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읽어주는 옛 그림 이야기

2023.10.30 11:23:25

《옛 그림 읽어주는 아빠》, 장세현, 학고재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옛 그림.

‘옛 그림’이라는 말을 들으면 약간은 어렵고,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 같고, 혼자서는 그다지 찾아보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옛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보통은 친절한 안내가 없으면 옛 그림은 다소 어려운 분야다.

 

이 책, 《옛 그림 읽어주는 아빠》의 지은이 장세현은 옛 그림을 ‘읽는다’. 보통 그림은 본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옛 그림은 보는 그림이자 읽는 그림인 까닭이다. 그림을 읽는다는 것은 쉽게 말해 상형문자를 읽듯, 그림을 글자처럼 읽는 것이다.

 

 

또 하나, 옛사람들에게 그림은 단지 그림이 아니라 마음을 갈고 닦는 하나의 수양 방법이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먹을 갈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붓질하며 마음을 괴롭히는 헛된 생각과 욕심을 다스렸다. 이런 마음 수양 그림의 대표적인 분야가 ‘사군자’다.

 

선비의 기개를 뜻하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는 선비들에게 두루 사랑받았지만, 그 가운데 으뜸은 대나무였다. 그림을 그리던 관청인 도화서 화원을 뽑는 시험에서도 대나무 그림을 가장 중요하게 보았다. 대나무를 운치 있고 격조 있게 그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대나무 그림에 바위가 더해지면 특별한 의미가 생긴다.

 

(p.76)

한자로 대나무 죽(竹)은 ‘축하할 축(祝)’과 발음이 비슷해. 그래서 이 대나무를 ‘축’이라고 읽어. 또 바위는 십장생의 하나로 장수를 뜻하기 때문에 수(壽)라고 읽을 수 있지. 이 둘을 합쳐 읽으면 ‘축수도’가 되는 거야. 따라서 대나무에 바위를 곁들이면 장수를 기원하거나 축하하는 의미가 깃들게 된단다. ‘장수를 축하합니다!’ 하는 말을 이렇게 은근슬쩍 그림으로 표현했다고 보면 될 거야.

 

장수와 함께 옛 그림에서 자주 다뤄졌던 주제는 ‘과거합격’이었다. 옛 선비들의 중요한 값어치였던 ‘입신앙명(立身揚名)’, 곧 자기 재능을 적극적으로 발휘하여 자신과 가문을 드높이기 위해서는 과거 합격이 사실상 거의 유일한 길이었다.

 

오늘날 수능을 잘 보라고 엿을 선물하는 것처럼, 과거를 볼 사람에게는 과거 합격을 기원하는 그림을 선물하곤 했다. 그렇다고 대놓고 ‘과거 합격’을 쓸 수는 없으니 살짝 알 듯 말 듯, ‘아는 만큼 보이는’ 정도로 뜻을 담았다. 이런 대표적인 그림이 바로 게와 갈대를 그린 그림이다.

 

(p.129)

게는 온몸이 딱딱한 껍질로 싸여 있어. 한자로 딱딱한 껍질을 표현하는 글자는 갑(甲)이야. 갑은 껍질 외에 으뜸이란 뜻도 가지고 있단다. 과거 보는 사람에게 으뜸이 되라는 것은 즉 장원급제하라는 말과 다름없지. 그런데 게가 두 마리 그려져 있으니 ‘두 마리의 게’, 즉 이갑(二甲)‘이라고 읽으면 된단다. 이갑이란 두 번의 과거 시험에 잇달아 장원으로 합격하라는 뜻이지.

 

오늘날의 1차 시험과 2차 시험에 해당하는 ’초시‘와 ’복시‘에 잇달아 합격하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이를 더욱 뒷받침하는 것은 갈대였다. 한자로 갈대는 ‘로(蘆)’라고 쓰는데, 이 글자는 중국에서 ‘려(臚)’와 읽는 법이 같다. ‘려’는 본래 과거 급제자에게 임금이 내리는 고기 음식이었고, 이를 ‘전려(傳臚)’라 불렀다.

 

그래서 게와 갈대 그림을 합쳐 읽으면 ‘이갑전려도’가 되었다. 두 번의 과거 시험에 잇달아 합격해 임금이 내리는 고기 음식을 하사받으라고 기원하는 의미가 된다. 과거를 보러 떠나는 선비가 이 그림을 받았다면, 내심 무척 기뻐서 하루에 한 번씩 펼쳐보지 않았을까?

 

이렇듯 모르고 보면 알쏭달쏭하지만, 알고 보면 한자의 음을 빌려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 ‘속 깊은 그림’이 옛 그림이다. 오늘날 그림이 그려진 카드를 주고받으며 마음을 표현하는 것처럼, 옛사람들도 그림을 선물하며 넌지시 마음을 건넸다.

 

아는 만큼 보이는 우리 옛 그림. 지은이의 친절한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알기 쉬운 동양화 입문서’라는 책의 설명처럼, 이 책과 함께 우리 옛 그림의 매력을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우지원 기자 basicfo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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