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의 정치사회에서 바라본 한국

  • 등록 2025.06.13 12: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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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하고 행복한 나라 부탄을 가다 2]

[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아침 창문을 여니 청량한 아침 공기가 호텔 방안으로 가득 밀려 들어왔다. 잠이 덜 깨 몽롱한 정신이 번쩍 들고 가슴이 확 트이는 기분이었다. 필자는 올 3월 한 달가량 부탄 문화를 취재하면서 팀부에 있는 다니사 호텔이 머물렀다. 말로만 듣던 부탄은 말 그대로 행복한 나라, 조용한 나라, 청정한 나라라는 것을 체감케 했다.

 

3월 4일 8시에 파로 공항에 내려 대합실로 들어서는 순간,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부탄왕국 국왕 가족 대형 사진이었다. 국왕 부부와 아이들 세 명을 가운데 나란히 앉히고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너무도 정겹게 다가왔다. 처음 설명을 듣기 전에는 누구인지를 몰랐다. 우리나라도 보통 가족끼리 다정하게 찍은 사진을 한 장씩은 벽에 걸어 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라 대통령 가족사진을 걸어 둔 집은 보기 힘들다.

 

 

그런데 부탄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공항에서부터 시작하여 팀푸 수도까지 차를 타고 가자니 주요 지역마다 국왕의 사진이 큰 틀에 끼워 정갈하게 걸려 있었다. 그뿐인가, 필자가 투숙한 호텔 로비에도 관공서, 학교, 사원, 할 것 없이 다양한 모습과 크기로 액자 틀에 끼워져 눈길이 잘 가는 곳에 걸려 있었고, 식당 그리고 집집이 국왕과 가족사진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단정하게 잘 걸려 있는 것이 예사였다.

 

한순간, 의아한 생각이 들어 어느 한 주민에게 다가가 ”부탄에는 어디를 가나 국왕 사진이 빠짐없이 걸려 있던데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걸도록 한 것입니까?“라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대뜸 ”아니죠! 우리는 정부가 강제로 사진을 걸라고 한 것이 절대 아니고, 모두 스스로 자발적으로 건 것입니다.“, ”왜죠?“, ”우리들은 국가를 신뢰하고, 국왕을 믿습니다. 국왕이 우리를 잘 살게 하고 행복하게 해 주잖아요. 그러니 국왕을 진실로 존경하기 때문에 국왕 사진을 스스로 걸어놓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필자는 더 할 말을 잃었다. 몇몇 사회주의 나라에서는 국가 정책 차원에서 관공서는 물론이거니와 각 가정에도 국가 원수 사진을 의무적으로 걸도록 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 각자 의사와는 무관하게 억지로 존경심을 유도하고 복종을 유발하는 방법으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부탄은 그렇게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앞서 주민의 증언처럼 국민 누구나 스스로 국가를 인정하고 국왕을 존경하고 국가정책에 믿음을 가지고 따르고 있다. 그 때문에 국왕 사진을 소중하게 간직하는 자체를 의심한다든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자체가 기우(杞憂)일 것 같다.

 

필자가 부탄에 가기 전 한국은 그야말로 극도의 혼란 속에 빠져 있었다. 느닷없이 대통령이 12⬝3 계엄령을 선포한 다음 우리나라는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보수와 진보의 격돌은 그야말로 죽기 살기 피를 토하는 혈전이었다. 전국 각처에서 대통령 탄핵 집회를 하고, 이에 맞서 계엄령을 정당화하려는 무리들의 성토 속에 나라는 한마디로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정의와 진실은 온데간데없고 국민의 분열이 극도로 심화하여 가는 가운데 걷잡을 수 없는 폭풍우가 한 나라를 삼켜버릴 듯했다.

 

이러한 위태로운 정국을 뒤로하고 필자는 예정에 따라 부탄에 발을 디딘 것이었다. ”조용한 나라, 청정한 나라, 행복한 나라. 살기 좋은 나라!“ 말로만 듣던 부탄 나라에 당도한 순간, 한국과 너무도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청량한 바람, 맑디맑은 하늘, 그리고 솜사탕 같은 뭉게구름, 만나는 사람마다 친절하게 대해주는 다정한 얼굴들이 나를 단번에 매혹하고 말았다.

 

그리고 신호등 하나 없는 넓은 차도에는 가끔 말과 소, 개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건만 누구 하나 간섭하는 사람 없고, 경적 한번 들을 수 없는 가운데 차는 차대로 그들을 피해 물 흐르듯 유연하게 운행하는 것을 보고 한참이나 매료되어 넋을 잃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야말로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진풍경들이었다.

