 일상적인 단체생활에 있어서 새로운 식구를 맞이하고 내보내는 결정권이 있었다고 한다. 만일 내부의 이야기를 밖으로 흘린다든가, 또는 식구의 물건을 훔친다든지 하는 정해진 규율을 어기는 단원이나 피해를 보하는 단원들에게는 볼기를 치거나 끼니를 굶기는 벌을 가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절차를 밟지 않고, 무단으로 도망하는 경우의 벌은 가장 엄격했다고 한다.

 


남사당놀이의 연희 종목은 <탈놀음>이나 <인형극>을 빼고는 대부분이 바깥에서 펼쳐지는 놀이들이다. 그러므로 더울 때나 추운 겨울에는 마당에서의 공연이 매우 어렵다. 아니 어렵다는 표현보다는 연희 자체가 성사되지 못하게 된다. 연희를 하는 사람들도 추워서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기 어렵지만, 더더욱 앉아서 추위 속에 이를 관람하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사당패로서는 이 계절이 바로 실력을 기르고, 부족한 기술을 연마하는 준비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보수가 없는 그들이 먹고 기거할 수 있는 공간도 문제여서 연습의 제약을 받아왔다고 한다.

 

어느 곳에서 그 많은 식구가 모여서 악기를 연습하고 기술을 익힐 것인가? 하룻밤 놀이마당을 펼치고 난 다음 날, 또 다른 곳을 찾아 정처 없이 떠나야 하는 유랑(流浪) 예인들로서는 실로 난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일이다. (다음 주에 계속)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suhilkw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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