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고도의 통치술

2023.02.24 11:53:40

소중화(小中華)에 빠진 조선 지식인, 예송논쟁에 핏대 올려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214]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청나라가 들어선 이후 천하의 사대부들을 안정시킬 방법이 필요했다. 지식인들을 장악해야 안정적인 통치와 국정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청나라는 먼저 어떤 학문을 따르는 사람이 많은지 몰래 살폈는데 주자학이었다. 그리하여 청나라는 주자를 공문십철(孔門十哲, 공자의 문하에서 나온 학덕이 뛰어난 열 명의 제자들)의 반열에 올려 제사 지내고 섬기며 주자의 도학을 황실이 대대로 이어온 가학(家學)이라고 선포했다.

 

주자가 중국을 받들고 오랑캐를 배척한 인물인데도 황제는 천하의 선비와 도서를 모두 모아 《도서집성》과 《사고전서》 같은 방대한 책을 만들어 주자의 말씀이고 뜻이라고 했다. 중국의 대세를 살펴서 주자학을 먼저 차지하고, 천하 사람들의 입에 재갈을 물려서 아무도 감히 자기를 오랑캐라고 부르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황제는 걸핏하면 주자를 내세워 천하 사대부들의 목을 걸터타고 앞에서는 목을 억누르며 뒤에서는 등을 쓰다듬으려 하고 있다. 그런데도 천하 사대부들은 그런 우민화 정책에 동화되고 협박당해, 형식적이고 자잘한 학문에 허우적거리면서도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주자의 학문에 흡족하여 기뻐서 복종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주자학의 겉만 번지르르하게 꾸며 세속에 영합하고 출세하려는 사람까지 생겼다.

 

용기와 기개가 있는 선비들은 속으로 화를 낼망정 겉으로는 말을 못 하고, 아첨쟁이들은 시의를 따르고 일신의 이익을 꾀하게 만들었다. 진(秦)나라처럼 선비를 묻고 책을 불태우지 않고도 그들을 문약하게 만들고 이반되고 분열되게 했다. 그들이 세상을 다스리는 기술이 교묘하고도 깊다.

 

황제가 주자를 떠받든다고 주자에게 누를 끼치지 않는데도 중국의 선비들이 수치스럽게 여기는 까닭은 아마도 황제가 겉으로는 주자를 받드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세상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삼는 데 격분해서일 것이다. 주자를 반박하는 선비들은 때때로 주자의 한두 가지 틀린 주석 내용을 가지고 청나라 통치 100년 간의 괴롭고 억울한 기분을 씻어내려고 한다. 그런데도 조선 사람들은 이런 의도를 모르고 주자를 건드리는 이야기가 약간이라도 나오면 중국에 사악한 학설이 그치지 않더라고 떠들어댄다. 그 말을 듣는 사람 역시 사실 여부를 따지지 않고 화부터 내고 본다.

 

강석훈 기자의 《조선의 大기자, 연암》에 나오는 연암의 말입니다. 연암은 《열하일기》를 쓰면서 청나라 통치술을 연구하여 이런 글을 썼습니다. 진(秦)나라는 무식하게 분서갱유를 했지만 청나라는 오히려 주자의 도학을 황실이 대대로 이어온 가학(家學)이라고 선포하는 고도의 통치술을 발휘하였군요. 결국 많은 학자가 이런 통치술에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연암은 청나라가 진나라처럼 선비를 묻고 책을 불태우지 않고도 그들을 문약하게 만들고 이반되고 분열되게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세상을 다스리는 기술이 이처럼 교묘하고도 깊다고 한탄하네요.

 

 

그런데 뜻있는 학자들은 주자의 한두 가지 틀린 주석 내용을 가지고 청나라 통치 100년 동안의 괴롭고 억울한 기분을 씻어내려고 한다는군요. 아마 청나라 때 유행한 고증학을 말하는 것 같은데, 속 좁은 조선의 유학자들이 문제네요. 어리석은 조선의 유학자들은 이런 의도를 모르고 주자를 건드리는 이야기가 약간이라도 나오면 중국에 사악한 학설이 그치지 않더라고 떠들어댄다고 합니다.

 

당시 조선의 유학자들은 주자학의 도그마에 사로잡혀 도대체 이설(異說)을 허용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주자와 다른 이론을 펼치더라도, 당장 입에 개거품을 물고 사문난적(斯文亂賊, 성리학 교리를 어지럽히고 사상에 어긋나는 언행을 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라고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그리고 청나라를 깔보면서 조선이 ‘소중화(小中華)’라고 우물 안 개구리 소리만 내고요. 사문난적이라고 배척당한 대표적인 유학자가 윤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조선 후반기에 오로지 성리학 일본주의(一本主義)에만 매달려 사소한 예송논쟁에나 핏대를 올리는 유학자들이 못마땅했는데, 연암도 그런 생각을 했었군요.

 

 

양승국 변호사 yangaram@lawlogos.com
Copyright @2013 우리문화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 32. 그린오피스텔 306호 | 대표전화 : 02-733-5027 | 팩스 : 02-733-5028 발행·편집인 : 김영조 | 언론사 등록번호 : 서울 아03923 등록일자 : 2015년 | 발행일자 : 2015년 10월 6일 | 사업자등록번호 : 163-10-00275 Copyright © 2013 우리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ine9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