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호칭 ‘아주머니’가 잘못된 말인가?

  • 등록 2025.08.31 11: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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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과 한국의 전통적 호칭에 관한 생각
[청정하고 행복한 나라 부탄을 가다 7]

[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나는 가곡 부르기를 좋아한다. 시 가사와 가락이 감미롭게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침저녁 염불도 마치 가곡을 부르듯 읊조리곤 한다. 가곡은 중ㆍ고등학교 시절 접한 이후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멀어졌지만, 다행히 한 복지회관 가곡반에 가면서 다시 그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옆자리 여성분께 말을 건넸다.

“아주머니, 언제부터 가곡을 하셨어요? 어려운 곡도 잘 부르시던데...”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올 초부터 시작했어요. 그런데 아직도 ‘아주머니’라는 말을 쓰세요?”

순간 나는 당황해하며,

“그러면 어떻게 불러야 하죠?” 하고 되물었다.

“몰라요!” 하고는 그녀는 교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는 “‘아주머니’란 말이 뭐가 잘못됐지?”라고 생각하며 그 뒷모습을 한참 멍하니 바라보았다.

 

 

내가 올 3월에 부탄을 취재차 방문했을 때였다. 안내자와 함께 길을 가던 중, 그가 현지 주민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호칭을 쓰는 방식에 호감이 갔다. 순간순간 그 의미를 물어 알 수 있었는데, 부탄은 전통문화를 소중히 지키는 나라답게 호칭 역시 옛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부탄의 전통적 호칭

⬩ 아포(Apo, ཨ་པོ་) : 나이 지긋한 남성. 우리말 “아저씨/할아버지”에 가까우며 존경과 친근함의 의미.

⬩ 아모(Amo, ཨ་མོ་) : 나이 있는 여성. “아주머니/할머니”에 해당.

⬩ 아초(Acho, ཨ་ཅོ་) : 자기보다 나이 많은 젊은 남성. “형님”이나 “아저씨”쯤.

⬩ 아추(Achu, ཨ་ཅུ་) : 자기보다 나이 많은 누나, 젊은 여성.

⬩ 아중(Azhang, ཨ་ཞང་) : 장인어른, 큰 어른을 뜻하는 존칭.

⬩ 앙(Ang, ཨང་) : 또래나 동생에게 쓰는 친근한 호칭. “얘야”에 가까움

⬩ 라(La, ལ་) : 이름 뒤에 붙이는 존칭어미. 한국어의 “~님”과 유사.

 

우리나라 전통 호칭

⬩ 아저씨 : 본래 “아저비(큰아버지)”에서 온 말로, 존칭. 마을에서는 친근한 남성에게 사용.

⬩ 아주머니 : “아주버니(형님의 아내)”에서 비롯된 존칭. 마을 공동체에서 친근하게 사용.

⬩ 총각 / 아가씨 : 젊은 남녀.

⬩ 할아버지 / 할머니 : 어른을 높여 부르는 호칭.

⬩ 어르신 : 나이 많은 분을 두루 높여 부르는 말.

⬩ 유생 : 학문을 닦는 사람.

⬩ 선생(先生) : 가르치는 사람, 학식이 높은 어른.

⬩ 대인(大人) : 덕망 높은 어른.

 

이렇게 살펴볼 때, 한국의 전통 사회에서 “아저씨, 아주머니”는 결코 낮춤이 아니다. ‘아저씨, 아주머니‘라는 말은 본래 존중과 친근감을 담은 호칭이었고, 공동체적 연대와 사회적 친분관계를 드러내는 전통 가치관의 대표적 산물이었다. 오늘날 천대적 인식을 띠게 된 원인은 사회적 인식 변화도 있지만, 허세적 의식이 더 크게 작용하여 고유의 본질이 흐려진 것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에 덧붙여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호칭도 그렇다.

 

어느 날 한 젊은이가 팔십 살쯤 되어 보이는 분에게 “할아버지” 하고 불렸다. 그 말에 할아버지는 경색하며, “할아버지라고 불으면 안 돼!”라고 주의를 주었다.

 

“아저씨”라는 근원은 중세국어 ‘아저비’에서 비롯되었으며 《훈몽자회》(1527)에는 “伯父(백부)”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아버지와 같은 권위를 지닌 친족 남성을 높여 부르는 존칭이었다. “아주머니”도 아주버님(형님의 아내)에서 파생된 말로, 《역어유해》(17세기 말)에는 “伯母(백모)”로 풀이된다. 곧 이 호칭은 공동체 친족 의식을 반영한 존중어였다.

