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라 세상사, 가소롭다” 단가 <편시춘>

  • 등록 2025.04.22 12: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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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728]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신재효(申在孝)의 <광대가-廣大歌>속에 나오는 소리 광대들이 갖추어야 할, 네 가지 조건 곧 인물, 사설, 득음(得音), 너름새 관련 이야기를 하였다, 첫째 조건인 인물은 천생(天生)이어서 변통할 수 없음에도 이를 들고 있는 이유는 소리꾼의 인품이나 기품이 좋아야 한다는 점이라는 이야기, 이어서 사설ㆍ득음ㆍ너름새와 관련하여 목 쓰는 기법이라든가, 아니리의 구사 능력, 장단과의 호흡, 감정의 표출 등에 관해서도 구체적으로 이야기했다.

 

그뿐만 아니라, 당대 뛰어난 명창들을 중국 당(唐), 송(宋)대의 유명 문인들의 특성과 비교한 부분도 인상적이었다는 이야기, 특히 송흥록을 이태백, 모흥갑은 두보(杜甫), 권삼득은 한퇴지, 신만엽은 두목지(杜牧之), 황해청은 맹동야(孟洞野), 김제철은 구양수(歐陽脩), 주덕기는 소동파(蘇東坡) 등에 비유하고 있다는 점도 재미었다고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에는 “아서라 세상사, 가소롭다”로 시작되는 유명한 단가, <편시춘(片時春)>을 소개한다. 이 노래도 그 주된 내용은 세월의 덧없음을 비관하고 한탄하는 내용이 중심이다. 곧 왕발(王勃)의 동원도리편시춘(東園桃李片時春)”이라는 시구(詩句)에서 보는 것처럼, 젊음이란 곧 지나가 어느 사이에 백발이 되고 만다는 인생무상의 허무함을 말해주고 있다. 그 첫머리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아서라, 세상사 가소롭다.

 군불견 동원도리편시춘 창가소부야, 웃들 마라.

 대장부 평생 사업 건연이 지나가니,

 동류수 굽이굽이 물결은 바삐 바삐

 백천(百川)이 동도해라. 하시에 부서귀아,

 우산(牛山)에 지는 해는 제경공(齊景公)의 눈물이요."

                                                         (가운데 줄임)

 

 

위에서 군불견(君不見) 동원도리편시춘(東園桃李片時春)이란 구절은 매우 유명한 왕발의 시구로 간단하게 풀면 다음과 같다.

 

군불견(君不見)이란 ‘그대는 못 보았는가?’라는 뜻. 동원(東園)은 동쪽 동산, 도리(桃李)는 복숭아꽃과 자두 꽃, 편시춘(片時春)은 봄 한때를 말한다. 그러므로 “그대는 동쪽 동산에 복숭아꽃과 자두 꽃이 봄 한때, 잠깐 피었던 것을 못 보았는가?”라는 의미인데, 이 구절은 단가와 판소리를 비롯해 경기, 서도 지방의 좌창이나 민요의 노랫말에 자주 등장하는 구절이다.

 

이어지는 창가소부(娼家小婦)는 젊은 여인네들이고, 백천(百川)이 동도해(東到海). 하시(何時)에 부서귀(復西歸)란 구절은 동류수(東流水)는 굽이굽이 물결은 바삐 바삐 흘러 여러 강이 동해로 흘러가는데, 언제 서쪽으로 되돌아갈 것인가? 곧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한탄하는 표현이다.

 

다음으로 이어지는“우산(牛山)에 지는 해는 제경공(齊景公)의 눈물”이란 표현이 나오는데, 여기 나오는 제경공은 강태공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놀던 우산에 올라가 서산에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세월의 빠름이여 어찌 인생이 죽음의 길을 재촉하는고”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제경공을 따라온 3명 가운데 2명은 공감하면서 눈물을 흘렸으나, 나머지 1명 안자(晏子)는 웃으며 “삶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는 것은 천리(天理)인데, 역리(逆理)를 하려 함은 불인한 처사라 할 것입니다. 이는 마치, 불인한 임금을 따라 아첨하는 신하들이 운다는 것이 어찌 우습지 않으리요“라고 했다던가?

 

 

이어지는 문장, “어디서 비파소리 곡종(曲終) 인불견(人不見), 수봉청(數峰靑)하니”란 말은 비파로 연주되는 곡은 끝이 났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고, 두어 개 산봉우리만 푸르다는 표현이며 끝부분은 다음과 같이 여미고 있다.

 

“은은한 옛 사당은 상산사 형적인가,

 일 호주 진(盡)토록 만고사가 암암이라.

 유영(劉怜)이 기주한들 분상토(墳上土)에 술이 오랴.

 아마도 우리 인생 춘몽과 같으오니 한잔 먹고 즐겨보세”

 

상산사(湘山祠)란 순(舜)임금의 이비(二妃)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의 사당을 말함이고, 일호주(一壺酒) 진(盡)토록 만고사가 암암(暗暗)이란 뜻은 술 한 병 다 마시도록 만고의 역사는 알기 어렵다는 말이다. “유영(劉怜)이 기주(嗜酒)한들 분상토(墳上土)에 술이 오랴.”라는 시구도 재미있다. 이를 그대로 직역한다면, 유영이란 사람이 아무리 술을 좋아한다고 해도, 죽어 무덤 위까지 술이 오겠는가? 곧 불가능을 강조한 말이다.

 

참고로 유영이란 인물은 중국 진나라 때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으로, 너무나 술을 좋아해서 주덕송(酒德頌)을 짓고, 언제나 하인에게 삽을 메고 따라다니게 했다고 한다. 그 까닭은 언제, 어느 곳에서 술을 마시다가 죽을지 모르니, 그가 죽는 곳에 묻어 달라는 뜻이었다고 하는데, 이를 세상 사람들은 <하삽수지-荷鍤隨之>, 곧 삽을 들고 따라다니던 번거로움으로 부르는 것이다.

 

단가 <편시춘(片時春)>의 마지막 띁나는 구절은 예의 그것처럼 “아마도 우리 인생, 춘몽(春夢)과 같으오니 한잔 먹고 즐겨 보세”로 짧은 삶을 인정하며 살아있는 동안, 즐겁게 지내자는 권유의 말로 끝내고 있다. (다음 주에 계속)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suhilkw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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