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우리나라 종가 가운데 해남 녹우당은 고산 윤선도와 공재 윤두서를 배출한 걸출한 종가입니다. 그 녹우당에 가면 유물전시관이 있는데 여기서 눈에 띄는 것 하나는 한글 필사본인 한 여인의 수기 <규한록(閨恨錄)>입니다. 이 <규한록>은 1834년(순조 34) 윤선도(尹善道)의 8대 종부(宗婦)인 광주이씨가 지은 수기지요. 광주이씨는 종손 남편이 혼례를 치르자마자 죽는 기구한 운명에 처합니다. 더구나 가세가 기운 때에 대를 잇지 못할 위기에 맞닥뜨린 종손 없는 홀로된 종부였지요. 그러나 남편과 지낸 날이 사흘에 지나지 않았지만, 기구한 운명에 넋을 놓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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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우당 종가의 종부 광주이씨가 쓴 <규한록(閨恨錄)> |
멀리 충남 서천에 가서 공재 윤두서 3째 아들 덕훈의 5대손을 양자로 데려옵니다. 이후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워냈음은 물론 침체해 가던 녹우당가를 다시 일으키는 큰 역할을 했습니다. 종부 광주이씨는 명문사대부가의 딸로서 규범과 예의범절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순종적이고 연약한 여인이 아닌 대쪽 같은 그리고 여장부다운 성격에 비상한 기억력과 슬기로움까지 갖춘 여인이었지요.
이 <규한록>은 광주이씨가 잠시 친정집에 가 있을 때 시어머니에게 자신의 마음속을 담아 써서 보낸 것으로 두루마리를 펼치면 약 13m나 됩니다. 이 작품은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생활 뒷면을 그대로 생생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당시 여인들의 생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지요. 또, 당시의 우리말 표기법을 알 수 있으며, 섬세한 묘사와 독특한 꾸밈법은 국문학적으로 귀중한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