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제주도

  • 등록 2026.01.12 11:2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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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품은 섬 제주도》 글 허영선, 그림 이승북, 파란자전거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바람 부는 방향으로 휘어진 큰 나무 아래

등 굽은 저 할머니 자박자박 걸어가는구나.

거친 손등처럼 탱탱 오이 박고 늙어 가는 나무,

온몸으로, 온 뿌리로 하늘 향해 서 있는 팽나무라네.

제주 말로 ‘폭낭’이라지.

짭조름한 소금 바람 먹고도 단단하기만 한 제주섬 같은 나무,

사각사각 바람의 말을 가장 많이 품고 있는 바람의 나무 말이지.

 

바람을 품은 섬, 제주도.

책 제목 그대로, 제주도에는 바람이 많이 분다. 제주도에 살고있는 시인 허영선이 쓴 이 책, 《바람을 품은 섬 제주도》는 ‘아름다운 우리 땅 우리 문화’ 연작으로 나온 그림책이다. 제주도의 역사와 자연, 문화를 시처럼 아름답게 들려준다.

 

 

제주도는 고려 중엽까지 독립된 국가였다. 그때의 이름은 ‘탐라국’이었고, ‘섬나라’라는 뜻을 가진 탐모라, 탁라로 불리기도 했다. ‘덕판배(제주 전통의 목판배)’를 타고 바다를 누비던 탐라국 사람들은 마침내 1105년 고려왕조의 일부가 되었다. ‘바다를 건너는 고을’이라는 뜻을 담은 ‘제주’라는 지명도 그때쯤 생겨났다.

 

1270년 고려 원종 시기, 삼별초군이 제주로 들이닥쳤다. 뒤이어 이들을 토벌할 몽고군도 몰려왔다. 삼별초를 토벌한 몽고군은 무려 1백 년 동안이나 섬을 지배했다. 삼별초가 주둔하던 애월읍 항파두리성은 말없이 남아 당시의 치열한 전황을 보여준다.

 

제주도 사람들은 수탈과 억압에 시달렸다. 조선 인조 때는 고단한 생활을 이기지 못해 섬에서 탈출하는 백성이 늘어나자 아예 육지로 나오는 것을 막는 출륙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이 금지령으로 제주 백성은 2백 년 동안 육지로 거주지를 옮길 수 없었다.

 

제주도에 온 이들 가운데는 중앙 정계에서 쫓겨난 인물들이 많았다. 조선 왕조 5백 년 동안 유배해 왔던 이들이 거의 200명에 이른다. 그들 가운데는 추사 김정희나, 면암 최익현 같은 명망 있는 선비도 있었다. 조선시대 제주로 파견된 목사들은 286명, 그들은 대략 1년 10개월 정도씩 제주 목관아에서 일을 했다.

 

활을 쏘는 것은 훌륭한 덕을 보는 것, 이름하여 ‘관덕’.

제주도의 중심 터 ‘관덕정’, 우리 조상님들 관청이란다.

조선시대 병사들은 여기서 “명중이다!” 활을 당겼다지.

지체 높은 관리도 백성도 만나던 관덕정 마당.

 

제주는 여성들의 의식이 깨어있는 섬이기도 했다. 정조 19년, 대흉년이 들자, 제주에서 객주를 하던 김만덕이 전 재산을 내놓아 굶주린 백성들을 살려냈다. 1930년대 제주 해녀들은 일제의 부당한 착취에 맞서 권리를 찾기 위한 항일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제주의 매력이 바로, 자연이다. 제주의 자연은 태생적으로 신비롭다.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화산섬이라 그만큼 바위가 많다. 외돌개 해안, 대포리 해안가에는 수직 바위들이 우뚝 서 있다. 바다와 바람의 합작품인 주상절리는 제주의 으뜸가는 절경이다. 용머리와 수월봉 해안의 기묘한 바위들은 저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제주는 지천에 돌멩이가 뒹구는 돌멩이 나라입니다. 돌 소금밭도 제주의 독특한 생활 문화였지요. 돌하르방, 방사탑, 미륵, 돌절구, 돌화로, 마을포제단 등 돌 없는 제주의 삶과 민속은 상상할 수 없지요. 숭숭 숨 쉬는 밭돌담 구멍 사이사이로 바람이 흐르고, 빛이 지나가며, 제주의 농사를 거들었습니다.

 

밭돌담 구멍 사이로 흐르는 바람, 그리고 빛. 이것이야말로 제주를 지탱하는 힘이다. 제주에서는 돌담을 빽빽하게 쌓지 않는다. 바람과 빛이 통하게 얼기설기 쌓는다. 이렇듯 너그러운 ‘통(通)’함이 수많은 시련에도 제주섬이 지켜질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닐까.

 

제주에 부는 바람은 생명을 일깨운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라는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섬을 보금자리로 하는 무수한 생명체가 아름답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제주의 아름다움은, 결국은 그 숱한 생명에서 오는 까닭이다. 이 책이 제주의 아름다움을 되새겨보는 마중물이 되면 좋겠다.

 

우지원 기자 basicfo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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