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합리적 인류는 때때로 멍청해지는가?

  • 등록 2025.10.28 11:00:00
크게보기

《페이크와 팩트》, 데이비드 로버트 그라임스, 디플롯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302]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지난 9월 1일은 저희 로고스 로펌 창립 25주년 기념일이었습니다. 해마다 9월 1일이면 창립 기념식을 하지만, 올해는 25주년이라 외부 연회장도 빌려 더욱 의미있게 기념행사를 하였습니다. 기념식에서는 행운권 추첨 시간도 있었습니다. 저는 평소 행운권 당첨의 행운은 별로 없어 기대는 안 하지만, 그래도 혹시 당첨되면 늘 제 일을 열심히 돌봐주는 비서 오 주임에게 줄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집행부가 행운권을 남발해서인지(^^) 나에게도 행운이 돌아왔습니다. 제가 당첨된 것은 5만 원 도서상품권이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제일 땡기는 행운권이었지요. 그래서 “오 주임은 도서상품권은 별로 내켜 하지 않을 거야”, 이렇게 내 멋대로 단정하고 도서상품권을 제 안주머니에 꽂았습니다. 그 대신 오 주임과 오 주임이 같이 식사하고픈 권 대리에게 점심을 사주었지요.

 

다음날 코엑스 영풍문고에 들러 찬찬히 서가를 둘러보는데, 그렇게 둘러보는 제 눈에 《페이크와 팩트》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543쪽이나 되는 두터운 책이지만 저는 주저 없이 이 책을 샀습니다. 그동안 가짜뉴스와 음모에 휘둘리는 요즘 세태를 보며 “도대체 왜 이럴까?” 하는 의문과 답답함을 느끼고 있던 차에, 이 책이 저에게 꽂힌 것이지요. 그리고 또 하나 《지구의 미스터리》라는 580쪽의 책을 사고 나니, 5만 원 도서상품권은 훌쩍 다 써버리게 되네요.

 

《페이크와 팩트》 지은이는 아일랜드의 물리학자이자 생물통계학자, 암 연구자인 데이비드 로버트 그라임스(David Robert Grimes)입니다. 그라임스는 사람들이 과학적 근거도 없이 편견에 사로잡혀 백신을 거부하고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등 무지성과 무개념의 얼빠진 행동들이 횡행하는 것을 보고, 적극적으로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왜 이러는지 그 근저를 파헤치고 이들의 심리를 분석하는 등 연구를 계속해 왔고, 그 결과물로 이 두꺼운 책이 나온 것입니다.

 

 

책의 부제는 「왜 합리적 인류는 때때로 멍청해지는가?」인데, 그라임스는 그런 의문을 풀어보고자 자기 전공분야를 넘어 폭넓게 이 문제에 천착해 온 것입니다. 그라임스는 절반의 진실과 노골적인 거짓의 불협화음이 과도하게 넘쳐나는 오늘날 상황에서 타당한 결정을 내리려면 신호와 소음을 구분하는 방법을 반드시 배워야 하며, 잘못된 사고가 침투하는 순간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라임스는 1부에서 논리가 부재한 세상을 한탄하며 잘못으로 향하게 만드는 논리적 오류 등을 밝혀냅니다. 하나만 얘기하면 ‘휴대전화(손말틀) 전자파는 암을 일으키는가?’입니다. 세계보건기구가 휴대전화 사용이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는 없다고 명백하게 밝혔음에도 지금도 휴대전화 전자파가 해롭다는 주장은 끈질기게 살아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휴대전화를 양복 윗도리 안주머니에 넣는 것이 왠지 께름직합니다.

 

그러나 그라임스는 대규모 역학 연구에서 이런 현상은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성인이라면 휴대전화 하나는 다 소지하고 있을 텐데, 그렇다면 뭔가 암 발생에서 유의미한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그리고 와이파이나 휴대전화 진동수는 저에너지 마이크로파를 사용하므로, 이는 세포에 피해를 줄 만큼 강력하지 않다고 합니다.

 

2부에서 그라임스는 <진실은 단순하지 않다>라는 제목으로 디테일에 숨어있는 악마를 찾고, 백신에 대한 막연한 공포, 피부색을 둘러싼 차별과 혐오 등을 걷어냅니다. 3부의 제목은 <마음의 조작>입니다. 우리의 기억은 정확할까요?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이성적으로 조절할 수 있을까요? 그라임스는 자기 경험을 얘기합니다. 그라임스는 2007년은 수많은 괴상한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나 친한 사람들을 괴롭혔던 파란만장한 해였답니다.

 

그래서 그라임스는 그해 일어난 힘겨웠던 혼란을 정리할 겸 여러 달 동안 자세하게 일기를 썼답니다. 그 뒤 친구가 그해 일어난 사건을 변형해서 소설 배경으로 쓰고 싶어 해, 친구가 참고하도록 일기장을 찾았답니다. 그런데 기억은 일기와는 놀라울 정도로 달랐답니다. 이상하여 당시의 상황을 철저하게 조사했지만 결국 일기가 기억보다 정확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그래서 그라임스는 말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사건과 대안 서사를 뒤섞어버리고, 순서를 윤색하며, 단순화하는 기상천외한 성향이 있다.” 기억이 이렇게 불완전하기에, 재판에서 증언에만 의존하여 판결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증언에만 의존하여 무고한 사람을 유죄로 판결한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지 못할 정도로 많습니다.

