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이나미 기자] 겨울 항구의 바닷바람이 몹시 차다. 국토 끝 여수에 “하멜등대”라고 이름을 단 귀여운 모습의 빨간등대가 서 있다. 네널란드 사람 하멜이라면 제주도에 표류 한 것으로 흔히 알지만 하멜은 이곳 여수에서도 지냈다. <하멜표류기>라는 책을 통해 서양인에게 한국의 존재를 처음 알린 하멜은 13년 28일 동안의 한국 생활을 마치고 이곳 여수항에서 탈출했다.
“2월말 절도사는 우리를 세 고장으로 분산 시키라는 명령을 받았다. 곧 여수에 12명, 순천에 5명, 남원에 5명씩으로 분산되었는데 우린 그때 모두 22명이 살아 있던 것이다. 이렇게 헤어지게 되니 몹시 슬펐다. 이곳에서 이 나라 관습에 따라 집, 가구, 조그마한 텃밭을 마련하여 그런대로 안정된 삶을 살았다.” 하멜은 <하멜표류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시의 평온은 오래 가지 않았다.
▲ 하멜전시관 1
핸드릭하멜(Hendrick Hmel)은 1630년 네덜란드 호르큼시에서 태어났다. 1650년 20살 나이로 네덜란드 동인도연합회사의 선원이 된 그는 1653년 스페르베르호의 서기(書記)로 승선하여 바타비아(현, 자카르타)를 출발해 일본의 데지마(나가사키)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8 월 제주도 부근에서 배가 난파되어 일행 36명이 제주도 산방산 앞바다에 표류하게 된다.
이들은 제주목사 이원진(李元鎭)의 심문을 받은 뒤 이듬해 5월 서울로 호송되어 훈련도감에 편입되었다. 처음 조정에서는 이들의 표류사실을 비밀에 붙이고 훈련도감의 포수로 임명하여 살도록 했다. 이들은 그 이전에 조선땅에 표류해 살던 네덜란드인 벨테브레(한국 명은 박연 ‘朴燕’)를 만났는데, 그가 이들의 대장이 되었다.
▲ 하멜전시관 2
하멜 일행은 훈련도감의 봉급으로 생활했으나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워 배에 있던 사슴가죽 일부를 환급받아 이것으로 오두막과 의복 등을 마련했다고 한다. 1655년 이들은 청나라 사신의 행렬에 뛰어들어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구원을 호소했으나 실패했으며, 이 일로 하멜 일행은 서울에서 추방되어 그 뒤 1657년 강진의 전라병영, 1663년(현종 4) 여수의 전라좌수영에 배치되어 잡역에 종사했다.
▲ 하멜전시관 3
이곳에서의 생활은 서울에서보다 더욱 고통스러웠는데 부임하는 병사에 따라 대우가 달라졌다. 자상하게 보살펴준 사람도 있는 반면, 가혹한 경우는 쌀만 지급하고 일체의 외출을 금지하기도 했다. 때로는 군사훈련을 받거나 풀 뽑기 같은 병영의 막일에 시달리며 생활했는데, 흉년에는 구걸을 하거나 승려들의 도움을 받아 살기도 했다.
1666년 생존자 16명 중 8명이 그동안 사귀어온 한 조선인에게서 배를 구입해 일본으로 탈출했다. 이들로부터 조선에 잔류자가 있음을 알게 된 네덜란드의 요청으로 2년 후에 남은 일행도 일본으로 송환되었다. <하멜표류기>에는 조선의 군사·형제(刑制)·관료제·가옥·교육·산물·상업 등에 관한 간단한 기술이 있으며, 맨 마지막에 조선으로 가는 항로가 기술되어 있다. 흔히 <하멜표류기>라고 알려졌지만 이 책은 하멜이 조선에 억류된 기간동안의 밀린 임금을 동인도연합회사에 받아 내기 위한 일종의 "보고서"다. 이때문에 학자들은 "하멜보고서" 또는 "하멜일지"라고 한다.
▲ 1번이 네델란드로 여기서 출발하여 4번 제주도 산방산 앞바다에 표류 중 구사일생으로 살아 13년 28일간 한국 억류 뒤 여수항에서 탈출하여 귀향함
“그들은 우리에게 매일 벼를 찧게 했다. 그리고 매일 새끼를 180미터 씩 꼬도록 했다.”
하멜 일행은 이러한 기약 없는 노예 생활의 고통에서 벗어나 표류지 조선에서 탈출하여 본국으로 돌아 간 뒤 350년이 흘렀다. 그리고 한국에는 하멜이 살았던 제주도와 강진 그리고 이곳 여수에 하멜 기념관을 만들어 “이방인의 조선 체류”를 기념하고 있다.
▲ 하멜이 고향 네덜란드로 떠난 것을 기념하기 위한 하멜등대
▲ 전시관을 둘러 보고 나온 사이에 어느새 등대 주변은 아름다운 조명으로 바뀌어 있었고 등대 위 로프웨이에도 불이 켜졌다.
추운 바닷바람이 밀려드는 여수항의 빨간 “하멜등대”는 어둠 속에 서서히 사라지고 등대 주변의 아름다운 조명이 켜졌다. 기자는 눈부신 밤 분위기를 자아내게 하는 빨간등대의 조명을 바라다보며 350년전 낯선땅 조선을 탈출하면서 꿈에도 그리던 고국으로 향하던 하멜 일행을 떠 올려본다.