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의 눈에 물기가 서렸다

2023.11.02 11:24:46

무심거사의 단편소설 (4)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아가씨는 왠지 이 남자가 좋아졌다. 술자리에서 별별 남자를 다 만났으나 이 남자 같은 사람은 처음이었다. 아가씨가 담배를 한 대 꺼내어 입에 물었다. 김 과장은 담뱃불을 붙여 주었다.

 

“담배 많이 피나?”

“하루에 한 갑 정도요.”

“담배를 끊지 그래. 나중에 시집가 임신하면 애기에게도 나쁘고.”

“잘 안 끊어져요.”

“약국에 금연 껌이 나왔다던데, 한번 먹어 봐. 내가 다음에 올 때 사올게. 그때까지 아가씨가 이 집에 있다면.”

“언제 오실 거에요?”

“글쎄, 돈 펑펑 쓸 수 있는 사업가도 아니고 봉급쟁이가 이런 델 자주 올 수가 있나. 가을이 되어 은행나무가 노랗게 변하기 전에 한 번 오지.”

“꼭 한번 오세요.”

 

이제는 조금 친해진 두 사람은 새끼손가락을 걸어 약속했다. 즐거운 시간은 빨리 지나가는 법이다. 밤 12시를 훌쩍 넘어 밤이 깊어지자, 김 과장은 은근히 지갑이 걱정되었다. 그저 아가씨가 시키자는 대로 마주앙과 안주를 계속 주문했는데 술값이 얼마가 나올지 감이 안 잡혔다. 이윽고 계산서가 나왔다. 아뿔싸, 낭패였다. 원고료로 받은 5만 원을 훨씬 넘었다. 지갑을 꺼내어 원고료 5만 원에다가 아내에게서 “아껴 쓰세요!”라는 당부의 말과 함께 이틀 전에 받은 10만 원을 빼내고 나니 지갑에는 5천 원권 한 장이 남았다. 아가씨는 텅 비어가는 지갑을 빤히 보면서 속삭였다.

 

“저… 웨이터에게 팁 좀 주세요.”

“그래라.”

 

김 과장은 마지막 지폐를 꺼내어 주고 말았다. 김 과장은 박 과장을 먼저 나가라고 하고 아가씨와 둘만이 남게 되었다.

 

“왜, 선생님이 돈을 내셨어요?”

“오늘 원고료 받아서 내가 한 잔 산다고 했지. 그런데 술값이 너무 많이 나온 것 같아.”

“……”

“잠깐만!”

 

김 과장은 가방을 열고 흰 봉투를 꺼내었다. 내일 오후 친척의 결혼식에 가서 부조하려고 준비해 둔 봉투였다. 김 과장은 아가씨에게 흰 봉투를 주며 말했다.

 

“팁이라고 생각 말고 아가씨가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생각하고 받아요.”

“꺼내 봐도 될까요?”

“마음대로.”

 

아가씨는 ‘祝 結婚’이라고 쓰인 봉투를 열고 하얀 종이에 싸인 빳빳한 지폐 두 장을 볼 수 있었다. 아가씨가 김 과장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김 과장은 눈이 마주치자, 아가씨의 손을 잡으면서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이제 가야겠네. 다음에 또 만납시다.”

“제가…… 이런 곳에 있지만…… 선생님 같은……”

 

 

불빛은 희미했지만, 분명히 아가씨의 눈에 물기가 서렸다. 아가씨는 김 과장의 손을 꼬옥 잡으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아가씨의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계속)

 

 

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muusim2222@daum.net
Copyright @2013 우리문화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 32. 그린오피스텔 306호 | 대표전화 : 02-733-5027 | 팩스 : 02-733-5028 발행·편집인 : 김영조 | 언론사 등록번호 : 서울 아03923 등록일자 : 2015년 | 발행일자 : 2015년 10월 6일 | 사업자등록번호 : 163-10-00275 Copyright © 2013 우리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ine9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