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비평의 원칙

2013.09.24 21:58:27

할 수 있다면, 음악으로도 좋은 일을 하라


[그린경제=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이탈리아에서 살았던 10년간 나의 정신과 삶에 큰 영향을 주셨던 스승이 몇 분 계시다. 내가 이렇게 많은 스승을 동시에 모실 수 있었던 비결은 특별하지 않고 그저 솔직했을 뿐이다.
 
나는 새로운 선생님들을 만날 때마다 ‘저는 처음에는 심리학을 전공한 후에 대기업에 입사하였으나 음악이 좋아서 이렇게 뒤늦게 배우고 있으며 전에는 어떤 선생님에게 배웠고 지금은 누구에게 배우고 있으며 선생님께도 좋은 것들을 배우고 싶습니다…….’라고 정중하고 세세하게 말씀드리면 다들 매우 좋아하셨다. 아마도 나의 솔직함이 믿음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운명이어서 그랬던 건지 선생님들을 만나고 함께 했던 이야기도 지금 생각하면 마치 소설 같다.
 
내가 살던 도시 띠볼리(Tivoli) 두오모 성당에서 만난 팔순 고령의 클레오토 실바니(Cleoto Silvani) 선생님은 참으로 위대한 스승이셨다. 성 베드로 성당의 오르가니스트와 레스피기를 비롯한 당대의 기라성 같은 음악가들을 스승으로 모셨었다고 자부심이 대단하셨던 분이신데 실제로는 아주 다정하고 소박하신 분이셨다. ‘예술의 아들(Figlio dell’arte)’이라는 별명도 붙여질 정도로 유망했던 30대 초반에 실바니 선생님께서는 심장병으로 인하여 피아노 연주가의 길을 포기하고 비평가의 길을 택하셨다고 한다.

 

   
▲ 마에스트로 클레오토 실바니 (피아니스트, 비평가)
 
레슨을 받으러 찾아뵈면 건강을 이유로 딱 30분만 레슨을 해주셨는데 가끔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실 때면 정말로 손가락 하나하나에 혼을 넣어 건반을 터치하고 그 감수성이 듣는 이의 마음을 녹여버렸다. 피아노 연주하시는 것을 보고 있으면 저러시다가 심장마비가 정말로 오겠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선생님과는 연주보다는 음악에 대한 많은 대화를 하였고 무엇보다도 음악을 분석하는 법을 많이 배웠다. 나와 아내가 처음으로 듀오콘서트를 가졌을 때에 선생님께서는 문화잡지에 비평의 글을 써 주셨는데 우리 부부는 어떤 비평이 나올까 좀 부담이 되었다. 나중에 아주 호평의 글을 보고 오히려 부끄럽기까지 했다.
 
찾아뵙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니 비평을 쓰실 때에 항상 어머님이 마지막으로 남기신 ‘Se puoi, fa del bene anche con la musica. (할 수 있으면, 음악으로도 좋은 일을 하라.)’는 유언을 떠올린다고 하셨다.
 
그리고 어머니의 유언을 음악비평에도 실천하시려고 정했다는 아름다운 비평의 원칙이 있었다.
첫째, 절대로 연주자가 잘 못한 점을 쓰지 않으며,
둘째, 잘 연주한 부분을 오히려 부각시켜서 격려해주고,
셋째, 앞으로 보충할 것을 아주 조심스럽게 조언해 주며,
마지막으로, 기회가 되어 연주자를 직접 만나면 비공식적으로 그날의 연주 상황을 있는 그대로 장단점을 세세히 분석하여 준다.
 
그래서 실바니 선생님께서 일생을 써오신 비평의 글들에는 잘 못한 연주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며 맑은 미소를 띠셨다. 아름다운 비평을 하셨던 것이다.

   
▲ 주세페 김동규, 김구미 부부와 함께 (라이언스클럽에서)

로마의 성 십자가성당 (S.Croce in Gerusalemme)에서 내가 한국 유학생들로 구성된 한인성가대와 함께 대관식 미사를 지휘했을 때도 팔순을 넘기신 몸으로 와 보시고 좋은 글로써 격려를 해 주셨었다. 2008년 4월 내가 지휘하던 산타마리아 성가단과 로마에서 성지순례와 연주의 기회가 있어 아내와 함께 찾아가니 노부부께서 몹시 기뻐하셨었다.
 
집을 나설 때 구순의 선생님께서는 이제 팔순을 넘기신 나의 또 다른 스승 까딸디(Cataldi-Tassoni) 선생님의 안부를 궁금해하시며 “그 젊은 친구에게 대신 안부 전해주게나” 하시던 천진한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얼마 후 사모님과 선생님께서 90세를 넘기시고 타계하셨다는 슬픈 메일을 받았다.
 
내 주위에 이렇게 음악으로 좋은 일들을 하신 스승들이 계셨기에 나는 아내와 함께 ‘아임’ (A.I.M. : Amore In Musica, 음악 속의 사랑)’라는 예명을 정하여 “부부가 음악 속에서 사랑하고, 음악을 통하여 사랑을 베풀자”는 취지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아직 미숙하여 상황판단도 서툴고 부족함도 많지만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좋은 기억을 남기고 갈 수 있다면 좋겠다. 하지만 나 자신과 나를 기억해 줄 사람들도 결국은 모두 사라져갈 것이니, 우리는 인간들의 기억이 아닌 우주와 자연의 창조주의 기억에 좋게 남을 인생을 살다가 사라지는 것이 정답이 아닐까.
 
2013년 한가위, 올해도 우리 조상님들 옆자리에 이태리 스승님들도 함께 모셔 기리며 감사의 절을 올린다.
 
   
▲ 주세페 김동규

** 주세페 김동규

다재다능한 엔터테이너(팝페라테너, 예술감독, 작곡가, 편곡가, 지휘자, 음악칼럼니스트)이며, 아내 김구미(소프라노)와 함께 팝페라부부 '듀오아임'이라는 예명으로 공연활동을 하고 있다.

 

 
 

 

 

 

 

 

 
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duoa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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