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순흥 교수] 을사늑약 두 갑자 120년, 경술국치 115년, 광복 80년, 나라를 빼앗기고 다시 찾은 지 모두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는 정리하지 못한 역사를 대를 이어 우리 아이들에게 남기고 있다.
일본이 이 땅에서 몸은 물러갔지만, 그들의 찌꺼기가 너무나 뚜렷하게 남아있는데도 우리는 보지 못한 채, 때로는 못 본 척 살고 있다. 우리가 날마다 쓰는 말속에, 우리 아이들의 놀이와 노래 속에 일본의 찌꺼기들이 마치 우리 것인 양 자리 잡고 행세를 하고 있다.
‘뗑깡, 나와바리, 신토불이, 고객, 세꼬시, 달인, 호우, 재테크, ...’ 우리들의 일상생활이나 방송에서 날마다 쓰고 듣는 말이 일본말의 찌꺼기들이다. 우리가 학교라는 곳에 들어가 맨 처음 배운 노래가 가사만 바꾼 일본노래들이었고, 우리의 것인 줄 알고 부르던 ‘학교종’이나 ‘퐁당퐁당’ 등이 일본식 음계와 장단을 따른 음악이라는 사실, 심지어는 애국의 상징처럼 불리고 있는 ‘독도는 우리땅’이나 ‘서울에서 평양까지’ 등도 일본식 음계를 그대로 따르는 곡이라는 것을 모르는 채 열심히 부르고 있다.
‘가위바위보’, ‘숨바꼭질할 사람’은 일본의 선율과 가사, 놀이방법들이 모두 같고, ‘쎄쎄쎄’, ‘동그라미’, ‘아침바람’은 선율이 비슷하고 가사와 놀이방법이 같은 것이다. ‘꼬마야 꼬마야’, ‘여우야 여우야’, ‘똑똑똑 누구십니까’라는 선율은 다르지만, 가사와 놀이방법이 같고, ‘우리집에 왜왔니’,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선율과 가사는 다르지만, 놀이방법이 같은 것이다. 아이들의 동요에서 대중가요와 가곡에 이르기까지 우리 것이 지키고 있어야 할 자리를 일본의 흔적이 너무 많이 차지하고 있다.

우리 곁에 남아있는 일본의 찌꺼기들
지금껏 우리 음악계의 큰 인물로 알려져 있던 현제명, 홍난파, 조두남, 안익태, 박시춘, 남인수 등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망라하여 41명의 음악인이 ‘친일인명사전’에 올라 있다. 그들이 만들고 부른 수많은 노래들 가운데, 낯내놓고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노래, ‘대동아공영권’을 찬양하는 노래,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조선청년들을 학도병으로 내보내기 위해 부르던 ‘친일노래’들은 광복 이후 자연스럽게 정리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노래를 오랫동안 익숙하게 불러왔고, 어떤 노래는 노골적인 친일음악인데도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고, 좋은 노래인 것으로 알고 부르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친일음악가 안익태가 자신이 쓴 친일음악 ‘만주환상곡’과 거의 비슷한 ‘한국환상곡’ 속의 ‘애국가’가 아직도 우리의 상징인 국가로 불리고 있다. 말탄 일본군을 찬양하여 지은 ‘선구자(용정의 노래)’가 만주벌판의 독립군을 노래한 것처럼 둔갑하고, 바다 건너 대륙침략의 야욕이 묻어나는 ‘회망의 나라로’를 ‘광복 조선의 미래’인 것처럼 잘못 알고 널리 부르고 있다.

친일음악인들이 만든 노래를 부르지 말자는 뜻이 아니다. 일본 노래를 부르지 말자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만들었더라도 친일과는 아무 상관 없는 순수음악도 많이 있다. 일본 음악에도 예술적으로 훌륭한 음악이 많이 있다. 우리 것도 좋은 것은 세계만방에 알리듯이 외국 것이라도 좋은 것은 가져다 쓸 수도 있고 부를 수도 있다. 다만, 그것을 알고 부르자는 것이다.
1910년 경술국치를 기억하고, 1945년 광복의 기쁨을 다시 느끼면서, 이제라도 일본이 남기고 간 찌꺼기들을 우리 생활 속에서, 우리 문화 속에서 치우고 정리해야 한다. 껍데기만 되찾은 것은 광복이 아니다. 소리만 우리 말소리, 글자만 우리 글자여서는 안 된다. 소리와 글자에 담는 내용도 담는 방법도 우리 것을 되찾고, 우리 문화를 바로 세우는 것이 진정한 광복이다. 문화는 바로 우리의 넋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넋을 찾아 진정한 광복을 이루기 위해,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시작해야 한다. 부끄러운 역사는 우리 세대에서 끝내고, 우리 아이들에게는 자랑스럽고 훌륭한 역사를 물려주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의 손으로 부끄러운 역사를 다시 써야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