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고의 빛나는 역사를 음지에서 가꾸다

  • 등록 2025.12.12 12: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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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 교사의 헌신으로 지켜지는 고등학교 역사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1929)11월 3일 전라남도 광주에서 발발한 중학교생도와 고등보통학교 생도의 투쟁 사건은 일반 조선인들의 커다란 동요를 불러일으켜 당국(일제) 역시 사건의 중대성으로 보고 동 사건의 내용에 관한 신문기사의 게재금지를 하고 이에 대한 파급 방지를 위해 노력하였으나 경성에서는 대표적인 사회운동단체인 학생과학연구회, 조선학생회, 신간회, 중앙청년동맹 등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 운동에 돌입하였으며...11월 7일 이후 경성을 중심으로 조선학생들의 동맹휴교, 만세고창, 시위운동 등이 저지할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되었다...이에 양정고보에서는 11월 14일부터, 중앙고보는 20일부터 동요에 들어갔으며 12월 10일부터는 개성 소재 학교들이 16일부터는 인천과 춘천에서도 동요를 보였다.” -경성지방법원검사국 문서 <京城을 中心으로 한 管內 鮮人學生 動搖의 顚末> 1930.1.30. 발신자 경성헌병대, 문서번호 朝京 제250호 -

 

이는 1929년 11월 3일, 일어난 광주학생독립운동(11·3 광주학생항일운동, 아래 학생운동)에 대한 일본 쪽 기록(기자 번역)으로 이 학생운동은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 이후 국내 최대규모의 대중적 항일운동으로 꼽힌다. 당시 경성지방법원검사국에서는 이날 학생운동에 대해 광주지역은 물론이고 경성(서울)을 포함한 전국지역의 학교와 학생들의 움직임을 상세하고 기록해 놓았다.

 

 

지난 11월 28일 금요일, 기자는 <광주광역시교육청 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 주관, 광주학생독립운동 100주년(2029)을 앞두고 학생독립운동 참가 학교 관련 자료 수집차> 서울 양천구 목동(안양천로 1039)에 있는 양정고등학교(박윤근 교장직무대리)를 방문했다. 사전에 광주광역시교육청의 공문이 발송된 터라 기자를 반갑게 맞이해준 분은 김병수(한문 담당) 선생이었다.

 

김병수 선생이 안내한 ‘양정역사관’은 여느 고등학교에서는 볼 수 없는 규모로 ‘양정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정갈하면서도 체계적인 전시물’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1924년 창간호인 <양정> 교지를 지금껏 보관하고 있는 등 올해로 120돌(1905년 설립)을 맞이한 역사와 전통의 학교답게 역사적인 문헌과 자료들이 바로 어제 것인양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는 점에 놀랐다.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은 학교 수업을 병행하면서 묵묵히 ‘양정의 역사를 보존하고 기리는 일’에 매진하고 있는 김병수 선생의 헌신과 노력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 더욱 놀라웠다. 다음은 김병수 선생과의 대담 내용이다. 대담을 통해 양정고의 자료들이 어떻게 보존되고 있나 소개하고 싶어 기자는 김병수 선생을 설득하여 이 기사를 쓰기로 했다. 다른 학교의 본보기가 될 만한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본어 표기로 된 자료들을 한글화하고 서둘러 디지털화했으면 한다.

양정고 역사 기록물을 관리하는 김병수 선생 대담

 

 

- 양정역사관을 간단하게 소개해 달라.

  양정역사관은 글자 그대로 서울에 소재한 양정중•고등학교의 역사관입니다. 양정은 1905년 양정의숙(養正義塾)이란 이름으로 개교하여 올해 120돌을 맞이했는데, 역사가 긴 만큼, 양정의 역사는 단순히 한 학교의 역사를 넘어 우리 나라 역사의 단면을 함께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고종의 계비인 순헌황귀비의 재정적 지원이 뒷받침되어 유지되었고, 영친왕의 유품, 졸업생 손기정의 신분증, 졸업장 등 역사적 유물들도 다수 소장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작은 학교의 전시장일 수도 있지만 나름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역사관입니다.

