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를 알려면 <탐라순력도>를 보아라

  • 등록 2014.09.02 07: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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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2833]

[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지금이야 우리나라 최고의 휴양지로 외국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제주도는 예전엔 유배당하는 사람이나 가는 험한 곳이었습니다. 그런 제주도를 처음으로 소상히 알린 것은 보물 제652-6호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입니다. <탐라순력도>는 조선 숙종 28년(1702년) 제주목사 겸 병마수군절제사로 제주도에 부임해온 이형상(1653~1733)이 그해 관내 각 고을들을 돌며 진행한 행사와 풍광들을 제주목의 김남길이라는 화공이 가로 35㎝, 세로 55㎝의 종이에 그린 총 41폭의 채색 화첩이지요.


   
▲ 제주도 지도 가운데 가장 오래된 "한라장촉(漢拏壯囑)"

여기엔 제주도 지도와 관아와 읍성, 군사시설을 비롯해, 활쏘기나 잔치 따위 풍물들을 담고 있어 흥미를 더합니다. 전체 화첩 구성은 독립된 제주도 지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꼽히는 당시 제주도 전도(全圖)인 한라장촉(漢拏壯囑) 1쪽, 순시 장면 등 40쪽, 그림에 관한 기록 2쪽으로 이뤄졌습니다. 맨 처음 “제주도 전도”로 시작해서 조천조점, 김녕관굴, 정방탐승, 서귀조점, 현폭사후·명월시사, 고원방고, 산방배작, 제주양로 같은 화첩으로 이어집니다.

이 화첩을 보면 목사 일행은 조천성에 들어가 군사훈련과 말을 점검하고, 김녕의 용암굴을 둘러본 뒤, 정방폭포도 구경하고, 서귀진의 군사를 점검한 뒤엔 천제연폭포에서 활쏘기대회도 엽니다. 또 귤나무 숲에 들어 풍악을 곁들인 잔치를 열고, 산방산 산방굴 앞에서 잔을 기울이기도 하지요. 이 목사는 순행을 마치고 제주목으로 돌아와서는 각 고을 어르신들을 초청해 양로잔치를 베풉니다. 제주양로 장면의 아래쪽에 적힌 기록엔, 100살 이상이 3명, 90살 이상이 23명, 80살 이상이 183명 참석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청백리로 알려진 이형상은 제주목사 임기(2년6월)를 채우지 못하고 유배인들 편에 섰다는 이유로 파직돼 제주도를 떠났다고 하지요. 국립제주박물관에서 가장 눈여겨 볼 전시품입니다.

 
   

▲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가운데 산방배작(山房盃酌) 그림


   

▲ 국립제주박물관에서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를 관람하는 사람들


김영조 기자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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