 

또한 한국의 전통적 대가족ㆍ마을 공동체 속에서는 혈연이 아니어도 마을의 남자는 “아저씨”, 여자는 “아주머니”라 불리며 사회적 친족으로 인정되었다. 이는 “낯선 타인”을 “우리 어른”으로 받아들이는 장치였고, 공동체적 유대와 존중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이후 도시화와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의미가 변했다. 1980~90년대 대중문화 속에서 “아저씨, 아줌마”가 희화화(戲畫化)되고 권위적 이미지가 소비되면서, 부정적 개념이 덧씌워졌다. 이 탓에 일부는 낮춰 부르는 말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선생님, 사장님, 여사님, 어르신” 같은 대체 호칭을 쓰게 되었다. 특히 “선생님”은 원래 은사에게만 쓰이던 호칭이었고, “여사” 또한 학문과 덕을 갖춘 지식인이나 사회적 지휘가 인정되는 여성에게 붙일만한 호칭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거의 모든 성인에게 두루 쓰이는 존칭으로 확장되었다.

 

이 밖에도 우리말 호칭의 전통이 변형된 사례들 살펴보면

 

⬩ 씨(氏) : 여성을 낮추어 부르는 말. ⭬ 일본식 ‘氏’가 들어와 성+씨(김씨, 이씨)로 변형.

⬩ 군(君) : 양반ㆍ사대부 남성, 혹은 젊은 귀한 집 아들(예: 수양대‘군’) ⭬ 일본식 영향으로 학생, 젊은 남자에게 보통 호칭.

⬩ 양(樣) : 존칭, 양반ㆍ귀한 집 자제에게 붙이는 말. ⭬ 일본식 “양(様)” 영향으로 여성 일반을 호칭,

⬩ 아가씨 : 집안의 처녀를 높이는 말. ⭬ 근대 이후 여성을 낮춰 부르는 말로 격하(格下).

⬩ 동무 : 벗, 친구. ⭬ 북한에서 정치적 호칭으로 쓰인 뒤, 남한에서는 부정적 이미가 덧칠되었다.

⬩ 님 : 존칭 접미사 (예: 어머님, 아버님). ⭬ ‘고객님, 회원님’ 등 상업적 언어로 지나치게 사용된다.

 

결론적으로, 우리말 호칭은 사실 오랜 전통 속에서 사회적 관계, 나이, 신분, 예절을 반영하는 중요한 언어적 장치였는데, 근대(개항기~일제강점기, 해방 이후 근대화 과정)에 들어서면서 일제강점기의 일본식 언어 관습, 서구 근대화 과정의 번역어 도입, 광복 뒤 사회 정치적 이념 변화 속에서 크게 변형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부탄의 아포(Apo), 아모(Amo) 같은 호칭은 나이ㆍ지위ㆍ존경을 동시에 고려하는 사회적 장치로서, 한국의 아저씨ㆍ아주머니와 비슷하지만 보다 깊은 문화적 값어치를 지닌다. 부탄이 이렇게 전통을 지켜 내고 있지만, 한국은 외래문화와 시대적 변화 속에서 본래의 전통을 지키지 못하고, 변질된 인식 속에서 극히 중요한 혼(魂)과 얼 그리고 언어의 구심점을 잃어가고 있다.

 

 

 

혹시 서양식, 일본식 호칭에 견줘 전통적으로 써온 아저씨, 아주머니에 대해 구리다는 편견이 사로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 예전 한 국어학자는 “우리말로 ‘밥집’이라면 싸구려 음식점, 한자말 ‘식당’이라면 그저 그렇고, 영어 ‘가든’을 쓰면 고급음식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서 민족주체성이 없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라고 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호칭에 대한 우리의 정체성과 전통성을 되살리려고 한다면, 단순한 호칭을 넘어,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와 우리말의 품격(品格)을 되살리는 길에 국민 모두 지혜를 모아야 하고, 실천에 앞장서야 할 것 같다. 따라서 허구적인 언어의 관념에서 벗어나 우리말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우리말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회복하는데 지름길이 될 것 같다.

 

 

일취스님(철학박사) cleanmind300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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