 

- 양정고등학교 역사관을 담당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양정고에서 재직한 것은 1998년부터이고, 2005년 양정 창학 100돌 기념으로 양정역사관을 개관하였는데, 그때부터이니 20년이 되었습니다. 당시 《사진으로 본 양정 100년》 책을 펴내는 일을 담당하면서 학교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 <양정> 이라는 교지가 1호부터 보존되어 있는데 100년이 넘은 자료의 보존이 가능했던 요인은 어디에 있나?

  1924년 창간호를 펴내고 2025년 87호를 발행하였습니다. 1945년 전후와 1950년 전후에 발간하지 못했고, 전하지 않은 4부(16호, 18호, 19호, 21호)의 교지를 빼면, 모두 학교 역사자료실에 보관 중입니다. 1950년대 이전의 교지는 전쟁통에 많이 소실되었으나 동문들의 기증으로 다시 보관할 수 있었습니다.

 

 

 

- 현직에 있으면서 별도로 양정의 옛 문헌과 역사관을 관리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이 있다면?

고등학교라는 한계 때문에 별도의 역사관 예산이나 지원이 많이 모자랍니다. 그렇다고 담당하는 제가 요구할 수 있는 건 아니니, 학교재단이나 관리자의 관심이 없다면 전혀 진행되지 않는 일입니다. 다행히 학교에서 관심을 보여주어 유지는 하지만, 이 또한 충분치 않습니다.

 

- 양정고 역사관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 3점을 소개한다면?

자료들에 순위를 매길 수는 없는 일이라 어려운 질문입니다만, 굳이 든다면 학교이기 때문에, 졸업앨범, 교지, 학교신문일 것입니다. 역사를 정리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 자료이기에 이렇게 말씀드린 겁니다. 그밖에 위창 오세창의 휘호를 비롯, 30여 명의 당대 으뜸 서예가가 학교에 써준 휘호, 순종황제가 써준 학교명 <양정숙(양정숙)> 현판, 100년 전 금고, 107년 된 교문(校門), 손기정 졸업장(1937), 100년 된 럭비공, 117년 전 졸업장(1908), 120년 전 교과서 등 많이 있습니다. 그 밖에도 학교와 관련은 없지만 조선고적도보 전질(15권)-1915~1935-,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조선어사전(문세영), 1800년대의 한양지도, 대한제국시절의 기념장(記念章) 등도 귀중한 보물입니다.

 

 

 

- 양정고 학생들이 <양정역사관> 이용 현황은?

신입생이 들어오면 사흘 동안 신입생교육을 하고, 그 첫 번째 프로그램이 ‘양정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양정역사관을 견학합니다. 또한 창체수업(창의적 체험활동의 줄인말)으로 양정의 역사 수업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현재는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에 학생들과 교직원을 대상으로 역사관을 1시간 동안 개방하고 있습니다. 방문하는 학생은 매주 10~15명 정도입니다. 또한 외부인의 방문 시 요청이 있으면 언제든 개방합니다.

 

- 양정역사관을 관리하면서 어려운 점은?

단위 학교의 역사관을 운영하다 보니 많은 한계에 부딪힙니다. 재정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인적 자원이 전혀 없어서, 많은 자료가 그대로 묻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앞에서 말했던 교지(校誌)가 87호까지 발행되었는데, 그중 16권은 일본어 표기(광복이전 발행)의 번역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일부 진행 중이긴 하지만 많은 자료와 사진이 아직 디지털화되지 않았습니다. 자료는 시간적 한계가 있는 만큼 급선무인데 여러 난관이 있습니다. 정년이 7년 남았는데 그때까지는 디지털화시키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리고 욕심을 부리자면 양정의 소중한 소장품의 도록도 만들고 싶습니다.

 

김병수 선생과의 대담은 길게 이어졌다. 여러 어려움이 존재하지만, 뜨거운 열정으로 20여년 넘게 '양정의 산 역사의 기록'을 묵묵히 관리하고 있는 한 교사의 노력을 기자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러한 열정의 교사들이  곳곳에 있다는 사실을 이번 서울지역 학교 탐방(자료 협조 차 들른)차 알게 되었다. 그 숨은 노고에 손뼉을 쳐주고 싶다. 

 

 

이윤옥 기자 59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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