 

부탄은 무엇보다 친환경과 전통문화를 중요시하고 있다. 그 가운데 어떤 생명이라도 살생을 금지하고 있다. 하찮은 미물일지라도 절대 살상하거나 학대하지를 않는다. 그러다 보니 어디를 가나 동물들이 사람 이상으로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고 도심 공간을 자유롭게 뛰놀고 있는 풍경을 너무도 자주 볼 수 있다.

 

그와 함께 부탄에는 도축장이 없다. 물론 환경 오염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공장도 없다. 가정 전자제품이나 육류는 거의 다 외국에서 수입하여 사용하고 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국민 누구도 자유를 침해하지 않을뿐더러, 긴장과 압박 강요로 불편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부탄 국가 정책 1순위로 삼는 것이 ”국민총행복(GNH : Gross National Happiness)“인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청정하고 맑은 나라’를 꼽을 수 있다. 그 대안으로 부탄 면적의 70% 이상이 울창한 산림으로 보존되어 있다. 그리고 환경오염 요소들을 정책적으로 치밀하게 단절시키고 있다. 그래서일까 부탄은 금연 국가이다. 이런 생활들을 살펴보면 ‘과연 이런 생활과 정책들이 가능할까?’라는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런데 필자가 비록 짧은 기간 체험으로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부탄에서 짧은 생활 체험 속에서나마 안정된 사회, ‘청정하고 조용한 나라’라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것은 첫째 공직자들의 ’청렴하고 성실한 직무 태도’이며, 두 번째는 ‘몸소 실천과 봉사정신’에서 가능하다고 보였다.

 

모름지기 나라가 평온하고 청정하려면, 우선 그 나라 지도자의 올바른 정치 이념과 통솔력에 달려있다고 보며, 따라서 공직자들의 마음가짐과 생활 태도에 달렸다고 본다. 부탄에서는 공직자들이 그렇게 솔선수범과 검소한 생활을 실천해 보여주고 있었으며, 국민의 고통과 행복을 같이 나눔의 생활 속에 안정된 사회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었다.

 

또한 건전하고 행복한 사회는 단지 국민이 국가만 바라보고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생활 태도와 마음가짐에도 달려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부탄 정책이 우수하고, 지도자의 지휘 능력이 우수해서 국가가 잘 번영하는 것도 있지만 국민 각자가 자기 역할을 다 못한다면 부탄과 같은 나라는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패는 사회의 공적 토대를 잠식하는 강력한 죄악이다. 부패한 권력이 횡행하는 나라치고 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었다. 《전등록(傳燈錄, 중국 송나라 때 펴낸 5대 선종사서 가운데 하나)》에 ‘청빈자락(淸貧自樂)’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맑은 가난을 스스로 즐길지언정 혼탁한 부유함으로 많은 근심을 만들지 마라

(寧可淸貧自樂, 不作濁富多憂).”

 

이 말은 권력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았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에는 권력을 이용하여 많은 재산을 취하고 권력을 남용하는 자들이 많다. 또한 그들은 사리사욕을 넘어서 자기 잘못을 모르고 무리하게 약자를 괴롭히는 사례들이 비일비재하다.

 

그 가운데 지도자들은 말로만 번지르르하게 평등을 운운하고 평화와 자유를 외치고 있다. 그런데 왜 이같이 나라가 정체성과 구심점을 잃고, 혼돈과 분쟁 속에서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을까.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고위 공직자들의 청렴성 실추와 구태의연한 생활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확연히 증명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조선 역사를 살펴보면 그래도 청렴하고 바르게 살았던 고위 공직자들이 있었다. 황희나 맹사성 그리고 김상헌은 높은 관직에 있으면서도 지붕이 새는 좁은 오막살이에서 청빈자락(淸貧自樂) 속에 살았다. 청빈자락이란 자기 자신을 맑게 해주기도 하지만 세상을 맑게 해주는 청량제가 되기도 한다. 누구누구를 떠나서 내가 비록 빈곤하긴 하나 지금 이 자리에 이렇게 숨 쉬고 있는 나를 바라보면서, “나의 삶이 최고로 행복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라고 자문자답을 한다면, 선뜻 청빈자락(淸貧自樂) 이라고 해도 어찌 부끄럽다고 하겠는가.

 

 

일취스님(철학박사) cleanmind300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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