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파 혁명가들의 속뜻은

  • 등록 2025.08.21 11: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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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자주독립은 절대 명제
[돌아온 개화기 사람들] 44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조선 왕조는 개국 484년 만인 1876년 나라의 빗장을 열었다. 그 뒤 1880년대에 들어서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와 차례로 통상조약을 맺었다. 격랑의 시대에 집권 보수 사대파는 뭐든지 청나라의 그늘 속에 안주하려 하였다. 집권층은 큰 나라로부터 자주독립하려는 생각 자체를 두려워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을 적대시했다. 그들의 적이 바로 개화파였다. 개화파는 일본을 모델로 하는 개혁을 서둘렀다. 낡은 봉건왕조를 뜯어고쳐 재단장하려는 그들의 개혁이 성공했더라면 훗날 일제에 강점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 친일논쟁을 할 일도 없을 것이다.

 

보수 사대파의 철옹성 같은 장벽과 야수와 같은 외세의 도전 속에 놓인 조선이 벼랑 끝에 서 있음을 절감한 사람들이 바로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파 혁명가들이었다. 민중을 계몽시킬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위로부터의 급진적인 개혁을 통하여 조선을 구하려 했다. 그들은 소수였고 권력도 없었다. 그들을 적대시하는 보수 사대파는 청나라를 뒷배로 삼아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개화파 혁명가들이 품었던 갈망은 조선의 자주독립, 그것이었다. 서재필의 말이다.

 

“그때 김옥균의 생각은 무엇보다도 청나라 세력을 꺾어버리는 동시에, 그에 추종하는 귀족들의 세력을 빼앗은 뒤에 우리나라의 완전 자주독립을 세우자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의 이상이었고 최고 목표였다.”

 

갑신정변을 통해 그들이 발표한 정강 제1조는 주목할 만하다. 청국에 대한 조공의 허례를 폐지하고, 중국에 억류된 대원군을 귀국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청나라는 1882년의 임오군변을 빌미로 대규모 군대를 몰고 와 한양에 상주하면서 종주국 행세를 하고 있었다. 청나라의 권력자 이홍장이 파견한 원세개는 통감행세를 하면서 개화파가 추진하는 개혁정책을 사사건건 방해하고 좌절시켰다. 조선의 고관들은 제 나라 군주가 아니라 청나라의 원세개에 복종하였다.

 

 

배외(외국 사람이나 외국의 문물ㆍ사상 등을 맹목적으로 숭배함)주의의 화신인 대원군과 개방적 개화파는 빙탄불용(氷炭不容: 얼음과 숯불처럼 서로 용납할 수 없음)의 적대관계였다. 그런데 갑신정변 정강의 제1조는 대원국의 환국을 주장하고 있으니 이 무슨 뜻인가?

 

그들은 대원군을 절대 옹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선왕국의 주군인 국왕의 친 아버지를 외국 군대가 아무렇지도 않게 거두어 압송해 간 사실에 분기탱천했다. 그것은 민족적 자주권에 대한 난폭한 유린이었다. 개화파가 맨 앞머리에 대원군 귀국조치를 내세운 것은 바로 민족적 자존과 자주독립을 세우고자 함이었다. 대원군 억류를 방치해 놓는 한 조선은 자주독립국이라 할 수 없을 것이었다. 자주적 대외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수도 없을 것이었다.

 

국내 정치적으로 적대적인 인물을 구출해 내려는 개화파의 대승적 자세야말로 사심이 없는 애국심의 발로가 아닌가. 자주독립이라는 대의를 위해 그들은 사사로운 정치적 이해득실을 벗어났던 것이다. 그들에게 자주독립은 절대 명제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정강 제2조는 무엇이었을까? ‘문벌을 폐지하여 인민의 평등권리를 세울 것’이었다. 양반지배의 봉건체제 해체와 국민의 평등권 주창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군왕제 폐지를 꾀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인민의 평등권’에 기초한 군주권 확립을 지향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선흥 작가 greensprout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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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흥 작가

전직 외교관(외무고시 14회), 《1402강리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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