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민생투어, 행행(行幸)

2013.05.21 17:06:22

[실록으로 배우는 소통 3]

 [그린경제=김기섭 기자]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평소에는 찾지 않던 시장이나 생산현장을 들를 때는 대개 선거철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 표가 중요한 이들에게 민생투어라는 고상한 이름의 이 정기행사는 빠트릴 수 없는 일입니다. 국민의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그들의 충의를 마다할 일은 아닙니다만, 선거 때만 반짝 그러다가 그 뒤로는 나 몰라라 한다는 게 문제입니다.

조선시대에도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민생 투어가 있었습니다. 이름하여 행행(行幸)이 그것입니다. 임금이 대궐 밖으로 행차하는 거동 일체를 일컫는 이 말은 왕의 궁 밖 나들이 정도쯤 됩니다. 행행은 화려하고 장대한 의식으로 치러지기도 하지만, 호위군관 몇 명을 데리고 조심스럽게 행차하는 소박한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대궐 밖 행차, 백성들의 억울한 사정 해소

   
▲ 정조대왕의 능행차 장면(출처-수원시청 수원화성문화제 홈페이지)

전자의 행행은 왕과 왕비의 무덤에 가는 능행(陵幸)과 후궁이나 세자의 무덤에 가는 원행(園行), 사냥을 겸한 군대 훈련인 강무(講武)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조선 후기 정조의 경우 재위 24년간 66회의 행행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참배하는 거동이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데, 정조는 이 나들이를 통해 직접 백성을 만나고, 그들의 억울하고 어려운 사정을 적극적으로 듣고 이를 제도화합니다.

그 제도가 상언과 격쟁입니다. 상언은 일반 백성들이 왕에게 직접 억울함을 글로 호소하는 것이고, 격쟁은 임금의 행차 중에 징이나 괭과리를 쳐서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하는 것입니다. 정조는 행행 중 3,355건의 상언과 격쟁을 듣고 처리했다고 전해집니다.

행행은 화려한 능행차와는 달리 몇몇 신하만을 대동하는 작은 규모의 나들이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행행은 세종실록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세종 시대는 거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가뭄과 한발, 홍수를 겪습니다. 그러다보니 백성은 백성대로 굶주리고, 임금은 임금대로 자신의 부덕을 탓하는 내용이 적지 않습니다. 그럴 때마다 세종은 신하들에게 거리낌없이 말하라며 직언을 요청하는 한편, 자신이 직접 민생 투어에 나서기도 합니다.

세종실록 7년 7월 1일의 기사는 세종의 행행 장면을 잘 보여줍니다. 이 날도 입번(入番)한 내금위 사금(內禁衛司禁)을 데리고 가뭄으로 고통 받는 민생 현장을 찾아 서문 밖으로 나갑니다. “가뭄이 너무 심하다. 소나기가 잠시 내렸지만 안개가 끼고 흙비가 왔을 뿐이다. 기후가 이렇듯 순조롭지 못하니 장차 벼농사 형편이 걱정되는구나.” 흙비는 지금의 황사입니다.

서문으로 나간 왕은 영서역, 홍제역(弘濟院) 들녘을 돌아본 뒤 말문이 막힙니다. “올해 벼농사는 모두들 꽤 잘 되었다고 들었는데, 어찌된 노릇인가? 오늘 보니 눈물이 날 지경이다. 원래 이 땅은 비옥한 편인가, 메마른 편인가?”

왕은 침울한 표정으로 대언에게 묻습니다. 지금의 비서실장 격인 지신사 곽존중이 대답합니다. “원래 이 땅은 메마른데다가 가물어서, 벼농사가 잘못 되었습니다.” 그러나 곽존중의 말은 사실과 다릅니다. 원래 영서 땅은 비옥한 곳인데, 침통한 임금의 얼굴을 본 그가 거짓으로 꾸며 말한 것입니다.

세종은 햇빛을 가리는 산(繖)과 부채[扇]을 쓰지 않고, 농사 망친 곳을 보면 반드시 말을 멈추고 농부에게 그 까닭을 묻습니다. 모르긴 해도 농부들의 말은 왕을 더 참담하게 만들었을 게 뻔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세종은 점심을 들지 않고 궁으로 돌아옵니다.

갑의 횡포 계속되는 한 국민행복시대는 이상에 불과

행행을 풀이하면 백성들을 만나는 행복한 나들이입니다. 그러나 이렇듯 실제와는 다른 경우가 태반입니다. 오히려 힘들게 살아가는 백성들을 만나는 시간은 괴롭고 가슴 아픈 일투성이입니다. 그렇지만 백성의 입장에서는 임금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만나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자 소통의 장이었을 것입니다.

흔히 기업에선 현장제일주의를 외칩니다. ‘현장에 가면 답이 있다’는 것인데, 많은 함의를 담고 있는 말입니다. 직접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서는 어떤 일도 완벽하게 성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비단 기업 경영에 국한된 일이 아닙니다. 정치도 사회적인 갈등을 푸는 해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종은 아랫사람의 뜻이 위로 전달되는 하정상달(下情上達)을 정치하는 도리로 여겼습니다. 낮은 곳, 어렵게 사는 백성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이들의 아픔을 헤아리는 일은 지식의 영역이 아니라 지혜의 영역입니다. 최근 자영업자의 폐업이 늘고 있고 힘이 있는 갑의 횡포에 약자인 을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을의 불행이 계속되는 한 국민행복은 이상에 불과할 것입니다. 세종과 정조의 행행 정신에서 그 해법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 김기섭(세종연구가/한국형리더십교육센터 대표)

세종대왕의 능(영릉)이 있는 여주에서 태어나, 경희대 대학원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고 세종의 의사결정 연구로 학위를 받았습니다. 오래 전부터 일선 학교와 교육청에서 교육토론과 고전읽기지도법을 강의하고, 조선왕조실록을 읽으며 한국적 회의와 소통문화, 한국형 토론과 리더십을 개발하고 보급하는데 온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김기섭 기자 youlight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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