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지난 11월 18부터 19일까지 서울 자문밖아트레지던시 팔각정에서 열린 이지현 안무가의 〈CREW〉는 몸과 공간, 빛과 텍스트가 서로를 넘나들며 하나의 흐름으로 응축된 공연이었다.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흰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만들어낸 장면들은 단순한 군무가 아니라 서로의 숨과 무게가 맞물리며 형성한 움직임의 연합이었다. 움직임과 움직임이 지탱하고 스치는 경계에서 하나의 흐름이 생성되는 순간들—그 순간들이 〈CREW〉의 핵심을 이루고 있었다.
〈CREW〉 : 크루는 ‘같은 목적을 위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흔히 무대 퍼포먼스에서 함께 하는 모든 이들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그래서인가?
무용수들은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축을 확인하며 미세한 균형을 교환했고, 다시 모이고 흩어지는 반복 속에서 관계가 다시 쓰이는 듯한 풍경이 펼쳐졌다. 이는 단순한 안무 설계의 결과라기보다, 인간이 타인의 무게와 시선을 어떻게 감지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풀어낸 ‘관계의 풍경’이었다.
이 흐름의 안쪽에는 언제나 조용히 스며드는 한 사람이 있었다. 작고 단단한 체구의 이지현 안무가는 전면에서 과시적으로 움직임을 주도하는 사람이 아니라, 관계의 틈 사이를 누구보다 진중하게 바라보는 내면적 예술가였다. 무용수들이 연결될 때의 작은 떨림,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당기지 않으며 유지하는 거리감, 부드럽게 균형을 바꾸는 순간들—그 미세한 감각을 가장 먼저 알아채고 조용히 정렬시키는 중심이 바로 그였다. 이지현 안무가는 무대 위에서 크게 흔들리는 몸으로 시선을 끌지 않는다. 그러나 흐름의 압력과 방향을 은근히 바꾸는 방식으로 전체를 이끄는 조용한 기압처럼 작동했으며, 그의 시선에는 타인과 타인이 만나 이루는 관계의 결을 오래 바라봐 온 사람 특유의 깊은 심중이 담겨 있었다.
공연 중반부에는 무대 한편에서 대금 연주가 조용히 스며들며 분위기를 한 번 더 전환시키는 순간이 있었다. 대금의 맑고도 서늘한 음색이 팔각정에 번지자, 움직임과 공간 사이에 또 다른 결이 얹히는 듯했으며, 소리는 공연 전체의 정서와 자연스럽게 어울려 흐름의 깊이를 한 단계 낮게 울렸다.
미디어 아트는 이러한 흐름을 보조하는 장치가 아니라 몸과 공간을 잇는 또 하나의 언어였다. 흰 의상 위를 흐르는 문구 ... “인간은 자유를 원하지만, 자유를 감당하지 못한다.”, “침묵은 때로 가장 강한 말이다.” ...는 몸을 따라 흘러내리며 단어 자체가 움직임에 포함되는 효과를 만들었다. 빛은 무용수들의 의상뿐 아니라 팔각정의 기둥과 천장, 바닥을 타고 번지며 공간 전체를 하나의 스크린으로 변환했고, 이 구조 속에서 관객은 단순히 공연을 ‘본 것’이 아니라, 움직임과 빛의 연합 속에 잠시 포함된 듯한 감각을 경험했다.
추운 날씨에도 난로를 배치해 관객을 배려한 점은 공연의 안정감을 높였지만, 작품의 핵심이 시각적 확장성과 관계적 흐름에 있었음을 살피면 아쉬움은 선명했다. 일렬로 배치된 관객석은 텍스트가 건물 상부를 타고 흐르는 장면, 문장이 무용수의 의상에 얹혀 흔들리는 순간, 빛이 팔각정의 구조를 따라 확장되는 장면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 팔각정의 구조적 특성을 고려한다면, 관객석이 반원형 또는 부채꼴로 배치되었다면 〈CREW〉가 추구한 ‘경계 해체’라는 개념은 더 완전하게 관객의 시선 속에 담겼을 것이다.
그럼에도 공연이 끝난 뒤 오래 남는 것은 빛의 잔영이나 구조적 움직임보다도 ‘관계의 파동’이었다. 움직임의 연합이 만들어낸 긴 호흡, 대금의 숨결이 스쳐 지나간 순간, 서로를 지탱하며 균형을 맞추던 작은 진동들 ... 이 모든 감각은 시간이 지나도 마음속 어딘가에서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 파동의 중심에는, 작고 조용하지만, 관계의 균열과 연결을 누구보다 깊이 바라보는 이지현 안무가가 있었다. 그녀의 감각은 움직임을 잇고 균형을 붙들며 작품 전체에 긴 여운을 부여했고, 〈CREW〉는 그 조용한 중력이 남긴 잔향으로 오래 기억되는 공연이었다.
그리고 이 감각은, 앞으로 그녀가 어떤 움직임과 사유로 다음 장면을 열어갈지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