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남자 옷을 입은 채 금강산에 오른 열네 살 소녀 김금원. 그의 눈으로 본 1830년 봄 금강산을 구경해 본다. 자유 왕래할 그날을 그리면서.
드디어 금강산으로 향한다. 단발령에 올라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바라본다. 옥이 서 있고 흰 눈이 쌓인 것 같다. 중국 서산에 쌓인 눈도 필경 이보다 못하리라. 서산은 연경(燕京)의 가장 뛰어난 명산으로 만수산 뒤로 첩첩한 산과 층층의 절벽을 보면 마치 선경과 같다 한다. 눈 내린 뒤의 봉우리는 더욱 기이해서 연경의 8대 경치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금강산은 층층이 겹친 산과 첩첩한 봉우리가 구름까지 솟아올라 있다. 사철 내내 눈빛을 띠고 있으니, 봉우리마다 빼어나다. 산길에 봄이 깊었다. 초록 이파리는 살찌고 붉은 꽃은 시든다. 두견새가 소리마다 ‘불여귀(不如歸: 돌아감만 못 하다, 돌아가라)’라 지저귀며 여행객의 쓸쓸한 마음을 돋운다.
장안사로 향한다. 금모래, 잔잔한 풀이 몇 리에 걸쳐 깔려 있고 키 큰 소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삼사 층의 웅장한 법당이 온 골짜기를 누르듯 서 있다. 예스러운 분위기의 연로한 주지승이 법당을 내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지팡이를 거꾸로 들고 있다. 노승이 소녀에게 깍듯이 절하며 안내한다. 같이 법당에 오른다. 점심상이 나온다. 산나물이 풍성하다. 정결하고 담백하여 배불리 먹을만하다.
신선루를 둘러보고 옥경대를 찾아 발길을 옮긴다. 들쑥날쑥 어지러운 돌을 묶어놓은 듯한 두 절벽이 길을 막아선다. 돌아서서 남쪽으로 이동한다. 좁은 골짜기가 나타난다. 그 남쪽으로 석가봉 한 자락이 둘러싸고 있다. 그 앞에 기이한 절벽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다. 높이는 수십 길이요 너비는 오십 자는 되어 보인다. 앞면은 마치 유리를 깔고 백옥을 깎은 듯하다. 그 광채가 얼굴에 비친다. 이곳이 바로 만경대(萬景臺)다. 업경대(業鏡臺)라고도 한다. 명경대 앞에 못이 있다. 물빛이 짙은 누른색이라서 황천강이라 한다. 못의 남쪽에 바위가 있는데 옥경대라 부른다. 큰 돌에 그 이름을 새기고 붉은빛으로 매워 놓았다.
옥경대에 올라앉아 풍광을 감상한다. 옥경대와 연못 사이에 작은 돌 축대가 숲 그늘에 가려져 있다. 거기로 내려간다. 돌로 된 성문 하나가 막아선다. 무척 좁다. 겨우 한두 사람의 발을 들여놓을 수 있을 따름이다. 지옥문이라 한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신라가 망할 때 태자가 피신해 들어온 곳이라 한다. 그때 명경대 뒤에 성과 궁실을 쌓고 이 문으로 출입했다고 전한다. 태자는 베옷을 입고 풀을 먹으면서 생을 마쳤다고. 그 성은 비록 물에 잠겨 사라졌지만, 남은 터의 돌들은 아직도 그대로다.
표훈사로 향한다. 오른쪽에 중향봉을 끼고 왼쪽엔 지장봉이 솟아 있다. 멀리 뻗은 길은 그윽하고 깊다. 돌길은 몹시 험하다. 외나무다리를 지나 절의 문루에 이른다. 능파루라 한다. 법당과 암자들을 둘러보고 백운대로 올라간다. 용기를 내어 팔뚝만 한 굵은 쇠줄을 잡고 올라간다. 하늘로 오르는 듯 떨리고 무섭다. 저 멀리 깊은 골짜기가 내려다보인다. 절이 구름과 안개 사이로 희미하게 보인다. 마치 그림 속 풍경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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