 

4부의 제목은 <거짓말, 빌어먹을 거짓말, 그리고 통계>입니다. 하하하! 그라임스가 얼마나 사람들의 거짓말에 진저리 쳤으면 제목을 이렇게 했을까요? 통계를 인용할 때는 신중해야 합니다. 설문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통계 결과가 달리 나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통계 결과를 잘못 해석하면 엉뚱한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2차 대전 때 미국 해양안보연구센터는 치열한 공중전에서 무사히 귀환한 전투기를 연구해서 약점을 보완하기로 했습니다. 무사 귀환한 전투기들을 관찰한 기술자들은 콕핏 주변의 손상이 드물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 부분은 놔두고 다른 부분만 강화했습니다.

 

그러나 통계학자 에이브러햄 월드는 이에 대해 다른 설명을 내놓았습니다. 콕핏 부분이 손상된 전투기들은 다 추락했기에, 살아 돌아온 전투기만 놓고 손상 부위의 많고 적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콕핏 부분이야말로 더욱 보강이 필요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라임스는 이처럼 보이지 않는 사례를 무심코 간과하고 성공 사례에만 근거해서 결론을 내리는 오류를 ‘생존 편향’이라고 부른다네요.

 

5부의 제목은 <대환장 뉴스>입니다. 짐작이 가지요? 그라임스가 가짜뉴스에 얼마나 분노가 치밀었으면 제목을 <대환장 뉴스>라고 했는지를요? 한 예로, 트럼프는 처음 대통령에 당선되는 선거에서 횡설수설하고 상대방을 악의적으로 공격하며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 거짓말을 해댔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전략이었다네요. 미디어로 횡설수설과 해로운 이념을 전파해서 수용적인 시청자에게 자신을 선전하겠다는 은밀한 전략이었답니다.

 

이 때문에 이것이 먹혀들어 가는 ‘탈진실’ 정치의 부상에 미디어 해설자는 절망하였답니다. 그리고 힐러리와 트럼프를 공평하게 보도해야 한다는 언론의 착각은 힐러리의 상대적으로 작은 추문을 트럼프의 경악스러운 범죄와 같은 수준으로 보도하는 우를 범합니다. 똑같군요. 우리나라에서도 언론의 ‘기계적 중립’이 얼마나 해롭다는 것을 사람들은 깨닫고 있으니까요.

 

뒤늦게 매스컴은 자신들이 효과적으로 ‘괴이’를 ‘정상’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이미 때늦은 자책이었지요. 그러나 한번 멍청해진 미국인은 이번에도 트럼프를 선택했습니다.

 

마지막 6부의 제목은 <어둠을 밝히는 촛불>입니다. 빌어먹을 거짓말에 가슴을 치고, 대환장 뉴스에 분노의 목소리를 내던 그라임스가 분노로만 끝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라임스는 마지막 6부에서 희망을 찾습니다. 그라임스는 과학적 회의주의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추론의 오류 가능성을 그저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해로운 결과에서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고 합니다.

 

철학자 폴 커츠(Paul Kurtz)는 회의주의자를 “어떤 주장이든 사실을 가릴 의지가 있는 사람, 정의의 명확성과 논리의 일관성, 증거의 타당성을 묻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실을 사랑하되 오류를 수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증거만 따라가야 하며, 편하고 익숙하더라도 부정확한 생각과 신념은 폐기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라임스는 책의 마지막을 이렇게 마감합니다. 이 말을 인용하면서 《페이크와 팩트》를 본 소감을 마칩니다.

 

"우리가 마주한 문제들은 기후변화부터 항생제 내성, 지정학적 불안정성까지 진실로 벅찬 문제다. 이 문제들을 마주하고 견뎌내려면 과학자처럼 생각하고, 반응하기 전에 숙고하며, 감정보다는 증거를 따라가고, 항상 자신을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 모두를 위한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분투에는 지적 능력만큼이나 용기와 연민도 필요하다. (가운데 줄임) 낡은 생각은 버리고 새로운 생각 포용하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타인의 오류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오류도 용서해야 한다. 결국 인간이 번영할지, 소멸할지는 우리가 실수를 통해 배우느냐 실수에 굴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양승국 변호사 yangaram@lawlogos.com
Copyright @2013 우리문화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 32. 그린오피스텔 306호 | 대표전화 : 02-733-5027 | 팩스 : 02-733-5028 발행·편집인 : 김영조 | 언론사 등록번호 : 서울 아03923 등록일자 : 2015년 | 발행일자 : 2015년 10월 6일 | 사업자등록번호 : 163-10-00275 Copyright © 2013 우리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ine9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