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불통, 실록(實錄)이 해답이다

2013.05.05 23:49:33

[실록으로 배우는 소통 1]

[얼레빗=김기섭 기자]  지난 4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안철수 의원이 기업인으로 활동할 때 유독 소통을 강조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전문능력이 100%인 사람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제로면 그의 능력도 제로라는 것입니다. 조직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이 소통이란 점을 강조한 것이지요. 국회의원 배지를 단 현재 그가 이전투구의 한국정치판에서 어떻게 소통의 정치를 펼칠지 많은 이들이 기대 반 우려 반의 시선을 보내는 중입니다. 새 정치를 위해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녹록치 않은 정치현실을 감안하면 장애 또한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의 86%, 즉 열 명 중 여덟은 소통 문제로 고통 받는다고 합니다. 특히 비즈니스 세계는 더 심한 편으로 이 때문에 이직하거나 이직을 꿈꾸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렇게 된 원인은 이루 셀 수없이 많을 테지만,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의 라틴어 어원인 나누고 공유한다는 본래 의미를 살리지 못하는 이유가 가장 크다고 봅니다. 먼저 나누기 위해서는 자기 것을 내놓거나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 반대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사사로운 욕심을 앞세워 상대가 먼저 그렇게 하도록 강요하기에 바쁩니다. 달리 생각하면 원래 인간이란 종이 자기중심적 사고에 익숙해지도록 진화됐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불통의 원인은 소통의 경험 부족도 한 몫 합니다.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배울 기회가 없었고, 그러한 경험을 공유하지도 못했으니까요. 예를 들어 토론만 해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는 토론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곳곳에서 토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집니다만 정작 토론은 실종되고 남을 헐뜯거나 비방을 일삼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토론의 참다운 의미와 정해진 규칙을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탓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토론에 대한 전통이 오래 된 민족입니다. 가까운 예로 세계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조실록이 좋은 경우입니다. 태조에서 철종까지 25472년간 총1,894권에 달하는 실록은 한마디로 가치토론과 정책토론의 보고입니다. 임금과 신하, 신하와 신하 사이에 벌인 토론 기록이 무궁무진하게 실려 있습니다. 토론을 즐긴 군주[樂於討論]로 불린 세종실록의 분량은 다른 왕들의 실록보다 몇 배 많은데, 재위기간이 긴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신하들과의 토론과정을 소상하고 정밀하게 적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 한 줄로 세워 전시한 조선왕조실록
 
실록은 또한 중앙뿐 아니라 궁중과 지방, 일반 백성들의 일상사까지 담고 있는데, 이러한 사료적 가치는 중국과 일본, 대만의 실록이 따를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들 세 나라의 실록은 중앙의 정치만을 다루고 내용도 매우 소략한 것이 특징입니다. 실록의 가치는 실록정신에서 더 빛납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역사란 후대인들이 평가하도록 해야 하며, 그렇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 기록해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역사기록에서 정치적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만이 기록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준엄한 역사인식은 성군으로 칭송받는 세종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세종은 부왕인 태종의 실록을 두 번씩이나 보기를 원했습니다만 결국 실패하고 맙니다. 세종 13320일 기사는 이를 잘 보여줍니다. 세종은 신하들에게 전대(前代)의 제왕들이 선왕(先王)의 실록을 친히 보지 않은 자가 없는 것 같은데, 나도 한번 <태종실록>을 보려고 하는데 경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우의정 맹사성이 완곡하면서도 단호하게 반대의사를 표시합니다. “전하께서 보신다면 후세의 임금이 반드시 이를 본받아 고칠 것이며 사관 또한 사실을 반드시 다 기록하지 않을 것입니다. 후세에 그 진실함을 전하기 위해 절대 실록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머쓱해진 세종은 그렇겠다.“며 한 발 물러납니다.  

이때부터 실록을 보지 못하는 관례는 항식이 되었고, 세종 이후 전통으로 자리 잡습니. 간혹 왕들이 실록을 보려고 시도했지만 이 전통에 막혀 포기합니다. 다만 실록을 꼭 보겠다고 우긴 몇몇의 임금조차 자신이 보고픈 실록 부분을 신하들에게 베껴오도록 시켜서 보는데 만족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실록을 보지 못하도록 한 조치는 후세 사람들을 위한 정치적 포석입니다. 즉 전대의 시행착오를 푯대삼아 번영과 발전의 올바른 정치를 하라는 언명인 것입니다. 예컨대 실록에는 지진에 대한 기록이 빈번히 나옵니다. 이 기록은 오늘날 원자력 발전소를 세우는데 더없는 참고자료가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실록은 후세인들과 소통하려는 선조들의 지혜 창고입니다.  

진보정의당 노회찬 전 의원은 어느 책에서 현대에서도 실록을 써야 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 집무실에서 일어난 일들을 모두 녹취한다면서 우리도 오래된 이 전통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대통령은 개인 신분이 아니고 공적 신분이며, 한나라의 운명을 책임진 자리입니다. 당대는 물론 미래 세대와의 소통을 위해 조선시대 좌우측의 사관들이 임금의 행동과 말을 적은 것처럼 현재도 그렇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일은 당대를 사는 우리들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실록으로 배우는 소통>은 실록 속의 소통 경험과 지혜를 찾아내어 공유하고자 하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박근혜 정부부터 실록정신과 전통을 살려 실록을 쓰는 기회가 마련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 김기섭(세종연구가/한국형리더십교육센터 대표)

 세종대왕의 능(영릉)이 있는 여주에서 태어나, 경희대 대학원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고 세종의 의사결정 연구로 학위를 받았습니다. 오래 전부터 일선 학교와 교육청에서 교육토론과 고전읽기지도법을 강의하고, 조선왕조실록을 읽으며 한국적 회의와 소통문화, 한국형 토론과 리더십을 개발하고 보급하는데 온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김기섭 기자 youlight3@egre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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