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식해도 탈없는 문화밥상

2013.08.22 06:37:01

문화밥상! 이제 차려야 할 때다.

[그린경제=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언젠가부터 먹거리문화라는 용어가 자주 거론되더니 이제는 전국 어디를 지나든 자동차 네비게이션에서 근처의 맛집들을 알려준다. 처음에는 몇 집 안되었는데 요즘은 여러 맛집들을 알려주기에 어디로 가야 할 지 방황하게 된다. 거기에 스마트폰의 다양한 서비스도 한 몫을 한다.
 
 중에도 먹을 복이 따로 있다는데 요즘은 진수성찬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저 고기는 혹시나 나쁜 고기 ? / 저 야채에는 혹시나 농약이 ? / 저 생선은 혹시나 ?
혹시나 병이 생기면 ? / 혹시나 ? / 역시나 ?
(그러다가 주인이 이거는 유기농, 저거는 자연산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손이 그쪽으로만 가는 요지경 세상이 되고 말았다.)
 
 이제는 좋은 것을 적은 듯이 먹는 것이 현명하다고들 한다. 어짜피 먹어야 사는 것이 인간인데 농약이나 방부제등 환경 호르몬의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적절히 적게 먹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렇게 먹을 것들이 점점 제한되고 있으니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에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해소 된다는 어느 심리학자의 주장은 이제 점점 구시대의 발상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는가.

아무리 과식을 해도 체하지 않고, 과식을 할수록 건강해지고, 과식을 할수록 미용에도 좋고. 마음까지 예뻐지는 것이 없을까? 성형수술을 하지 않아도 얼굴이 온화 해지고 마음도 풍요로워 지는 먹거리가 없을까?
 
있다.
 
 문화 Culturee
이제는 먹거리문화가 아니라 문화먹거리를 찾아 나설 때라는 생각이 든다.  

이태리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이런 고민이 있었던 것 같다. 특히 피렌체에서는 귀족 저택의 거실에서 음식을 대접하면서, 아울러 시문학과 철학 그리고 예술을 논하고 작은 공연도 하는 전통이 있어 왔다. 그리고 유럽 옛 궁정의 문화란 것이 잘 먹고 잘 살던 사람들이 궁정에 모여 사교 모임을 하는 것이었는데 그들에게는 먹는 것에 문제가 없었으니 점차적으로 그들의 관심사는 먹는 음식이 아니라 정신적인 먹거리인 문화 프로그램을 선호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태리의 오페라도 이런 식으로 거실(Salone 살롱)에서 생겨나 극장으로 나가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문학, 예술, 철학, 건축,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관심사들이 르네상스라는 사조로 이어져 우리는 아직까지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지금도 이태리에서 조그만 파티에 초대되어 가보면 삼촌이 시를 낭송하고 조카가 피아노를 치고 각자 한가지씩 뭔가를 하는 순서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마지막 순서가 술을 약간 마시면서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고, 그러다 다시 진지하고 열띤 논쟁도 하고….. (일단 노래방 기계 가져다 놓고 시종일관 돌아가면서 마이크로 고성방가해야 스트레스가 풀릴 것 같은 우리의 디지털 분위기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육체와 정신이 하나된 존재를 인간이라 하는데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육체를 위한 것이라면 정신을 위한 먹거리도 이제 풍부하게 섭취해야 될 것이다.
 
 결혼이나 피로연에서 좋은 음식들을 먹고 나서 하는 말이 음식이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 알 수 없었다는 표현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와주어서 혼잡했지만 풍요로운 행사였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리라. 여기에 문화밥상의 개념으로 손님들에게 정신적인 문화먹거리를 준비하는 것도 좋은 답례가 아닐까. 내가 아는 지인은 아들의 결혼식장에 아버지와 아들의 그림을 전시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멋진 생각이 아닌가.
 
요즘은 바빠져서 뜸하지만 나도 성남의 음악작업실에서 가끔씩 조촐한 문화밥상(Culture Table)을 차려 본 적이 있다. 간단한 먹거리와 함께 음악가의 연주를 듣고, 미술가는 작품을 소개하고, 시인은 낭송을 그리고 참여한 분들이 각자의 분야를 소개하고 토론도 하는 등 그때마다 차림이 다양하다.
 
내가 펼치고 싶은 문화밥상은 탈장르, 탈종교, 탈문화(다문화)의 향연이다. 내가 이런 얘기를 했더니 어떤 어르신은 너무 가족에 얽매이지 않고 좀더 넓은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자는 취지에서 탈가정도 넣자고 하신다. 참으로 옳으신 말씀이다. 내 자식만은 최고가 되고 내 가족이 제일 잘 살아야 한다는 식의 가족관 보다는, 이웃과 사회가 더불어 잘 사는 속에서 나를 바로 세우는 데에 초점을 맞춘 가족관도 필요하다는 참으로 의미 깊은 말씀이 아닌가.

진수성찬은 아니지만 배 터지게 먹어도 탈이 안나니 문화밥상이란 것은 참으로 좋은 먹거리이다. 우리의 비빔밥은 맛 좋고 보기도 좋은 먹거리인데 세 그릇 이상의 과식은 할 수 없겠지만 문화먹거리는 보고 듣고 마음까지 감동을 시켜 성형수술 없이 사람의 인상까지 바꿀 수 있으니 그 효과가 보약 중의 보약이며 CD나 DVD 또는 책을 구입하여 집에서 다시 보고 들으면 무제한 리필도 가능하다.
 
우리는 문화 속에서 아름다운 미지의 세상으로 상상의 여행을 떠날 수 있다. 거기서 다양한 문화를 많이 체험하고 챙겨 가서 주위 사람들에게 그 기운을 듬뿍 나누어 준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더 음악처럼 감미롭고 부드러워 지겠는가.
 
 이태리어로 농업을 Agricultura 라고 한다. 땅(Agri)에서 가꾸고 재배한다(Cultura)는 뜻이다. 문화(Culture)라는 단어는 바로 가꾸고 재배한다는 어원의 용어다. 농사도 우리의 땀과 사랑으로 풍요로운 수확을 거둘 수 있듯이, 문화도 생활 속에서 정성으로 가꾸어야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지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농업에서는 유기농과 자연산이 최고인데 문화에서는 어쩔 것인가?
 
문화!
글로벌 다문화시대에 타문화를 배척하자는 것은 아니며 또 그래서도 안될 것이다.
문화! 참으로 고민해볼 문제다.
 
문화밥상! 이제 차려야 할 때가 아닐까?
 
 
   
▲ 주세페 김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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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동규 (예명_ 주세페 김)
다재다능한 엔터테이너(팝페라테너, 예술감독, 작곡가, 편곡가, 지휘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아내 김구미(소프라노)와 함께 ‘듀오아임’이라는 예명으로 팝페라-크로스오버 공연활동을 하고 있다.
www.duoaim.com
 
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98a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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