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들을 변호한 일본 변호사, 후세 다츠지

2023.12.25 11:34:32

《나눔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든 진짜 부자들》, 이향안, 현암주니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세계적인 부자는 참 많다.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부를 쌓았는지에 대한 관심은 넘쳐나도, 그 돈을 어떻게 썼는지에 대한 관심은 그만 못하다. ‘그들은 부자가 된 뒤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서사는 많아도, 부자가 되어 사회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보여주는 서사는 훨씬 적다.

 

이향안이 쓴 책, 《나눔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든 진짜 부자들》은 나눔을 실천한 전 세계의 부자들과 지식인, 영향력 있는 인물들을 다룬 책이다. 기부 문화를 만들어 낸 사업가 워렌 버핏부터 나눔의 정신을 세계에 퍼트린 배우 오드리 헵번까지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녹아 있다.

 

 

그 가운데 한국과 관련된 인물은 김만덕, 후세 다츠지, 전형필 세 명이다. 잘 알려진 대로 김만덕은 굶주려 죽을 위기에 처한 제주 백성들을 구한 제주의 거상이며, 전형필은 우리 겨레의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전 재산을 쓴 수장가다.

 

그런데 후세 다츠지는 무척 새롭다. 그는 조선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법정에 선 일본 변호사다. 1880년 미야기현에서 태어나 메이지 법률학교에서 법 공부를 한 뒤, 23살의 젊은 나이로 판검사 시험에 합격한 촉망받는 법조인이었다.

 

인정받은 실력을 앞세워 변호사 일을 하면 엄청난 부와 명성을 얻을 수 있었지만, 그는 약자들의 편에 섰다. 1919년 일본에서 벌어진 2‧8 독립선언을 비롯해, 1923년 9월 1일 발생한 관동대지진 이후 벌어진 조선인 학살 때도 피해자들을 변호하며 일본 정부에 사죄를 촉구했다. 아무리 일본인이라지만 위험천만한 일이었고, 개인의 신변까지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p.61)

다급해진 후세는 자신의 집 문을 열어 조선인들을 피신시켰어요. 그리고 일본 정부의 반성을 촉구하며 부르짖었지요.

“조선 동포 6천 명이 학살되었습니다. 그들의 영혼은 죽어도 좋을 수 없는 무덤에서 혀를 악물고 있습니다.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지배한 것에 대해 우선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고 조선에 사죄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조선 땅에서 벌어지는 일본의 무자비한 갈취와 폭력에 대해 법적으로 맞서기를 계속했습니다.

“누구를 침략하지도 않고, 누구에게 침략당하지도 않는,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고 지켜주는 이상적인 국가가 정의로운 나라라고 나는 믿습니다.”

 

 

후세 다츠지는 일본 정부에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되었고, 결국 치안 유지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으며 변호사 자격도 박탈당했다. 그러나 이미 인권변호사로 살아가기로 마음을 굳힌 그의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p.64)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았어요. 그 후에도 일본의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평화를 주장하며 옳다고 믿는 것을 향해 걸어 나갔어요. 그가 숨을 거두기 전에 한 말은 그의 의지를 잘 말해주고 있어요.

“자기 일생의 모든 일을 스스로 마무리 짓기란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이어갈 수 있도록 물려줄 수 있는 일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후세 다츠지는 ‘자유법조단’을 후대에 물려주었다. 일제강점기에 그가 만든 변호사들의 모임인 ‘자유법조단’은 지금도 천여 명의 변호사가 소속되어 일본 정부의 역사왜곡을 비판하며 일본의 제국주의적 역사관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후세 다츠지는 금전적으로 부자는 아니었는데도, 자신의 전문성과 영향력을 ‘약하지만 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아낌없이 썼고, 개인의 안위를 희생하면서도 신념을 꺾지 않았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처럼, 몇 번이고 꺾일 법한 상황에서도 끝내 소신껏 자신의 길을 갔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인물은 자신의 신념이 뚜렷했고, 재력은 자신의 신념을 이루는 수단으로 여겼다. 철학이 있는 부자, 신념이 있는 부자라면 자신의 부 또한 참으로 현명하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누군가 이어갈 수 있도록 물려준다면 그 따뜻함이 두고두고 세상을 밝힐 것이다.

 

 

우지원 기자 basicfo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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