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 온 이를 세심하게 챙겨주는 나주 '불회사'

  • 등록 2025.10.06 08: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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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고승 마라난타가 세운 천년고찰 나주 불회사를 가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竹影掃階塵不動 月輪穿沼水無痕 죽영소계진부동 월륜천소수무흔

댓잎 그림자가 계단을 쓸어도 먼지는 그대로요,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물에 흔적은 남지를 않네.

智慧存於明者心 如淸水在於深井 지혜존어명자심 여청수재어심정

지혜는 밝은 사람 마음에 있는데,

마치 맑은 물이 깊은 샘에 있는 것과 같다네

三日修心千載寶 百年貪物一朝塵 삼일수심천재보 백년탐물일조진

삼일동안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백일동안 탐한 재물은 하루아침의 티끌이로다.

                                                                          - 나주 불회사 주련 해석-

 

 

한가위 성묫길이 막힐 듯하여 지난주에 한발 빠른 성묘를 마치고 지방에 내려간 김에 나주 불회사(佛會寺)에 들렸다. 특별히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고건축을 전공한 남편 덕에 고건축물인 절 답사길에 따라나선 지도 어느덧 30여 년이 훌쩍 넘는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라고 이제 고찰(古刹)이면 고찰, 서원(書院)이면 서원 등 나름의 보는 안목이 생겼다고 자부심(?)을 가질 때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전문가 수준의 안목이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른바 촉감(觸感)이란 것은 나름 축적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온 나라의 명찰(名刹)ㆍ고찰(古刹)을 드나들며 유심히 보게 되는 것은 절의 규모나 연륜보다는 절을 찾는 이들에 대한 배려심이 얼마나 큰가를 살피는 일이다. 불회사처럼 어려운 주련(柱聯: 기둥이나 벽 따위에 장식으로 써서 붙이는 글귀. 주로 한시(漢詩)의 연구(聯句)를 써놓음)을 해석해 주고 있다던가, 요즘 같은 가을이면 활짝 핀 국화 화분 몇 개라도 내놓는다든지, 추운 겨울철이면 따뜻한 난로가 있는 종무소에 들러 몸을 녹일 수 있도록 손님용 의자를 놓아둔다든지 등등 신도가 아니더라도 절을 찾는 이를 위한 배려를 찾아보는 일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교회도 그렇지만 절에도 이른바 카페가 유행처럼 번져 거의 없는 곳이 없을 정도다.

 

 

 

 

 

문제는 이런 카페에서 다루는 차 종류들이 시중가 못지않게 비싸다는 점이다. 비싸면 안 사 먹으면 그만이겠지만, 절 순례를 하다 보면 다리도 아프고 몸도 지쳐 잠시라도 쉬고 싶어지는데 절 안에는 카페시설 말고는 딱히 쉴만한 공간이 없는 곳이 많다. 절 경내에 그 흔한 긴의자 하나 없다. 갈수록 그런 느낌을 받다가 만난 불회사의 무인 찻집인 ‘비로찻집’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정갈한 찻잔과 잔받침, 찻주전자, 물식힘사발, 차선, 차칙(찻잎을 뜨는 대나무 숟가락) 등이 갖춰져 있고 ‘비로약차’까지 갖춰져 있었다. 친절하게도 비로약차를 어떻게 타야하는지도 잘 설명해 놓고 있었고 무선주전자에는 방금 누군가 코드를 꼽아 차를 타기 딱 좋은 물의 온도로 맞춰 놓았다. 두리번거려보았지만, 찻집 안에는 아무도 없다. 누군가 방금 차를 마셨는지 개수대에 찻잔을 씻어 정갈하게 엎어둔 모습이 인상 깊다. 고요하고 정갈하여 사색하기 좋은 찻집을 나주의 불회사에서 만나다니... 아주 감동적이었다. 집이 가깝다면 이 절의 신도가 되고 싶은 마음마저 일었다. 누군가 나주에 가거든 반드시 불회사의 비로찻집에 가보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다.

 

 

 

 

 

 

 

몇 해 전 겨울 나는 천년고찰 **사를 찾아간 적이 있다. 때는 2월 말이었지만 날은 추웠고 잠시라도 몸을 녹일 공간은 없었다. 마침 종무소가 있기에 문을 빼꼼하게 열고 잠시 들어가도 되느냐고 묻고 보니, 은행 창구처럼 만들어 놓은 종무소 안쪽에서 여직원이 무슨 용무냐고 묻는다. 둘러보니 앉을만한 의자 하나 없다. 그냥 멋쩍어 ‘이 절의 홍보물이 있으면 하나 달라’고 하니 인터넷을 찾아보라고 해서 알았다고 하고 나온 기억이 난다.

 

나는 찻주전자에 비로약차(榧露藥茶: 비자나무 아래서 이슬을 머금고 자란 찻잎을 일곱가지 약재와 함께 만든 발효차)를 우려내어 천천히 마셨다. 지난 30여 년 동안 찾아갔던 수많은 절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30여 년 전보다 절의 전각은 커졌고 규모도 커진 것 같지만 정작 절을 찾는 이들이 쉴만한 공간은 늘지 않는다. 유료 찻집만 늘어나는 추세다. 그런 상황에서 불회사의 비로찻집은 신선했다. 물론 이곳이 완전히 무료는 아니며 찻값은 자기가 알아서 보시함에 넣게 되어있다.

 

 

 

불회사에서 느낀 두 가지를 말하려다가 이야기가 길어졌다. 하나는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주련에 대한 해설을 해두고 있는 점과 또 다른 하나는 정갈한 무인 찻집을 만들어 절을 찾는 이라면 누구나 이용하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음수사원, 굴정지인(飮水思源, 掘井之人)’이라는 말이 있다. ‘물을 마실 때 그 물의 근원을 생각하고 우물을 판 사람을 생각하며 마셔야 한다’라는 뜻이다. 나는 비로찻집에 앉아 이런 아름다운 찻집을 만든 이가 누굴까를 상상해 보았다. 그 배려심에 고개가 수그러들었다.

 

나주시청 문화관광과에서는 천년고찰 불회사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안내하고 있다. “백제 침류왕 시기인 384년 인도 고승 마라난타가 해로를 통해 들어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중국차의 한국 전래지로 천년이 넘은 전차(錢茶)의 전통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 한국 차문화를 상징하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또한 대웅전ㆍ건칠비로자나불좌성ㆍ석장승 등 많은 문화유산이 보존되어 있는데, 대웅전 뒤편의 동백나무숲과 국가 보호림인 비자나무숲이 유명하다. 불회사는 ‘춘불회추내장(春佛會秋內藏) 곧 봄에는 불회사, 가을에는 내장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경치가 아름다운 절이다.”

 

* 불회사(佛會寺)

* 전남 나주시 다도면 다도로 1224-142

* 061-337-3440

 

 

이윤옥 기자 59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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